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AI 칩 수출규제 완화” 미국, 기술통제 카드로 외교 지형 흔든다
Picture

Member for

6 months 3 week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수정

업계 및 ‘일반 국가’ 불만 쇄도
정책 방향 동일, 형식만 변화
수출규제 전략 자산 활용 움직임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규제의 ‘국가별 등급제’를 폐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동맹국에만 수출 제한을 완화하고, 중국·러시아 등 핵심 견제 대상국에는 기존 통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기조를 보이면서 ‘정밀 타격형’ 전략이 강화되는 흐름이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의 경고성 발언이 정책 변화에 일부 영향을 미쳤지만, 본질은 기술 통제를 외교 무기로 활용하는 데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맹국 중심 ‘예외 허용 구조’ 유력

7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이달 15일 도입 예정인 ‘AI 확산 프레임워크(Framework for Artificial Intelligence Diffusion)’를 시행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날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바이든 시대의 AI 규제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관료적이며, 미국의 혁신을 저해한다”며 “보다 단순하고, 미국의 AI 주도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규칙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늦어도 오는 14일 발표될 예정이다.

AI 확산 프레임워크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 임기 막바지인 올해 1월 발표된 것으로, 중국 등 비우호국이 제3국을 통해 AI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차단하고 동맹국들에는 미국산 최첨단 기술 접근에 보안 요건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전 세계 국가를 △한국 등 동맹 및 파트너 국가 △일반 국가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우려 국가로 등급을 나눠 구분하고, 등급에 맞춰 차별적으로 AI 반도체에 대한 수출 통제를 하는 방식이다.

이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앞두고 구체화하고 있다. 그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복수의 중동 국가는 미국의 AI 칩 수출 제한에 강한 불만을 표시해 왔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수출 통제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고, 오는 13~16일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방문에서 해당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는 게 블룸버그의 전언이다.

업계의 경고도 정책 변화에 일조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서비스나우의 ‘지식 2025’ 콘퍼런스에 참석해 “우리가 AI 기술 수출을 제한하면, 그 시장은 결국 다른 누군가가 차지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중국의 화웨이를 겨냥한 발언으로, 중국의 AI 시장이 급성장을 거듭 중인 만큼 이를 적극 공략해야 한다는 게 황 CEO의 지적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할 계획이지만, 정부 또한 민첩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러시아 견제는 그대로 유지

BIS가 AI 수출 통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수출이 막힌 나라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들과 군사적 또는 전략적으로 연결된 국가들은 여전히 AI 반도체 및 관련 장비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즉, 정책의 겉모습은 ‘완화’지만, 내용은 오히려 ‘선명화’에 가깝다.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견제 구조를 더 공고히 하고, 나머지 국가는 기술 협력 범위 내에서 묶겠다는 전략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평가다.

이처럼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강조되는 키워드는 ‘선별적 통제’다. 동맹국에 대해서는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고, 비우방국은 첨단 기술 접근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이중 목적이다. 특히 AI 반도체처럼 전략적 성격이 짙은 품목은 안보 이슈와 직결되는 만큼 기술 수출조차 외교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기술 보급은 넓히되, 어디까지나 미국이 선택한 국가에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고도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국가별 통제 수위 조절 가능, 관세 협상 지렛대 확보

이번 수출 규제 완화 조치가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외교 전략의 일부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행정부의 칩 수출 제재 완화 배경에는 무역 협상과 연계시키려는 의도 또한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향후 전개될 무역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자국산 칩에 대한 접근권을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는 AI 확산 프레임워크 등급제 폐지와 별개로 엔비디아 고성능 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AI 학습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엔비디아의 주력 AI 칩 ‘H100’ 등이 그 대상으로, 이들 칩은 현재 1,700개 이하 주문 건에 대해서는 정부에 수출 후 통보만 하면 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같은 수량 기준을 500개로 확 낮춰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조치는 ‘수출규제 완화’라는 명분 아래 미국 외교의 기술화 및 기술 통제의 전략화가 가속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때 산업적 통제 수준에 머물렀던 기술 정책이 이제는 무역·외교의 전면에 배치됐으며, 미국은 이를 통해 국제질서를 자국에 유리하게 설계하려 하고 있다. AI 반도체가 첨단 기술을 넘어 외교 전장의 핵심 무기로 진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Picture

Member for

6 months 3 week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