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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러시아 “딥시크 적극 수용” IT·가전 전시회 주인공 된 中 AI 한국 '제자리걸음'할 때 중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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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를 둘러싼 파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딥시크 생성형 AI 수용 여부에 따라 각국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글로벌사우스(주로 남반구와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를 지칭하는 개념)를 AI 영향력 확대 거점으로 삼고 기술 굴기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나아가 첨단 기술 전 분야에서 미국과 한국, 일본의 ‘추격자’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낮은 개발 비용' 강조하며 딥시크 활용 독려
19일(이하 현지시각)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인도 정부는 딥시크의 대형언어모델(LLM)을 자국 서버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딥시크 AI 모델을 토대로 자체 AI 모델 개발에도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CNBC는 “그간 인도는 AI 개발에 고가의 반도체가 필요했던 탓에 투자를 망설여 왔지만, 낮은 개발비로 탄생한 딥시크가 등장하면서 자국도 자체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보다 앞서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는 딥시크 코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AI 모델을 공개했으며,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을 겨냥한 딥시크 사용 독려 지원사격도 이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에는 아프리카에서도 딥시크의 AI 기술이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개발을 위한 기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저비용 고효율의 딥시크 기술 및 서비스에 더욱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함께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책 등으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개도국의 딥시크 활성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또한 이달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AI 통제 정책이 강해질수록 개도국들은 더욱더 딥시크에 다가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고사양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들은 AI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한 미국보다 고성능 오픈소스 AI를 선보인 중국의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중국 역시 딥시크를 앞세워 글로벌사우스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리우 빈싱 알리바바 클라우드 인텔리전스 국제 비즈니스 부사장은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매우 낮은 비용으로 개발된 딥시크의 등장은 말레이시아 기업들에도 매우 좋은 일”이라며 딥시크 활용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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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U 거인 엔비디아에 도전장
중국의 기술 고도화는 전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며 글로벌 산업지도를 뒤흔들고 있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는 이 같은 중국의 노력이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자리다. 지난해 CES 혁신상을 받은 타임케틀은 고성능 AI 번역기 ‘X1’을 들고 나왔고, 베이징 키아이테크놀로지는 세계 최초로 챗GPT를 탑재한 반려로봇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또 AI를 적용한 4족 로봇(유니트리), 지능형 수영장 청소 로봇(싱마이), 잔디깎이 로봇(선전한양기술·맘모션) 등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분전이 눈에 띄었다. AI와 로봇 등 첨단 기술 분야를 모두 중국 업체들이 장악한 것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은 빠른 발전 속도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특히 화웨이는 미국 기업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는 GPU 시장 개척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신제품 ‘어센드910C’를 앞세워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에 제동을 걸겠다는 포부다. 어센드910C는 딥시크 AI 모델 R1의 추론 능력을 고도화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화웨이의 시장 영향력 확대에 힘을 보탰다.
화웨이의 GPU 시장 도전은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납품할 고대역폭메모리(HBM)의 품질 기준을 맞추기 위해 분주한 시기 이뤄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기업들이 엔비디아와의 동행을 위해 골머리를 앓는 동안 중국은 엔비디아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과거 ‘추격자’에 불과했던 중국이 이제는 ‘초격차’로 전 세계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中 ‘가성비’ 앞에 韓 기업들 ‘막막’
기업들 또한 이 같은 변화를 몸소 체감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이 국내 200개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들은 대부분 중국의 기술 경쟁력이 이미 국내 업체와 비슷하거나(33.3%) 우려스러운 수준(49.7%)이라고 답했다. 격차가 매우 크거나 크게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응답은 15.9%에 그쳤다.
또 수출 규모 상위 20%에 해당하는 기업(40개)의 32.5%는 올해 수출이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과잉생산 및 저가 수출에 따른 경쟁 심화(27%)를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지목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주요 수출 대상국 경기 부진(19.5%), 미국·중국 갈등 등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17.9%), 주력 수출 품목 관련 산업의 일시적 불황(12.4%) 등을 꼽았다.
한국의 기술 경쟁력이 갈수록 경쟁국에 뒤처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암울한 전망에 힘을 보탠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산기평)이 진행한 산업기술 수준 연구에서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 미국과 기술 격차를 0년이라고 할 때 한국의 기술 수준은 88%, 기술 격차는 0.9년으로 조사됐다. 미국과의 기술 격차가 유럽연합(EU) 0.39년, 일본 0.43년임을 고려하면 매우 아쉬운 성적이다. 중국은 1.2년으로 한국을 바짝 뒤쫓았다.
미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는 2017년만 해도 1.5년이었다가 2021년 0.8년까지 좁혀졌는데, 지난해 다시 0.9년으로 0.1년 늘어났다. 일본과의 기술 격차도 2021년 0.4년 뒤처진 데서 지난해 0.5년으로 격차를 넓혔다. 반면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0.3년 앞선 상태를 간신히 유지 중이다. 전윤종 산기평 원장은 “기술 수준이 높은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글로벌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