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에 2,000억원 추가 지원 단행하는 MBK, 비판적 시장 여론 의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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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파트너스, 홈플러스에 2,000억원 추가 증여 계획 수년째 반복되는 각종 구설수, 비판 여론 거세져 국민연금 등 공적 LP, MBK 출자에 보수적 태도 고수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진행 중인 홈플러스에 추가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2023년부터 연이어 발생한 논란으로 MBK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형성되자,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서는 양상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MBK의 전례가 여타 국내 PEF 운용사에도 유의미한 압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홈플러스 구제 나선 MBK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 MBK는 공식 사과문을 통해 “국민 일상과 밀접한 기업의 대주주로서 무거운 책무를 온전히 다하지 못한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며 “향후 발생할 MBK파트너스의 운영 수익 중 일부를 활용해 최대 2,000억원을 홈플러스에 증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병주 회장의 사재 출연 등을 포함해 지원한 3,000억원까지 더하면 기업회생 사례 가운데 대주주가 투입한 역대 최대 규모의 자금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MBK가 발표한 지원 방안이 상당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대 2,000억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실제 지원 금액이 이보다 줄어들 여지를 남겨둔 데다, 현재 보유 중인 MBK의 재원을 즉시 활용하는 게 아닌 ‘향후 발생할 운영 수익을 활용한다’는 표현을 써 자금 집행 시기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MBK의 김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막기 위해 급조한 계획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MBK 측은 “일반적인 기업과 달리 사모펀드 운용사의 운영 수익은 투자 및 투자 회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매달 일정하다고 할 수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금액이 모이면 그 금액을 홈플러스에 증여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지원책이 실행되면 인수자 입장에서는 홈플러스에 2,000억원의 자금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그만큼 인수 금액을 줄이는 효과를 갖게 된다”며 “새로운 인수자의 부담을 줄이고 인가 전 인수합병이 성사돼 홈플러스의 정상화가 이뤄지도록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MBK 관련 여론 꾸준히 악화해
PEF인 MBK가 '책무' 등을 거론하며 홈플러스 정상화에 힘을 쏟는 것은 MBK를 둘러싼 시장 여론이 눈에 띄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MBK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시발점은 지난 2023년 12월 발생한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 무산 사태였다. 당시 MBK는 특수목적법인(SPC) 벤튜라를 통해 한국앤컴퍼니 지분 공개매수를 진행했지만, 목표했던 최소 지분율 20.35%를 확보하지 못했다. 한국앤컴퍼니 조현식 고문과 조현범 회장의 갈등에 편승해 경영권을 확보하려다가 쓴맛을 본 것이다. 공개매수로 인해 형성된 극한의 변동성 장세 속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돌아갔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역시 적대적 M&A(인수 대상 회사의 경영진이나 이사회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기업 인수합병)가 보편적이지 않은 우리나라 자본 시장에서 막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PEF인 MBK가 국가 핵심 기간 산업을 영위하는 고려아연을 경영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보다는 단기적 투자금 회수에 경영 초점을 맞추는 사모펀드의 특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후 지난 3월 홈플러스가 기습적으로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MBK의 이미지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 국세청은 2020년 이후 5년 만에 MBK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고, 검찰은 홈플러스의 사기 채권 발행 여부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 착수했다. 홈플러스는 채무 상환을 유예하기 위해 기업회생절차 신청 계획을 세운 뒤 의도적으로 단기 채권을 발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내 LP들, MBK로부터 등 돌렸다
이 같은 시장 여론은 MBK의 '본업'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PEF와 같은 위탁운용사(GP)는 연금·공제회 등 출자자(LP)로부터 출자받아 조성한 펀드로 투자를 집행한다. 더 많은 출자를 따내기 위해서는 ‘평판 장사’가 필수적이며, 시장 신뢰가 훼손될 경우 언제든 자금 조달이 막힐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클로징에 난항을 겪는 중인 MBK 6호 펀드의 조성 과정을 살펴보면 이미지가 PEF의 펀드레이징에 미치는 영향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6호 펀드의 펀드레이징은 작년까지만 해도 수월하게 진행됐다. 상반기에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국내 LP들의 출자 사업에 연이어 이름을 올렸고, 작년 말 2차 클로징 시점에는 초기 설정 목표액인 70억 달러(약 9조5,000억원)의 70%가 넘는 50억 달러(약 7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문제는 작년 하반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가 벌어지며 과학기술인공제회, 노란우산공제회 등 공적 성격의 자금을 운용하는 국내 주요 LP들이 출자 사업에서 MBK를 배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요 시중은행들 역시 6호 펀드에 출자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의 경우 6호 펀드에 약 3,000억원을 출자하면서 '적대적 M&A 투자 금지' 조항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원자력환경공단(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도 유사한 조건으로 출자를 결정했으며, 다른 국내 기관 투자자들도 이 같은 조항 삽입을 요구하는 추세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비단 MBK를 넘어 PEF 업계 전반에 '경종'을 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시장 전문가는 "MBK의 위기를 보면서 다른 PEF들도 여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라며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 LP들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한국 PEF 업계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