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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정책 실패와 무능이 부른 일본 ‘쌀 부족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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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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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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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쌀 부족으로 수십 년 만에 ‘수입’
비축미 두고도 ‘창고에 방치’
정책 실패와 무능 드러내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지난 4월 22일 한국에서 도착한 쌀이 일본 도쿄 오다이바 부두에 선적됐다. 오랜 기간 쌀 자급자족을 상징과 명예로 여겨온 일본이 수 세기 만에 처음으로 자국민에게 공급할 쌀을 수입한 순간이었다. 일본의 국가 정체성과도 같았던 쌀 부족 사태는 정책 오류와 이상 기후, 수요 예측 실패가 겹쳐 일어났다.

사진=ChatGPT

일본 ‘초유의 쌀 부족 사태’

50년이 넘게 일본의 농업 정책은 쌀 수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수입 쌀에 700% 관세를 매기고 고시히카리를 포함한 쌀 품종을 문화유산처럼 홍보한 일본 정부는 쌀 자급자족을 위한 철옹성을 쌓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났다. 쌀 5㎏의 소매가격이 4,200엔(약 4만7천원)으로 작년보다 두 배가 오른 것이다. 1993년 이후 처음으로 마트에는 판매 제한 표지가 붙었다. 단지 수확이 안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고 숫자로 보이는 정황을 모두 무시한 결과였다. 농토는 줄고 농부들은 늙고 날씨는 안 좋았다. 일본 관광 붐도 복병이었다.

농지 축소 및 벼농사 인구 노화 지속

가장 큰 문제는 말 그대로 뿌리부터 일어났다.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일본의 농토는 수십 년간 계속 줄어들어 2022년에 이르면 125만 헥타르로 최저점을 찍는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벼농사 축소 정책(減反, gentan)은 2018년에 끝났지만 비공식적 지역 할당제와 강력한 일본 농업 협동조합(Japan Agricultural Cooperatives, JA)이 주도하는 감산이 지속됐다. 일본이 2000년에 보유했던 농토 수준만 유지했더라도 180만 톤의 쌀을 추가로 생산해 혼란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평균 연령이 69세에 이른 농부들의 고령화도 문제다. 농부 한 명이 새로 진입하는 사이 5명이 은퇴한다. 돌볼 여력이 없는 논은 동물 사료나 옥수수 재배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밥이 주식인 일본 사회에서 옥수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 쌀 생산 및 소비 추이(단위: 백만 톤, 2019~2025년)
주: 생산(Production), 국내 소비(Domestic Consumption), 관광객 수요(Tourist Demand)

폭염과 관광객 증가도 한몫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씨도 안 좋았다. 계속되는 폭염이 곡물 품질을 저하시키면서 도정 효율(miling efficiency)도 떨어졌다. 8월에는 태풍 ‘산산’이 등장해 시속 250㎞를 넘는 강풍으로 수확을 앞둔 규슈 및 호쿠리쿠 지역의 농경지를 초토화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작년 수확량은 661만 톤으로 2019년 대비 9% 감소했으며 이는 2차세계대전 이후 최저 작황이라고 한다.

마지막 타격은 수요에서 왔다. 작년에 일본을 찾은 관광객은 3천7백만 명으로 코로나 이전 기록을 넘어섰다. 관광객 한 명이 체류 기간 소비한 쌀은 90그릇으로 모두 266,000톤에 해당하는 데 이는 일본 전체 쌀 생산량의 4%, 비상시 비축량의 1/4에 이른다. 그럼에도 농림수산성은 인구 고령화와 탄수화물을 피하는 식습관으로 수요가 감소한다는 주장을 반복했고 관광 수요 증가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물류 문제로 비축량도 ‘못 풀어’

올해 2월이 돼서야 농림수산성은 210,000톤의 비축량을 풀어 공급 문제를 완화하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도정 및 물류 단계의 병목현상으로 마트 선반까지 도착한 쌀은 일부에 불과했다. 그나마 저금리 위험을 분산하려는 투기 자본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가격은 계속 올랐다. 창고에 쌀을 비축해 두고도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단이 없었다.

소매상들은 정가에 상관없이 쌀이 부족하다 싶으면 가격을 올렸고 4월이 되자 일본 은행(Bank of Japan)이 쌀 가격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고 경고에 나섰다. 쌀 가격이 100엔(약 968원) 오를 때마다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Consumer Price Index Inflation)이 0.05%P 상승한다는 것이다. 일본 은행은 쌀 가격 상승 때문에 예정했던 금리 인상을 미루기까지 했다.

이상 기후로 촉발된 1993년의 헤이세이 쌀 위기(Heisei Rice Crisis)와 달리 이번 사태는 인재(人災)의 성격이 짙다. 경직된 생산 관리 시스템과 노동력 부족, 정책 및 수요 예측 실패가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다. 하지만 같은 이상기온을 겪은 한국은 고온에 강한 쌀 품종 개발을 통해 작황을 유지했고 일본에 수출까지 했다.

정책 실패가 부른 ‘인재’

일본의 쌀 생산 관련 전망은 더욱 어둡다. 고온에 강한 품종을 빠르게 개발하지 못하면 규슈 및 도호쿠 지방의 생산량은 2050년에 20%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하며 지구 온난화가 지속될 시에는 2100년까지 최대 35%의 수확 차질이 우려된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2022년에 발표한 1,640억 엔(약 1조5,900억원)의 식량안보 계획은 별다른 정책 변화 없이 비료를 비롯한 투입에만 집중돼 있다.

이제 일본 정부의 벼농사에 대한 관점도 변할 때가 됐다. 일본에서 벼농사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헥타르당 30만 엔(약 290만원)으로 과일 농사의 1/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부가 지금처럼 생산성 향상과 자생력 강화, 환경 문제를 도외시하고 생산량 감축에만 몰입한다면 더 많은 젊은 농부들이 벼농사를 포기할 것이다.

관광 수요 예상도 마찬가지다. 수개월 전에 충분히 수요 증가를 예상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었음에도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신속한 공급 수단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쌀을 창고에 쌓아두고도 공급 차질을 빚는 경우가 또 발생할 것이다. 운송 및 도정 등 공급망을 미리 준비해 두고 데이터에 기반해 자동 가동되는 비상 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

이번 쌀 부족 사태는 스쳐 가는 이상 현상이 아닌 수십 년간의 정책 실패가 무르익은 결과임을 기억해야 한다.

원문의 저자는 박서희 도호쿠 대학교(Tohoku University) 박사후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Japan faces the bitter harvest of agricultural neglect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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