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0만 달러 내겠다" 트럼프 계정 정지 소송 합의한 유튜브, 검열 완화 시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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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트럼프와의 '계정 정지 소송' 합의금 내고 중단 검열 정책 앞세우는 SNS 플랫폼들, 이용자들도 '캔슬'로 가세 검열 문화 강화될 시 표현의 자유 억압 우려돼

구글 자회사 유튜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계정 정지 소송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SNS 플랫폼과 이용자들 사이에서 형성된 검열 문화가 사회적 논쟁거리로 떠오른 가운데, 막대한 이용자층을 보유한 유튜브가 뜻을 꺾은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유튜브의 행보가 향후 검열 정책 변화를 시사하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튜브-트럼프 소송전 종결
29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튜브가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 정지 소송과 관련해 2,450만 달러(약 343억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소송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합의에는 '합의금을 지급할 뿐 유튜브 측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AP 등 언론에 합의 사실을 시인했지만, 구체적인 언급은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금 가운데 2,200만 달러(약 308억원)를 받을 예정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1년 미 대선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 이후 자신의 계정이 정지된 것과 관련해 구글 등 SNS 플랫폼에 줄줄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유튜브는 의사당 폭동 직후 트럼프 계정을 정지했으며, 폭력을 선동할 수 있는 콘텐츠를 모두 삭제했다. 이후 2023년 3월 트럼프 계정을 복구했다.
지금껏 법률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소송이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평가해 왔다. 실제로 연방 법원은 2022년 5월 메타를 상대로 한 소송을 기각했으며, 다른 소송들도 기각되거나 보류됐다. 그러나 트럼프가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고, SNS 플랫폼들은 줄줄이 합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트럼프의 소송을 주도한 변호사 존 P. 콜은 "트럼프의 재집권이 합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그가 재선되지 않았다면 1,000년 동안 법정 다툼을 했을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SNS 플랫폼의 '이용자 걸러내기'
시장에서는 유튜브가 검열 규제에 대한 입장 변화를 드러내기 위해 이 같은 선택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수년 사이 SNS 플랫폼들의 검열 규제 행보는 점진적으로 심화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트위터가 마조리 테일러 그린 연방 하원의원과 mRNA 백신 개발에 기여한 의사 로버트 말론의 계정에 제재를 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트위터는 "두 계정이 코로나19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퍼뜨렸다"며 제재 사유를 설명했으나, 우파 성향 이용자들은 트위터가 특정 관점을 검열한다며 분노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 검열이 갑론을박의 대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캐나다방송협회(CBC)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 캐나다 온타리오의 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 메건 콘테(Megan Conte)는 인스타그램 계정 접근 권한을 잃고 15년에 걸쳐 쌓아온 계정 데이터를 모두 삭제당했다. 인스타그램 측은 콘테 교사가 아동 성착취, 학대 및 나체 이미지에 관한 기준을 위반했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그는 메타의 문제 해결 도구를 통해 계정 복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CBC가 개입한 뒤에야 계정 정상화와 함께 메타로부터 사과 이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무고한 이용자의 계정이 검열되는 것은 AI 기반 콘텐츠 검열 시스템의 오류 탓으로 추측된다. 기술 분석가 카르미 레비는 CBC를 통해 메타 같은 대규모 플랫폼이 모든 게시물을 사람의 손으로 검토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전 세계적으로 30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한 메타 입장에서는 자동화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며, 현재는 자동화가 통제를 벗어난 상태라는 설명이다.

이용자들 사이에선 '캔슬 컬처' 확산
이 같은 검열 문화는 비단 플랫폼을 넘어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는 이름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캔슬 컬처는 어떤 사람의 언행에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관점과 일치하지 않을 때 이를 보이콧하고 사회적으로 처벌하는 관행을 말한다. 특정인의 발언에서 논란이 될 조짐이 보이면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보다 해당 인물과의 관계를 빠르게 끊는 것이다. 이때 SNS 팔로우를 취소하거나, 그 사람과 관련된 것을 보이콧하며 관계를 끊으려는 행위를 ‘캔슬’이라고 한다.
캔슬 컬처는 이미 각국에서 보편적 문화로 자리 잡은 상태다. 일례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집필한 영국 작가 조앤 K(J.K) 롤링의 경우, 성전환자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가 성전환자 인권 운동가들에 의해 집 주소가 유출되고 SNS상에서 극렬한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토크쇼 진행자인 지미 팰런은 20여 년 전 했던 흑인 분장으로 인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 속 캔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검열 문화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거나 외면당할까 우려해 자기 자신을 억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SNS 플랫폼은 사기업으로, 기본적으로는 공정하거나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면서도 "다만 유튜브만큼 압도적인 공공성을 갖춘 서비스가 검열에 나설 경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가짜 뉴스 등의 확산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열이 강화되는 이상 억울하게 제재를 받는 이용자가 나오는 것은 필연적"이라며 "유튜브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합의를 통해 개인 계정에 대한 제재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