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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GPU·LLM ‘꿈의 조합’ 실현”
딥시크 날개 단 화웨이, 기술 자립에 총력
엔비디아 대체 시장 13조원 규모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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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선보인 저비용·고효율 인공지능(AI) 딥시크가 전 세계 AI 업계에 충격을 안긴 가운데, 이번에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딥시크를 구동하는 고성능 AI 가속기를 연이어 선보였다. 중국의 AI 무기화를 막기 위해 AI 칩과 반도체 장비 수출을 엄격히 통제한 미국 정부의 조치를 어렵지 않게 무력화하는 모습이다.
AI 가속기 줄줄이 업그레이드
17일 IT업계에 따르면 중국 그래픽처리장치(GPU) 개발 기업 징자웨이는 최근 딥시크를 클라우드·에지 온디바이스에서 각각 구동할 수 있는 AI 가속기 ‘JM·징훙’ 시리즈를 업데이트하는 데 성공했다. 징자웨이는 “오랜 시간 딥시크와 협업해 왔다”고 밝히며 “중국산 GPU에 중국산 대형언어모델(LLM)이 결합하는 ‘꿈의 조합’을 실현했다”고 자평했다.
징자웨이의 발표는 중국 내 또 다른 AI 가속기 개발사 무어스레드가 딥시크 AI 모델을 추론할 수 있는 AI 반도체를 선보인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뤄졌다. 엔비디아 차이나 부사장 출신인 장젠쥔이 설립해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무어스레드는 지난해 말부터 게이밍 카드인 MTT S80, 데이터센터용 GPU MTT S4000 등을 연이어 선보였다. 최근에는 최대 1만 개의 GPU를 연결해 대규모 AI 작업을 지원하는 솔루션 ‘쿠에’ 개발에 한창이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이 고성능 GPU 개발에 연이어 성공한 배경으로는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을 꼽을 수 있다. 과거 소련이 제한된 하드웨어를 활용해 미국과 우주 경쟁을 벌였듯, 중국 역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부족한 반도체 기술력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선전 베이리·모스크바대를 비롯한 학계 역시 이 같은 흐름에 동참 중이다.
베이리·모스크바대 연구팀은 AI 칩의 연산 성능을 극대화한 ‘PD-제너럴’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PD-제너럴 알고리즘을 엔비디아 ‘지포스 RTX 4070’에서 테스트한 결과, 직렬 방식보다는 800배, 오픈MP 방식의 병렬 연산보다는 100배 빠른 작업 속도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엔비디아가 AI 가속기 구동을 위해 개발한 쿠다 병렬 연산보다 약 2배 빠른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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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어센드’ 시리즈로 엔비디아 추격 가속
업계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기술 고도화가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특히 화웨이는 미국의 수출 통제로 인한 칩 공급 공백을 자체 개발한 AI 칩으로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화웨이는 미국 정부가 2019년 발표한 거래 제한 기업 명단(entity list)에 포함된 뒤 사업이 힘들어지자, 자체 칩을 개발해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하면서 엔비디아의 유력 경쟁자를 자처했다.
최근에는 엔비디아의 베스트셀러 ‘H100’에 필적할 대항마로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을 채택한 ‘어센드 910C’를 앞세워 눈길을 끌었다. 기대 이상의 성능으로 전 세계를 AI 업계를 충격에 빠트린 딥시크의 추론 모델 ‘R1’에도 화웨이 어센드 910C이 사용됐다. 화웨이는 과거 대만 TSMC를 통해 어센드 시리즈를 생산했지만, 미국 정부의 제재 이후로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SMIC를 통해 어센드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화웨이 외에도 중국 내 많은 신생 기업이 엔비디아 추격 행렬에 동참했다. 한우지(寒武纪, 캠브리콘)가 개발 중인 ‘쓰위안590’은 엔비디아의 2021년 모델 ‘A100’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으며, 징자웨이의 ‘JM9’는 엔비디아의 2016년 모델 GTX1050과 유사하다. 또 링지우(淩久)가 자체 개발한 2세대 그래픽 처리 칩 ‘GP201’은 엔비디아의 2017년 모델‘GT1030’을 소폭 능가하는 성능을 보였다.
엔비디아 대체 ‘큰 장’ 열린다
이 같은 기술 고도화의 배경에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수출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은 2019년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데 이어 2022년에는 엔비디아, AMD의 AI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고 나섰다. 심지어 2023년에는 반도체 장비 수출마저 금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중국은 AI 반도체 ‘육룡(六龍)’으로 불리는 화웨이, 비런테크놀로지, 무어스레드, 징자웨이, 캠브리콘, 하이광신시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된 이들 기업이 CXMT 등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활용해 AI 가속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중국 톈펑(天風)증권 보고서에 의하면 2022년 중국 내 AI 가속기는 109만 대가 판매됐다. 이 가운데 85%는 엔비디아가, 10%는 화웨이가 공급했다. 톈펑증권은 엔비디아가 차지했던 85%의 시장 점유율 대부분을 중국 업체들이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톈펑증권은 “현시점으로서는 로컬 제품의 성능이 엔비디아에 미치지 못하지만, 많은 업체가 속속 개선된 제품을 내놓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국산품으로 대체가 가능할 것”이라면서 “올해 로컬 GPU 업체에 700억 위안(약 13조9,000억원) 이상의 엔비디아 대체 시장이 열릴 전망”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