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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미국 간 회의가 우선순위" 평화협상 EU 참여 필요성도 주장 美, 우크라 나토 가입 막는 협상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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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평화협상을 추진할 경우 이를 수용하지 않겠는 입장을 피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양자 담판’을 통해 종전에 합의하려는 조짐이 드러나자 반발한 것이다.
젤렌스키 "우크라 빠진 합의 수용 못한다"
13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독립 국가로서 우리 없이 이뤄진 어떠한 합의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푸틴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푸틴은 미국과의 양자 협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종전 협상에 유럽연합(EU)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도 같은 날 러시아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어떤 식으로는 평화 회담에 참여할 것"이라면서도 "러시아와 미국 간 양자 트랙이 있고, 우크라이나가 참여하는 또 다른 트랙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대면 회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실무 수준이나 최고 수준에서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며 "회담을 준비하는 데는 몇 주 혹은 한 달,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우크라, 평화 협상에 참여할 것" 진화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간의 종전 협상이 속도를 내자 우크라이나도 함께 협상에 나설 뜻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을 밝히며 종전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날 것”이라며 양국 정상회담도 예고했다. 이에 외교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협상 초기 단계에서 피해국인 우크라이나를 ‘패싱’하고 러시아에 유리한 종전안을 마련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가 반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내일 뮌헨에서, 다음 주엔 사우디에서 회의가 있다"며 "나 자신이나 푸틴 대통령이 아닌 고위 관료들과 함께하는 형태로, 우크라이나도 그 일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린 그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라며 "끔찍하고 잔인하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 우린 그 전쟁을 끝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만 3자 회의가 열릴지는 불분명하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회담이 먼저라며, 러시아와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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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협상 급물살, 쟁점은 안보 보장 방식
트럼프 행정부가 구상하는 우크라이나 종전안은 14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 등 미국 대표단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만남 이후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협상의 최대 쟁점은 종전 후 역내 안보보장 방식이 될 전망이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자국 방어를 위해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나토가 현재 러시아가 통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을 포함해 전국에 회원 자격을 제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 나라의 한 부분에만 (나토 가입) 초대장을 줄 수는 없다"며 "그렇게 하면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의 해당 영토일 뿐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는 많은 사람들이 휴전을 제안했지만 러시아의 재공격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휴전은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직 나토 회원국만이 그런 보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반면 나토가 회원국을 늘리며 동진하는 데 민감하게 반응해 온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다. 미국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와 관련해 "나는 그것이 실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미국이 추진하려는 우크라이나 종전 합의의 '현실적 결과물'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미국은 자국 이외의 다국적군의 주둔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역할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유럽이 도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당선인 신분으로 프랑스를 찾았던 지난해 12월엔 종전 후 유럽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며 휴전 상황을 감시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최근 유럽 및 비(非)유럽 국가로 구성된 군대의 주둔을 언급하며 여기에 "미군이 파병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배치될 평화유지군에는 미군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포기 등을 수용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현지 TV 인터뷰에서 유럽군의 주둔을 지지한다면서도 이는 반드시 '나토로 가는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아울러 그는 10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선 "미국이 없는 안보 보장은 실질적인 안보 보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