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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월 CPI 상승률 3.0%, 시장 예상치 웃돌아 주요 IB들 연준 인하 시점 늦춰, '연내 동결' 전망도 2월 금통위 주목, 시장선 금리 인하에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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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비자물가가 7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사그라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짧으면 6월까지, 길면 올해 내내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내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하를 저울질하던 한국은행의 고민도 더 깊어지게 됐다.
美 CPI 7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 금리 인하 불투명
19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0% 올라 작년 6월(3.0%)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달(2.9%)은 물론 시장 예측치(2.9%)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하며 시장 예상치(3.1%)와 전월 상승 폭(3.2%)을 모두 상회한 영향이 컸다.
CPI의 선행지표로 불리는 생산자물가 지수(PPI)도 상승세다. 지난달 미국의 최종 수요 PPI는 전월 대비 0.4% 상승했다. 이 역시 0.3% 상승을 예상한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PPI 상승률이 0.4% 이상을 기록한 것은 작년 11월 이후 2개월 만이다. 그전에는 작년 4월(0.5%)이 마지막이었다.
물가가 고공행진 하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사그라들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 선물시장 참가자들은 오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동결 확률을 97.5%로 보고 있다. 동결 확률은 일주일 전(92%)보다 5.5%포인트, 한 달 전(72.4%)보다 25.1%포인트 확대됐다.
시장은 연준의 금리 인하 재개 시점도 줄줄이 늦추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투자은행(IB) 10곳 중 5곳(바클레이스, 골드만삭스, HSBC, JP모건, 모건스탠리, UBS)은 연준의 금리 인하가 6월에 재개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1곳(씨티은행)은 5월, 1곳(UBS)은 9월을 예상한다. 나머지 3곳(뱅크오브아메리카, 도이치뱅크, 노무라)은 연내 금리 동결을 전망했다.
2월 인하 전망 지배적, 연말 금리 2.25% 예상
국내에서도 미국의 물가 상승과 이에 따른 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 가능성이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16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00%로 동결했다. 당시 금통위원 전원은 3개월 뒤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며, 2월 금리 인하 기대감을 높인 바 있다.
그러나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달 25일로 예정된 금통위의 결정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인하할 경우, 한미 금리 차(1.5%포인트·상단기준)가 더 벌어져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금리를 동결하면, 국내 경기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금통위의 추가 인하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연내 금리 인하 횟수에 대한 시장의 전망이 0~1회로 형성되고 있어 한은도 신중한 접근을 할 것”이라며 “이번 달에는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매파적(긴축 선호)인 신호를 주거나 중립기조로 돌아설 수 있어 다음번 인하 시점이 밀릴 수 있다”고 했다.
연준의 금리 결정과 무관하게 한은이 인하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경제 전망의 큰 폭 하향 조정이 예상되는 만큼 이번 달 인하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이다. 특히 2월에는 대폭 하향 조정이 예상된 새로운 성장률 전망치도 제시되는 만큼 더는 금리 인하를 미루기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또한 최근 한은의 매파 스탠스에 대한 일각의 경계심에도 올해 말 금리 수준은 2.25%까지는 낮춰질 것이란 전망도 지배적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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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변수, 달러 가치 하락에도 환율은 덜 내려
다만 불안정한 원·달러 환율이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2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전 10시 기준)은 전 거래일보다 3원80전 내린 1,439원70전에 거래 중이다. 환율이 하락(원화 가치 상승)한 건 미국 경기에 대한 판단 변화에 따른 것이다. 지난 14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1월 소매판매가 전월보다 0.9% 줄어든 것으로 나오면서 연준이 금리 인하에 다시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아진 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를 4월 1일까지 유예하기로 하면서 관세 전쟁 변수도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미국과 러시아가 조만간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나서기로 한 점도 달러 약세에 기여했다.
문제는 달러 가치가 하락한 만큼 원·달러 환율은 충분히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인 달러화지수는 지난 14일 106.785로,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지난해 12월 2일(106.383)과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왔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도 다소 안정됐다. 작년 12월 30일 1,472원50전까지 올랐던 환율은 1,430원대로 40원가량 떨어졌다. 하지만 비상계엄 직전인 12월 2일 1,401원70전에 비해서는 여전히 40원 정도 높다. 달러화지수 상승(0.38%)을 고려하더라도 1,406원 부근에 있어야 하지만 35원 이상 높은 셈이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6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한 후 기자간담회에서 달러당 1,470원 환율을 기준으로 “약 50원이 달러 가치 변동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 30원가량이 정치 불안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달러화지수 추세와 현재의 원·달러 환율 수준을 고려하면 정치 불안의 환율 영향에 관한 이 같은 한은의 판단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