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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 예산, 연간 ‘1,390조 원’ 넘어 전투는 이기고 영향력은 잃는 ‘악순환’ 일방주의 버리고 동맹국 협력 강화해야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미국은 매년 1조 달러(약 1,399조원)에 가까운 돈을 국방 예산에 쏟아붓고 있다. 중국을 포함한 다른 강대국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일들을 보면 압도적인 군사력이 글로벌 안정을 무조건 보장하지는 않는다. 동맹과 정당성, 영향력이 군사력 자체보다 중요해진 세계에서 미국은 전쟁은 이겨도 평화는 얻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 천문학적 국방 예산에도 ‘글로벌 영향력’ 줄어
1975년 사이공 함락 순간 미국 대사관에서 펼쳐진 헬리콥터 탈출 장면은 50년 후 카불에서 고통스럽게 재연되며 미국 전략의 반복되는 맹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적군을 제압할 수는 있지만, 현지 주민들과 깊은 협력 관계가 없으면 정치적 안정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외교 및 파트너십이 필요한 문제에 군사력부터 앞세우면 강력한 힘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아프가니스탄뿐만이 아니다. 이라크에서는 ‘이슬람 국가’(ISIS)가 다시 고개를 들고 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Gaddafi) 사후 아직도 안정된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사례를 통해 미국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정당성(legitimacy)은 주둔군의 숫자가 아니라 현지에서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후원하는 정부가 국민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돌아오는 것은 폭력을 동반한 저항뿐이다.
작년 한해 미국의 국방 예산은 9,970억 달러(약 1,394조원)에 이를 정도로 증가했는데 미국의 군사력이 가진 글로벌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년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만 2조3천억 달러(약 3,209조원)를 소진했지만 미국이 지원한 카불 정부는 탈레반에게 손쉽게 자리를 내줬다. 그동안 쏟아부은 예산과 노력의 전략적 가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전 세계 군비 경쟁 촉발
오히려 미국의 국방 투자는 지향하는 전략적 가치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작년 전 세계 국방 지출은 2조 7,200억 달러(약 3,794조원)에 달해 전년 대비 9.5%의 가파른 증가를 보였다. 미국의 군사력 확대에 상대국들이 같은 방식으로 맞섬으로써 글로벌 군비 경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주: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기타(시계 방향)
군사력 자체는 아직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정학적 우위를 자동으로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군사적 영향력은 폴란드, 일본, 필리핀과 같은 동맹국들을 통해 발휘되기 때문에 이들의 동의가 있어야 세계 질서도 유지될 수 있다. 미국의 리더십은 점점 국방 예산이 아닌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평가되고 있다. 최고경영자가 아닌 최고 조정자(coordinator-in-chief)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2/3는 아직 미국이 글로벌 문제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지지한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장기간 비용과 희생이 따르는 개입은 반대한다. 세계적으로 미국의 지지율은 45%까지 떨어졌는데 미국 일방주의(unilateralism)에 대한 피로감과 미군 개입 결과에 대한 실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맹국과 협력 통한 ‘영향력 확대’ 고민해야
하지만 동맹국들과의 연합은 경우가 다른 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동안 유럽은 재정 및 물류 지원을 통해 힘을 합쳤고 지역 분쟁으로 끝날 사건을 러시아에 대한 전 세계의 혹독한 질타로 확대했다. 미군이 우크라이나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가능했다. 필리핀은 미국과 안보 동맹을 함께 하고 싶어하지만 한가지 단서를 둔다. 자국 지휘관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져야 합동 군사작전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리비아와 시리아에서 미군이 겪은 실패의 원인은 상대국과 국민을 무시한 일방적 개입이었다.
미국의 관료주의도 동맹국과의 협력을 방해하는 요소다.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결성된 AUKUS(호주, 영국, 미국) 안보 협정이 잠수함 기술 수출 제한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앞으로도 전략적 목표와 규제 간 충돌을 피하지 못한다면 야심 찬 동맹도 관료주의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 예산에 대한 연구는 미국의 진정한 이익이 깊어진 동맹 관계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동맹국들이 국방비의 10%를 더 부담해 주면 향후 10년간 미국은 500억 달러(약 70조원)의 국방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 폴란드가 자국에 주둔한 미군 기지 비용으로 36억 달러(약 5조원)의 예산을 배정한 것이 생생한 예다.

주: 동맹국 국방비 추가 부담 비율(%)(X축), 미국 국방 예산 절감액(십억 달러)(Y축)
일방주의 아닌 ‘존중과 이해’
동맹 관계 강화를 위해 미국은 그동안의 대외 정책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작전 수행 전에 해당 동맹국에 취지와 의미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일방적 군사 원조를 무이자 대출로 바꿔 현지 정부가 조달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수출 규제를 간소화해 안보 협정이 지연되거나 혼란에 빠지는 일을 줄여야 한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투자를 통해 지상군 없이도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미군이 막강한 군사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동맹국을 무시하는 태도도 고쳐야 한다. 다극화로 향하는 세계에서 진정한 영향력은 지배력이 아닌 조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생각을 고려하는 것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다.
변화한 상황에 적응한다면 미국의 국방예산은 거대한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를 발휘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전투에서 이기고 영향력은 잃어버리는 같은 패턴을 되풀이할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제임스 보튼(James Borton) 존스 홉킨스 고등국제문제연구소(Johns Hopkins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 외교정책연구소(Foreign Policy Institute) 선임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US foreign policy’s familiar follies show lessons not easily learnt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