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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뉴발란스 한국 법인 설립 푸마·골든구스 직진출 ‘쓴맛’ 선례 시장 성장세 뚜렷, K-컬쳐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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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1조원의 벽을 넘은 스포츠 의류·잡화 브랜드 뉴발란스가 2027년 한국 법인 설립 계획을 밝히면서 국내 직진출 의사를 드러냈다. 다만 국내 사업 전개를 맡고 있는 이랜드월드와는 라이선스 계약을 연장하며 2030년까지만 동행을 약속했다. 과거 국내 유통업체와의 협력을 끝내고 직진출로 선회 후 실적 악화를 거듭한 여타 수입 브랜드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거듭된 장기 계약, 매출 650억원→1조원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날 뉴발란스는 이랜드월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2030년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 연장은 이랜드가 뉴발란스의 핵심 파트너로서 역할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라이선스를 포함한 아동용 신발과 의류 영역에서도 2030년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1906년 미국 보스턴에서 출발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는 2008년 이랜드와 독점 라이선스 계약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진출 1년 만인 2009년에는 6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한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뉴발란스는 이랜드와 11년(2010~2020년)의 초장기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매출 또한 꾸준히 우상향을 그렸다. 특히 지난해에는 매출 1조원(추정치)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뉴발란스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 수직 성장을 기록한 배경으로는 브랜드를 독점 유통·운영한 이랜드의 현지화 전략이 꼽힌다. 국내에서 지금까지 단일 브랜드로 매출 1조원을 달성한 브랜드는 나이키, 아디다스, 노스페이스뿐이다. 뉴발란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7위지만, 국내에선 나이키에 버금가는 스포츠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뉴발란스 글로벌 전체 매출이 78억 달러(약 11조2,400억원)임을 고려하면, 한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가깝다.
뉴발란스의 급성장으로 이랜드가 지급하는 브랜드 사용료(로열티)도 동반 상승했다. 이랜드가 뉴발란스 애슬레틱 슈에 지급하는 연간 로열티 규모는 2020년 296억원, 2021년 482억원, 2022년 378억원, 2023년 585억원으로 크게 뛰었다.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지난해에는 600억원을 웃도는 로열티를 지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뉴발란스 본사가 2027년부터 한국에서 직접 영업을 시도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실적이 좋은 한국 시장에서 충분한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만큼 직진출로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현재 한국 독점 유통·운영 권리를 가진 이랜드와의 계약을 2030년까지 연장하기로 하면서 2027~2030년까지는 직접 유통(뉴발란스)과 대행(이랜드)이 겹치게 된다.
현지화 전략 실패한 브랜드 직진출 성적표 ‘암울’
업계에서는 뉴발란스가 이랜드의 시장 맞춤 영업 노하우를 단번에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뉴발란스로서는 한국 시장 직진출 욕심이 날 수밖에 없지만, 오랜 시간 운영을 맡아 온 이랜드의 공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만약 한국 법인 설립 후 상황이 불리해지면, 이랜드와의 재계약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안전장치 또한 필요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수 수입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직진출했다가 고배를 마신 것도 뉴발란스가 이랜드와 완전 결별하기 부담스러운 요소로 지목된다. 또 다른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푸마가 대표적 사례다. 푸마는 1994년부터 13년간 이랜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국내에서 영업 활동을 전개했다. 연매출 2,000억원대 브랜드로 성장한 푸마는 2008년 한국 법인 설립했지만, 이후 실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푸마코리아의 2023년 매출은 1,256억원을 기록, 전년(1,333억원) 대비 5.8%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94억원에서 97억원으로 적자 폭을 키웠다. 2022년에는 리복, 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서 마케팅 노하우를 쌓아 온 이나영 대표를 선임하면서 분위기 반전을 노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실적 개선은 요원한 상태다.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 시장 수난기는 비단 스포츠웨어에 국한하지 않는다. 국내 수입업체 듀오와 유통계약을 끝낸 뒤 2021년 직진출한 에트로코리아는 2023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봤다. 2023년 매출은 163억원으로 전년보다 13%가량 줄었고, 영업손실은 85억원으로 20% 넘게 늘었다. 같은 해 돌체앤가바나도 17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전년 대비 적자 폭을 30% 가까이 키웠다. 골든구스 역시 영업이익이 14억원에서 1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들 브랜드는 지난해에도 뚜렷한 반등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패션업계에서는 이들 브랜드가 현지화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직진출에 실패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의류 브랜드 관계자는 “한국 시장에 대한 이해도 부족으로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 사이즈, 색상 등의 제품을 내놔 외면받는 측면이 있다”면서 “최근에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 아니면 무신사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로 소비자들이 나뉘면서 타깃이 애매한 브랜드의 인기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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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 내 성공 여부, 글로벌 실적에도 영향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연이어 한국 시장 문을 두드린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무렵부터다. 전 세계적 소비 침체에도 국내 수입 의류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141억6,500만 달러(약 18조7,000억원)로 전년 대비 약 4.6% 성장했다.
명품 시장 성장세와 더불어 K-컬처 영향력, MZ세대 구매력 증가 등 사회문화적 요소들도 많은 해외 브랜드를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동남아시아 등 신규 시장은 물론 북미, 유럽 등 기존 시장의 매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은 것이다. 많은 브랜드가 국내 배우 또는 아이돌 스타를 글로벌 홍보대사(앰버서더)로 기용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재 블랙핑크 멤버 제니는 샤넬, 로제는 생로랑의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다. 또 가수 아이유와 배우 이정재는 구찌, 뉴진스의 혜인은 루이뷔통, 에스파는 쇼파드의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다.
한국 시장 문을 두드리는 브랜드가 늘면서 이를 모시려는 백화점업계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수입 브랜드는 국내 브랜드 대비 작은 조직으로 인건비가 절감되는 데다, 신규 브랜드가 아닌 경우가 많아 인지도와 브랜딩 측면에서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해외 브랜드 사이에서도 향후 실적 목표에 따라 한국 시장 공략 방법이 나뉜다”며 “한국 목표 매출이 100억원 정도 수준이면 중소기업과 손을 잡고, 300억원 정도면 중견·대기업이 운영, 그 이상이면 직진출을 고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통업계에서도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 런칭하고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