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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 반서방 구심점에서 전략적 무력체로 연쇄 분쟁 속 침묵한 SCO, 집단안보의 허상 중국 전략은 구호뿐, 러시아는 또 동맹 외면

중국이 의장국을 맡은 상하이협력기구(SCO)가 연이은 지역 분쟁으로 조직의 효율성과 중국의 리더십에 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5월 인도가 코드명 '신두르 작전(Sindoor Operation)'으로 파키스탄 관리 카슈미르의 테러 기반시설을 겨냥한 미사일 공격을 가한 데 이어, 6월 이스라엘이 이란의 군사·핵 시설에 전례 없는 공습을 감행하면서 SCO 내부의 구조적 모순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이란 충돌로 시험대
3일 닛케이 아시아는 인도-파키스탄 분쟁에서 SCO가 2019년 풀와마(Pulwama) 공격 때와 마찬가지로 단계적 해결을 위한 메커니즘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자제를 촉구하고 이란이 셔틀 외교를 시도했지만, SCO는 공식적인 중재나 조사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합의 기반 의사결정 모델이 특히 핵보유국 관련 분쟁에서 신속한 조치를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스라엘-이란 대결에서는 조직 내 균열이 더욱 뚜렷해졌다. SCO가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공동 규탄하며 "국제법과 국제연합(UN) 헌장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라고 성명을 발표했지만, 인도는 거리를 두며 성명 지지나 관련 심의 참여를 거부했다. 이는 인도가 이스라엘과의 강력한 국방 관계 유지, 이란 항구 이익 보존, 명백한 블록 동맹 회피라는 계산된 전략적 균형을 반영한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는 SCO를 서방 주도 집단안보 동맹에 대한 균형추로 자리매김하려 하는 반면, 인도는 전략적 자율성을 우선시하며 대안적 글로벌 사우스 리더로서의 입지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SCO가 안보, 주권, 지역 안정 등 핵심 문제에서 통일된 전선을 제시하는 능력을 제한한다. 더욱이 중국은 파키스탄과의 긴밀한 파트너십, 인도와의 신중한 화해, 이란과의 전략적 관계라는 독특한 위치에 있지만, 이는 중립적 중재자로서의 행동 능력을 제약하고 있다.

수사적 지원 외 실질적 도움은 전무
SCO는 출범 초만 해도 ‘반서방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명확한 지정학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특히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SCO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비서방 진영의 외교적 구심점으로 기능해 왔다.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이란 등 유라시아 핵심국들이 포함된 SCO는 공동 군사훈련, 안보 협의, 경제협력 등을 내세우며 일대일로 구상의 제도적 플랫폼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실질적 공조보다는 상징적 구호에 머문 SCO의 운영 방식은 회원국들의 전략적 회의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실제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권을 쥔 채, 다른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수렴하지 못하는 구조적 비대칭은 지속적인 마찰을 야기해 왔다. 특히 인도와 파키스탄 같은 상호 적대적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을 한 조직에 포함하면서, 내적 응집력 확보에 실패한 채 외형적 확장에만 치중해 왔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SCO가 미국 주도의 안보 질서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반복적으로 채택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대안 질서를 제시하거나 실질적 협력체계를 구현하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 결과 SCO는 반서방이라는 상징성 외에는 내세울 실익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더군다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로 인한 서방의 제재 국면 속에서도 SCO는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도, 그렇다고 명확한 중립노선도 유지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를 반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과 푸총 주UN 대사 등의 입장 표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며 이란의 주권·안보·영토보전 침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수사적 지원 외 실질적 도움은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SCO의 정치적 리더십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중국의 전략적 주도력에 회의적인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다.
러시아도 이란에 '립서비스'만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간 이란과 군사·경제에서 긴밀하게 공조해 왔음에도 정작 이란이 치명타를 입자 별다른 지원 없이 ‘립서비스’만 했다는 평가다. 실제 러시아는 지난달 미국이 이란을 공습하자,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내겠다고 했지만, 결의안 초안만 만들었을 뿐 더는 진행하지 않았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9일 긴급 통화를 했으나 “이란 핵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푸틴) “무력은 증오와 갈등을 심화할 뿐”(시진핑) 같은 원론적 대화만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지난달 23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 장관을 모스크바로 급파해 지원을 요청했을 때도 푸틴 대통령은 답변을 피한 채 “미국의 공습은 전혀 정당성이 없는, 도발도 없는 침략 행위”라는 속 빈 말만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탄약·포탄을 비롯, 무인기 수천 대를 지원했다. 또 지난 1월 러시아와 동맹에 준하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그럼에도 러시아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과거에도 비슷하게 동맹국을 외면한 적이 있다. 아르메니아가 2020·2022년 아제르바이잔과 분쟁을 겪었을 때, 그리고 지난해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졌을 때 개입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군사 개입 여력이 부족한 데다, 이란 사태에 섣불리 개입했다가 미국이 중재를 주도하는 러·우 휴전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은 독재자 친구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등을 돌린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