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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피탈 자동차금융 자산 3년 연속 ↑
부동산 금융 대비 안전 자산으로 평가
신차 판매 부진에도 중고차 수요 꾸준

자동차할부금융 시장을 두고 금융권의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낮은 금리를 앞세워 신차 할부 금융에 주력했던 카드사는 실적 악화에 직면한 반면, 넉넉한 대출 기간 및 한도로 중고차 금융을 확대해 온 캐피탈사들은 3년 연속 성장세를 그리고 있다. 완성차 업체 등 대기업들의 시장 진입으로 중고차 시장의 몸집이 커진 데 따른 결과다. 다만 인터넷전문은행 등 새로운 플레이어가 속속 등장함에 따라 금융사들의 경쟁 또한 치열해질 전망이다.
부동산 금융 부실 돌파구, 캐피탈사 “오히려 좋아”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캐피탈사의 자동차할부금융자산은 33조8,566억원으로 전년보다 2.6% 증가했다. 캐피털업계 자동차할부금융자산 총액은 2020년 28조2,468억 원에서 2021년 27조9,547억 원으로 주춤했으나, 2022년 29조9,363억 원으로 반등한 후 2023년 30조원을 돌파했다.
이 같은 증가세는 작년 국내 6개 전업카드사(KB국민·롯데·삼성·신한·우리·하나카드)의 자동차 할부금융 자산이 9조4,709억원으로 전년 대비 1.7%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2023년 고금리 여파로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 금리가 연 5%대로 급등하는 등 카드사들의 조달 비용 부담이 커진 탓이다. 지난해에는 금리가 안정화하면서 여전채 금리가 소폭 하락했지만, 신차 판매량 감소가 발목을 잡았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의 조사에서 지난해 국내 신차 판매량은 163만5,000대로 전년 대비 6.5% 감소했다.
이처럼 두 업계의 희비가 교차한 것은 캐피탈 업계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로 영업 환경이 악화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동차 금융에 집중한 데 따른 결과다. 현대차와 맞춤형 자동차 금융 프로그램을 출시한 현재캐피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대캐피탈은 ‘현대차 EV 청년 스탠다드 리스’ 프로그램을 통해 전기차 보조금에 현대자동차와 현대캐피탈의 리스 특별 할인 혜택을 더해 청년층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KB캐피탈 또한 신규 TV 광고 캠페인과 연계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KB차차차’에 로그인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경품을 증정했으며, 우리금융캐피탈과 DGB캐피탈, 메리츠캐피탈 등도 차량 종류 및 구매 형태별 세분한 상품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전개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금융과 PF로 포트폴리오가 집중됐던 캐피탈사들이 최근 몇 년간 큰 위기를 겪었다”며 “예전에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더 안전한 자동차 금융으로 취급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중고차 거래, 신차 대비 1.4배 달해
장기화한 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신차보다 중고차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점도 캐피탈사에는 호재로 작용했다. 통상 신차의 경우 카드사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제시하고 캐시백 혜택 등을 제공해 캐피탈보다 소비자에게 유리한 반면, 중고차는 캐피탈이 카드사보다 대출 기간 및 한도가 넉넉하고, 최저금리 구간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자동차 관련 통계 기관 카이즈유데이터에 의하면 지난해 중고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0.67% 감소했다. 언뜻 부진으로 해석하기 쉽지만, 같은 기간 신차 판매량이 6.5% 감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수한 성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중고차 실거래 대수는 234만6,267대로 신차 등록 대수(163만8,506대)의 약 1.4배에 달했다.
시장의 뚜렷한 성장세를 확인한 기업들도 앞다퉈 중고차 사업을 확대하는 추세다.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 이달까지 중고차 시장 점유율을 각각 4.1%, 2.9% 이내를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점유율 제한으로 인해 이들 기업의 인증중고차 사업은 지금까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오는 5월부터 점유율 제한이 풀리면서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공략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롯데렌탈도 중고차 시장의 신흥 강자로 꼽힌다. 롯데렌탈은 최근 중고차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 진출을 공식화하며 2028년까지 매출 2조3,000억원, 연간 판매량 13만 대를 목표로 제시했다. 롯데렌탈 관계자는 “보유 중인 차량 중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차량을 활용할 계획”이라며 “안정적인 물량 공급이 가능한 것은 물론 신규 중고차 고객이 장·단기 렌터카 고객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어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불투명한 거래 관행으로 인해 ‘레몬 마켓(정보 불균형 시장)’으로 불렸던 중고차 시장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각도 달라졌다. 2022년부터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허용되면서 소비자의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품질 보증 및 사후 서비스(AS)를 강화하는 기업형 사업자가 증가한 것이다. KB캐피탈이 운영하는 KB차차차는 매물마다 소유 및 사고이력, 용도변경, 주행거리 등 요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요약이력’ 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지난해 9월 출시된 전기 인증 중고차 플랫폼 리볼트는 전기차 배터리를 다각도로 진단한 뒤 이를 통과한 무사고 차량만 인증 후 판매한다.
반대로 전통적인 중고차 매매 딜러 수는 감소하는 추세다. 국토부 집계에서 2019년 3만8,096명에 달하던 자동차 매매업 종사자는 2023년 3만3,376명으로 4년 사이 12% 줄었다. 중고차 시장이 투명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변화하고 있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 경쟁 심화로 이어질 것이란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낮은 금리·비대면 앞세운 인터넷은행 줄줄이 출사표
최근에는 인터넷전문은행들도 낮은 금리를 앞세워 중고차 할부 시장을 키우고 있다. 후발주자인 만큼 현재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경쟁 업계보다 낮은 금리를 제공해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인터넷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자동차 대환대출 상품을 출시한 케이뱅크는 연 4.4%~8.4%의 금리를 제시하고 있으며, 카카오뱅크 중고차 구매 대출 금리 또한 연 3.65%~7.8% 수준으로 캐피탈·카드사보다 낮은 편이다.
인터넷은행의 적극적인 시장 침투에 캐피탈·카드 업계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중고차 구매의 주요 고객층으로 부상한 2·30대 청년들의 경우 비대면 대출 서비스에 익숙한 데다, 중고차 대출이 향후 신차 구입자금 대출 시장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인터넷은행 관계자 역시 “고객 입장에선 금리 경쟁력과 편의성 측면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커지는 중고차 시장만큼이나 중고차 시장 내 입지를 확대하기 위한 금융사들의 경쟁 또한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