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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 국제 분업 타격 가시화 中 보복 관세에 생산분 반송까지 관세 전쟁 충격파에 재무 부담 가중

미국 보잉이 1분기 결산에서 수익 개선이라는 재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라는 새로운 암초에 직면하면서 재건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중 수출 비중이 높은 보잉이 무역 전쟁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보잉, 5분기 만에 매출 증가
25일 닛케이에 따르면 2024년 사고로 인한 품질 문제와 노동조합 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보잉은 켈리 오트버그(Kelly Ortberg) CEO 체제 아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보잉은 1분기 결산에서 매출액 194억 달러(약 27조8,000억원)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한 것이자 5분기 만의 매출 증가다. 최종 손익은 3,100만 달러(약 442억원) 적자로, 11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갔지만 적자 폭은 전년 동기 3억5,500만 달러(약 5,100억원) 적자 대비 크게 줄었다.
또한 보잉은 최근 1년간 분기 중 가장 많은 130대의 민간기를 인도했다. 보잉은 2018년과 2019년 맥스 기종 사고 여파로 중단됐던 항공기 납품을 작년 여름부터 재개하며 중국 시장 공략에 다시 시동을 걸었고, 130대의 항공기 중 18대가 중국 항공사로 갔다. 737 맥스 가격은 대당 1억 달러가 넘는다. 사고 후 미국 연방항공국(FAA) 규제로 생산 상한이 38대로 제한돼 있지만, 보잉은 수개월 내에 이 상한에 도달하고 2025년 하반기에는 FAA에 42대로의 상향 조정을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국제 분업 공급망에 드리운 관세 리스크
그러나 보잉의 재건 과정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영향이 새로운 우려로 떠오르고 있다. 보잉이 예상하는 관세 영향은 크게 두 가지 형태다. 미국 행정부가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부품 비용이 상승하고, 중국 등 대상국이 보복 관세를 발동하면서 항공기 수출이 지연되는 것이다.
항공기 수출 지연은 이미 현실이 됐다. 중국 정부는 최근 자국 항공사들에 보잉 항공기를 새로 주문하지 말고, 이미 주문한 항공기도 인도받기 전에 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이미 생산된 항공기가 미국으로 반송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보잉의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 시장의 문이 거의 닫힌 셈이다. 리서치업체 번스타인은 중국이 올해 보잉 항공기 도입을 중단할 경우 보잉이 12억 달러(약 1조7,200억원)의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품 비용 상승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잉의 주력 기종인 787에는 약 230만 개의 부품이 쓰이는데, 이 가운데 30%의 부품이 수입산으로 알려졌다. 1차 협력사에 소재와 장비를 공급하는 2·3차 협력사까지 따지면 글로벌 교역 규모는 더 크다. 하지만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본격화면서 이 같은 분업 체계에 제동이 걸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이달 5일엔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했다. 지난 9일 57개국에 적용한 국가별 상호관세는 90일간 유예됐으나, 보잉은 항공기 부품 산업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인사이트가 추정한 글로벌 항공기 부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6,853억6,000만 달러(약 986조원)에 달한다.
재무 부담 가중 속 중국 변수
문제는 재건 초기 단계인 보잉은 여전히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잉여 현금 흐름(순 현금수지)은 22억 달러(약 3조1,600억원) 적자였다. 보유 자금(현금과 단기 채권 합계)도 2024년 말 263억 달러(약 37조6,000억원)에서 237억 달러(약 33조9,000억원)로 축소됐다. 이에 보잉은 운전 자금 확보를 위해 지난 분기 신주 발행으로 200억 달러 이상을 조달했고, 22일에는 소프트웨어 사업 일부를 투자 펀드에 105억5,000만 달러(약 15조원)에 매각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투자 적격 등급 유지를 통해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피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관세 협상의 중요한 변수다. 보잉은 이전부터 무역 협상의 상징적인 재료로 여겨져 왔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미·중 갈등으로 수주가 급감했고, 2018~2019년 사고까지 겹치자 당시에도 중국 당국은 일부 기체 인도를 중단했었다. 2023년 11월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어필해 2024년부터 다시 인도가 늘기 시작한 참이었다.
일부 분석가 사이에서는 보잉의 생산량 증대를 위해 중국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오지만, 보잉에 있어 중국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보잉은 2042년까지 중국 항공기 수요가 전체의 20%를 계속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항공기 산업 경쟁사는 프랑스 에어버스,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 시장에서 배제된다면, 보잉은 장기 전략의 재구축을 강요받게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관세로 인한 부품 조달 비용 증가와 중국의 보복 조치로 인한 수출 차질은 보잉이 직면한 이중 리스크다. 특히 787 기종과 같이 일본 부품 비중이 35%에 달하고 전체 부품의 70%를 외부 조달하는 국제 분업 구조는 관세 정책 변화에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재무 건전성 확보와 더불어 미·중 무역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전략이 보잉의 재건 성공 여부를 좌우할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