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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구매력 하락, 내수 붕괴 본격화
‘알테쉬 쇼크’로 패션계 매출 대폭 감소
중고가 시장 무너지며 저가 플랫폼 독식

2030세대의 소비 위축이 유통업계에 경고등을 켜고 있다. 고물가와 고정 지출 증가로 실질 구매력이 크게 하락한 이들은 중간 가격대 제품을 외면한 채 저가 소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이 여파는 패션업계를 시작으로 소상공인, 자영업 시장까지 번지면서 무신사, 다이소 등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대형 플랫폼만 살아남는 양극화를 앞당기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2030의 꽉 닫힌 지각이 시장의 외곽부터 무너뜨리며 경기 침체를 본격화하고 있단 분석이 제기된다.
고물가·고금리·임금 인상→실질 구매력 하락
9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전체 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은 69.8%로 전년 동기 대비 2.1%p 하락했다. 한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 중에서 얼마만큼을 소비로 지출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인 평균소비성향은 소비 지출액을 가처분소득(전체 소득에서 세금 등 비소비지출을 뺀 값)으로 나눈 후 100을 곱해 계산한다.
연령대별로는 2030세대가 가장 큰 위축을 보였다. 1분기 39세 이하의 평균소비성향은 65.2%로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6.3%p 떨어졌다. 이 같은 변화는 소비지출이 소득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평가된다. 39세 이하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548만1,087원으로 전년보다 8.0%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지출은 396만7,734원으로 1.4% 상승하는 데 그쳤으며, 소비지출은 283만3,060원으로 2.8% 감소했다.
이는 고정 수입이 있는 중장년층이나 은퇴층은 상대적으로 꾸준한 소비 여력을 유지한 것과도 대비된다.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청년층의 실질소득이 감소했고, 월세나 대출 이자, 보험료 같은 고정지출 비중이 높아 선택적 소비 여력이 거의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임금까지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생산성과 격차가 벌어졌고, 그 충격이 가장 먼저 임금 협상에서 상대적 열세에 있는 청년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 표면적인 임금 상승이 체감 소득 증가로는 이어지지 않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2030이 소비 중심이었던 패션업계 직격탄
2030세대의 소비 위축이 가장 먼저 반영된 곳은 패션업계다. 의류 소비는 대표적인 선택재로, 경기나 소득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역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계절마다 유행을 반영한 신제품이 출시되면 2030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기존의 중고가 브랜드는 사실상 소비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며, 신상품보다 할인상품을 찾는 소비 행태가 시장의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전언이다.
패션업계 내부에서는 이를 ‘알테쉬 쇼크’라고 부른다. 저가 상품을 앞세운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패스트패션 브랜드 쉬인이 국내에 상륙하며 유통 구조를 바꿔놓은 데다, 경기 위축으로 소비자들이 고가 의류 구매를 꺼리게 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온라인 중심의 유통 구조가 강화되면서 백화점이나 대형 브랜드 위주의 오프라인 채널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브랜드 충성도가 낮은 2030세대의 특성과 맞물려 제품력보다는 가격 경쟁력이 절대적 우선순위가 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단지 일시적인 불황에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패션업계에서 가격 경쟁력이 중요해지는 구조 변화는 이미 고착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이 과정 속에서 2030세대의 소비력 위축은 결정적인 기폭제가 됐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때 소비 트렌드를 이끌던 청년층이 더는 시장의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패션업계 전반은 가격 중심의 저가 플랫폼으로 탈바꿈하는 생존 전략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비 쏠림 현상에 외곽 경제부터 붕괴
2030세대의 소비 위축은 비단 패션 업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주로 찾는 저가 플랫폼과 프랜차이즈가 시장 전체를 흡수하면서 골목상권과 소상공인들의 기반까지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무신사와 다이소다.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2030세대의 수요를 정조준한 이들 플랫폼은 철저히 가격에 기반한 유통 전략으로 시장 점유율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동네 옷가게, 문구점, 잡화점 등은 매출 하락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신용데이터(KCD)가 발표한 ‘소상공인 동향 리포트’에 의하면 올해 1분기 국내 소상공인 사업장당 평균 매출은 4,179만원으로 전년 동기(4,209만원) 대비 0.72%(30만원) 감소했다. 직전 분기인 2024년 4분기(4,798만원)와 비교해도 12.9%(619만원) 감소한 수준이다. KCD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온라인으로 옮겨간 소비자들이 좀처럼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이에 더해 2030세대의 소비 위축까지 맞물리며 폐업을 고려하는 사례도 급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2030의 소비 둔화는 단순히 개인 삶의 질 저하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곧 자영업 생태계, 유통 구조, 지역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신호로 확장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더 싸고 익숙한 브랜드를 택하는 동안 대형 플랫폼의 독점력은 향상되고, 중소상권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식이다. 결국 시장의 외곽에 서 있는 소상공인들부터 하나둘 도태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심부의 타격 또한 시간문제에 불과하다는 게 유통업계 전반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