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금감원, 은행권에 대출금리 산출 근거 등 자료 제출 요구 기준금리 인하에도 가산금리 올리고 우대금리 혜택 줄여 은행따라 다른 깜깜이 가산금리가 혼란 키운다는 지적도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가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가산금리 및 우대금리 조정 폭을 중심으로 대출금리 산출 근거를 직접 점검에 나섰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영업점 재량 전결인 ‘우대금리’를 덜 적용하는 수법으로 대출금리를 높게 유지해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 떨어지지 않아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21일 은행 20곳에 공문을 보내 차주별·상품별로 준거·가산금리 변동내역과 근거, 우대금리 적용 현황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은행별 대출금리 변동내역 등에 관한 세부 데이터를 취합해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대출에 미치는 효과의 합리성 등을 점검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이번 점검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가계·기업이 2차례 금리인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대출 금리 전달 경로와 가산금리 추이를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시한 바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과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하해 기준금리가 연 3.5%에서 3.0%로 0.5%포인트 낮아졌지만,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오히려 올랐다. 은행의 대출 금리는 은행채 금리와 코픽스(COFIX) 등 시장·조달금리를 반영한 '지표(기준)금리'에 은행들이 임의로 덧붙이는 '가산금리'를 더한 뒤 은행 본점이나 영업점장 전결로 조정하는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빼서 구한다. 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금융당국의 압박에 따른 가계대출 수요 억제를 명분으로 대출 가산금리를 계속 올렸다. 이에 더해 평소에 우대금리를 적용해 깎아주던 금리를 훨씬 덜 깎아주는 방식으로 대출금리에 부담을 더했다.
우대금리는 해당 은행에 월급계좌가 있거나, 해당 은행 신용카드를 매월 일정액 이상 쓰면 일정부분 깎아주는 금리로 금감원은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올린 정도보다 2.8∼6.1배 우대금리 적용을 줄여 대출금리 인상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공시된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 대출금리를 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해 12월 평균 가계 대출금리는 금리인하 전인 9월 대비 일제히 상승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가산금리를 0.11%포인트 내렸지만, 우대금리를 1.41%포인트 덜 적용해 대출금리를 높였다. 신한은행은 가산금리를 0.19%포인트 높인 데 더해 우대금리를 0.65%포인트 덜 적용했다.
2023년 6대 은행 금리 담합 조사 조치 없이 끝내
우대금리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3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은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기업 등 6대 시중은행에 대한 금리 담합 의혹에 대해 조사했다. 금리 인상기에 은행들이 예금·대출 금리와 고객수수료를 담합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금융권에서는 "은행별 가산·우대금리 차이가 명확한데도 공정위를 앞세워 은행들을 담합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금리 문제를 공정위의 담합 조사로 푸는 것은 금융업 현장을 너무 모르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당시 가산금리와 우대금리 차이가 2%포인트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의 주담대 평균 우대금리는 연 2.51%에 달한 데 비해 기업은행은 연 0.31%에 그쳤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투명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대출금리 체계의 합리성 제고를 위한 모범규준'에도 적정한 가산금리 수준에 대해 규정한 사항은 없다. 은행권에서는 가산금리는 차주의 신용도와 대출 기간 등 조건이 모두 달라 담합하기 어려운 구조인데다 우대금리도 거래 실적이나 계열 카드사 발급 등 비가격적 요소가 많아 담합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표금리인 기준금리 산정 기준도 6대 은행마다 다르다. 주담대 중 취급 비중이 70%를 웃도는 변동금리 주담대의 경우 국민 우리 농협 기업 등 4개 은행은 매월 15일 은행연합회가 발표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를 기준금리로 쓴다. 신한과 하나는 매일 금융채 금리에 따라 기준금리를 산정한다. 이마저도 신한은행은 직전 3영업일 평균을, 하나은행은 직전 하루의 금융채 5년 만기 금리를 반영하는 등 차이가 있다. 시장지배적 은행이 대출금리를 올리면 다른 은행들이 따라 올리는 암묵적 담합도 치열한 은행 간 경쟁을 간과한 시각이라고 반박했다.
오락가락 가산금리가 금융 소비자 혼란 키워
일각에서는 오락가락하는 가산금리가 소비자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대출 관리 기조를 따르는 수단으로 가산금리를 활용하면서 시장이 왜곡됐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예금은행 대출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고정금리형 주담대가 4.31%로 변동형의 4.25%보다 높았다. 고정형 주담대 상품의 금리가 변동형보다 높은 것은 2022년 10월 이후 2년 1개월 만이다. 이는 은행들이 고정형 상품의 가산금리를 인상하며 대출 문턱을 끌어올린 결과다. 그러다 다시 12월에는 고정형 금리의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 금리가 0.21%포인트 하락하며 변동형 금리(4.32%)가 고정형 금리(4.23%)를 한 달 만에 앞질렀다.
문제는 소비자 자신이 받은 대출의 가산금리가 어떻게 정해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은행은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정확한 가산금리 산정 방식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도 가산금리 산정 체계 개편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별다른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금감원이 지난해 말 별다른 사유 없이 가산금리 편차가 크지 않은지, 적정 수준보다 과도하지 않은지 등을 살폈고 문제가 있는 은행에 대해선 지도 조치했지만 은행권은 가산금리를 정부가 개입해 조정하고 이 내역을 공개하라는 것은 시장경제 논리에 맞지 않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현재 대출 시장의 왜곡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이론적으로 대출 소비자가 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고정형 상품이 변동형 상품보다 금리가 높은 게 정상이다. 하지만 한국은 2022년 10월 이후 지난해 11월 한 달을 빼고는 고정형 금리가 변동형보다 항상 낮았다. 이는 당국이 은행에 고정형 상품 확대를 주문한 데 따른 것으로 은행들은 인위적으로 고정형 상품의 금리를 변동형 상품보다 낮게 유지해왔다. 소비자들이 시장금리가 추가 인하될 것을 예상하기 때문에 이자가 다소 비싸더라도 변동형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은행들은 고정형 판매를 확대하라는 당국의 주문 탓에 딜레마에 처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