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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심리 악화에 3대 지수 동반 급락 물가 오를 것이라는 미국민, 소비 줄여 1년 기대 인플레이션도 급등세 유지 인플레 확인 데이터 지속 시 시장에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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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한 달째를 맞이한 가운데, 미국 경제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공격적인 관세 정책 등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뉴욕 증시가 올 들어 최대 낙폭을 기록하는 경기 하강 조짐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여기에 물가 상승 우려가 더해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 공포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뉴욕 3대 지수 급락, 테슬라 4.7%·엔비디아 4.1%↓
2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21일(이하 현지시간)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748.63포인트(1.69%) 급락한 4만3,428.02에 장을 마쳤다. 올 들어 가장 큰 낙폭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 대비 104.39포인트(1.71%) 떨어진 6,013.13,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도 438.36포인트(2.20%) 하락한 1만9,524.01에 거래를 마감했다.
거대 기술기업을 일컫는 '매그니피센트7'도 모두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트럼프 2기 탄생에 공이 많은 일론 머스크 CEO(최고경영자)의 테슬라 주가는 4.68% 내린 337.80달러를 기록하며 크게 밀렸다. 지난해 12월 18일 최고치(488.54달러)보다 31%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엔비디아(-4.05%), 브로드컴(-3.56%), 아마존닷컴(-2.83%) 등 주요 기업 주가도 급락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달 들어 미국 기업의 활동이 거의 정체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 이후 거뒀던 주가 상승분을 거의 다 까먹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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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업 PMI 25개월 만에 최저, 기대인플레도 급등
이번 급락의 주요 원인은 비관적인 경제지표다. 미국 소비자물가는 2년 반 가까이 4%가 넘는 고금리 덕에 힘입어 지난해 2%대로 떨어졌는데,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다시 3%대로 올랐다. 특히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비용을 제외한 핵심 소비자물가 지수는 5.5%나 올랐다.
물가 상승 우려에 소비 심리도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21일 미시간대는 이달 소비자심리지수를 전월 대비 약 10% 낮아진 64.7로 발표했다. 지난해 6월 이후 인플레이션 완화 추세에 점차 상승세를 보이던 것이 15개월 만에 내림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는 2월 예비치(67.8)와 시장 전망치(67.8)도 밑도는 수치다.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들도 경기 위축을 전망하고 있다.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2월 미국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7로, 전달보다 크게 떨어졌다. PMI는 50을 기준으로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위축을 뜻하는데 이번처럼 50을 밑돈 것은 2023년 1월 이후 25개월 만에 처음이다. 미국 GDP(국내총생산)의 80%를 차지하는 서비스업 PMI는 지난달 52.9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인 데 이어 트럼프 2기 행정부 취임 이후 시점인 이달 들어 본격적으로 위축 국면으로 돌아선 모양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급등한 점도 시장을 불안하게 만든 요소다. 2월의 1년 기대 인플레이션 확정치는 4.3%로 전월 3.3% 대비 1.0%포인트 급등했다. 1년 뒤 물가가 지금보다 비쌀 것으로 보는 소비자들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의미다. 아울러 5년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도 3.5%로 전월 대비 0.3%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불확실성도 급등했다. 1년 불확실성은 전달 7.6%포인트에서 9.5%포인트로, 5~10년 불확실성은 전달 6%포인트에서 8.2%포인트로 각각 높아졌다.
트럼프 관세發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식어가는 이면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시행을 연기하긴 했지만 취임하자마자 멕시코·캐나다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철강·반도체·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 부과를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통상 관세를 높이면 당장 수입 가격이 상승한다. 이에 미국 소비자와 기업들이 물가 상승과 경기 위축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친성장 기조에도 불구하고 무역 전쟁이 미국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큰 위험으로 재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지난달 발표된 미국의 지난해 4분기 GDP 성장률 속보치는 연율 환산 기준으로 전기 대비 2.3% 증가해 3분기(3.1%)보다 크게 둔화했다. 오는 27일 발표될 4분기 GDP 성장률 잠정치도 속보치와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시선은 오는 28일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이 발표하는 PCE 가격지수에 집중되고 있다. 가격 변동 폭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 가격지수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등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선호하는 지표다. 블룸버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들은 올 1월 근원 PCE 가격지수 상승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6%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0~12월 2.8%로 유지됐던 것에서 가격 상승 압력이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앞서 발표된 1월 미국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3.3%, 전월 대비로는 0.4% 상승해 시장 전망치를 뛰어넘은 바 있다.
다만 관세로 인한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4월 2일부터 자동차 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반복했다. 또한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국가가 미국 빅테크에 부과하는 디지털 세금에 대응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문서에도 서명할 예정이다. 프랑스 등이 빅테크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세금을 관세를 통해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는 또 트럼프가 관세를 세수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즉 관세를 단순 무역 협상 도구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상당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