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외국산 영화에 100% 관세”, 쇠락하는 할리우드에 또 다른 악재 되나
입력
수정
산업 부흥 위한 조치? 회의론 지배적
OTT 확산으로 극장 산업 활력 저하
미국 중심 영화 생태계도 약화 흐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외에서 제작된 영화에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글로벌 영화 산업 전반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미 할리우드가 관객 감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확산으로 쇠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미국 시장에 도전했던 CJ CGV도 철수를 감행하는 상황이다. 이에 업계에선 “관세 위협은 상징적 성격이 크지만, 영화계의 본질적 위기는 OTT 성장과 글로벌 다극화된 시장 환경”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국적 협업 대부분, 정책 현실성 낮아
29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을 통해 “미국 밖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에 100%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해당 조치를 시행하는 시점과 방식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 같은 발언은 상품이 아닌 서비스 영역에 관세를 적용하려는 첫 번째 시도로, 실제 집행 가능 여부를 떠나 미국 영화 산업 전반에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에도 비슷한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그는 “세제 혜택 때문에 미국 영화 제작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추세”라며 외국산 영화에 100%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할리우드의 지리적 상징성과 맞물려 자신의 정치적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읽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 내 다수의 주와 도시가 각종 세제 혜택을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어 영화 산업의 쇠퇴를 단순히 해외 정부의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미국 내 영화계에서도 정책 현실성에 대한 회의론이 주를 이룬다. 할리우드 영화 대부분이 미국 내외를 오가며 촬영하고, 시각 효과와 후반 작업은 캐나다·영국·호주 등 해외 허브에 의존하는 등 다국적 협업으로 제작되는 탓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외에서 1%라도 제작비가 발생하면 전체 영화가 ‘외국산’으로 분류될지, 아니면 해당 비중에 따라 관세가 매겨질지 기준조차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혼란을 가중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자금 조달과 배급 구조다. 최근 콘텐츠 산업은 글로벌 합작 형태로 자금과 인력을 조달하는 사례가 일반화돼 있어 어느 지점을 미국산과 외국산으로 구분할지 실무적 난제로 꼽힌다. 게다가 영화는 물리적 상품처럼 국경을 넘어 거래되는 구조가 아니라 디지털 유통과 OTT를 거쳐 전 세계에서 소비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산업 부흥을 위한 실질적 조치가 될 수 없다는 게 미국 영화계 전반의 시각이다.

이미 흔들리는 할리우드
할리우드는 20세기 초부터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 군림했지만, 최근 그 위상은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북미 영화 흥행 통계 사이트 더넘버스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영화관 수입에서 미국 영화의 점유율은 69.5%를 기록했다. 이는 2009~2010년 90%를 웃돌던 시기와 비교해 20%p 이상 하락한 수치로, 10년 전인 2014년 85.6%와 견줘도 큰 격차다. 같은 기간 중국의 점유율은 5.5%에서 16.5%로 세 배 늘었고, 일본도 애니메이션 강세에 힘입어 0.6%에서 4.9%까지 확대됐다.
2020년 불어닥친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이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급감한 관객이 여전히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가운데,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이 일상화된 것이다. 영화 산업 분석사 가워스트리트애널리틱스는 지난해 북미 극장 산업 수익을 88억 달러(약 12조3,000억원)로 추산했는데, 이는 2017~2019년 평균(115억 달러·약 16조1,000억원)보다 20% 이상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관객 기반이 약해지면서 제작사들은 시리즈물이나 가족용 영화 같은 안전한 콘텐츠에 집중하는 식으로 위험을 최소화했고, 이는 다시 창의성과 다양성이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자본 환경도 악화했다. 과거 할리우드의 주요 자금줄이었던 중국 자본 유입이 줄어들면서 제작 예산이 빠듯해졌고, 이로 인해 실험적 시도보다는 안정적 흥행이 보장되는 작품에 치중하는 경향이 굳어졌다. 여기에 2023년 각본가와 배우들의 대규모 파업은 수개월간 제작을 지연시켰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시장이 사실상 막히는 등 외부 변수도 이어졌다. 또 올해는 캘리포니아 산불로 촬영 현장이 피해를 입으며 산업 전반이 연쇄 타격을 받는 등 잇단 악재에 할리우드의 회복 동력은 갈수록 약화하는 형국이다.
스타 배우들의 영향력 역시 예전 같지 않은 모양새다. 과거 세계적 발언권을 가졌던 할리우드 배우들은 최근 들어 미국 내 정치적 분열과 팬덤 리스크를 의식해 공개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대선에서 일부 유명 배우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긴 했지만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가자지구 공습과 같은 국제 현안에도 대부분 침묵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조이 살다나가 소수 이민자 배우로서의 목소리를 낸 사례는 이례적일 정도다. 업계 안팎에서는 “스타의 아우라가 옅어지고 다양성과 도전 정신이 사라진다면, 할리우드는 더 이상 과거처럼 빛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CGV 미국 시장 철수의 교훈
CJ CGV가 미국 시장에서 철수한 사건은 극장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CGV는 이달 21일 미국 LA 지점을 영구 폐쇄하며 북미 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이는 지난 3월 부에나파크 지점 운영권을 현지 업체 리젠시 시네마에 양도한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발생한 일로, 지난 15년간 이어져 온 CGV의 미국 내 확장 시도 또한 모두 막을 내렸다. 이 같은 사례는 극장이 더 이상 콘텐츠 소비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선명히 드러냈다.
OTT 확산은 CGV가 직면한 가장 큰 벽이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HBO맥스 등 글로벌 OTT는 팬데믹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그렸고, 관객들은 원하는 장소에서 맞춤형 콘텐츠를 감상하는 데 익숙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관 방문객 수는 급격히 줄었으며, 극장은 ‘필수’에서 ‘선택’으로 전락했다. OTT의 편의성과 콘텐츠 다양성이 소비자 선택을 장악하면서 극장은 점차 경쟁력을 잃어갔다.
전문가들은 미국 극장 산업의 재건을 위해선 관세 같은 규제보다 혁신적 대응이 더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OTT가 국경을 초월해 시장을 확장하며 전통 극장의 입지를 위협하는 가운데, 단순히 상영관 수를 늘리는 방식은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이다. 나아가 이를 해소하기 위해 프리미엄 상영관, 독점 콘텐츠, 첨단 기술 체험, 커뮤니티 기반 이벤트 등 극장만의 경험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조언 또한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카드보다 더 큰 도전은 OTT와 다극화된 시장 구조며,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미국 내 영화 산업의 몰락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