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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EU 관세 강화에 대응해 아세안과 다자 협력 확대 역내 생산 거점·투자 늘리며 공급망 결속 강화 시도 동남아, 투자·고용 기회와 대중 의존 심화 사이에서 균형 과제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5년 1분기 아세안(ASEAN)은 다시 중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 올라섰다. 중국 전체 대외무역에서 아세안이 차지한 비중은 16.6%로, 3개월간 약 1조7,100억 위안(약 316조원)에 달했다. 2024년 양자 교역액은 약 6조9,900억 위안(약 1,300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외교적 수사를 넘어 무역 질서 재편의 흐름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전지 등 그린테크 제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미국은 전기차 관세를 100%로,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38%의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중국은 아세안-중국 자유무역지대(ACFTA) 3.0 개정, 메콩 지역 다자 협력 확대, 태국·인도네시아 등 역내 생산 거점 확충에 나섰다. 이러한 행보는 협력 확대라기보다 공급망 결속과 무역 기반 유지를 위한 전략 조정에 가깝다. 동남아가 이를 성장 기회로 삼으면서도 과도한 의존을 피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진정한 다자주의보다 전술적 중개
중국은 자신을 제국이나 개방형 국제질서의 수호자로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관세 장벽을 우회하고 공급망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자 협력 틀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미국과 EU의 무역 장벽 강화는 이 전략의 속도를 높였다.
구체적 조치는 ACFTA 3.0 개정, 전자상거래 협력을 통한 디지털 실크로드 확대, 메콩 지역 소규모 개발사업과 생산 네트워크 결합 등이다. 겉으로는 상호 이익을 표방하지만, 실제 목적은 중국의 산업·무역 기반 유지에 있다. 아세안 국가들에는 투자와 기술, 일자리를 확보할 기회가 되지만, 주도권을 놓치면 중국 의존이 심화될 수 있다. 관건은 이 협력이 역내 자립과 회복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하느냐다.
아세안의 기회와 부담
2023년 아세안은 2,300억 달러(약 316조원)의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해 개발도상국 중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투자는 디지털과 친환경 산업에 집중됐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 BYD는 2024년 태국 공장을 가동해 연간 15만 대 생산과 배터리 조립을 현지에서 처리하고 있으며, 중국 배터리 대기업 CATL은 인도네시아에서 약 60억 달러(약 8조2,400억원) 규모의 배터리 통합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2025년 1분기 중국-아세안 교역액은 2,340억 달러(약 321조원)로, 서방의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에도 증가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과 EU 시장에서 밀려난 수출 물량을 아세안으로 돌리면서 현지 산업 부담이 커졌다. 저가 중국산 제품이 대량 유입돼 섬유·전자·자동차 업종에서 가격 경쟁이 심화되고, 이에 따라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공장 가동 조정 압박이 커지고 있다. 생산 이전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동시에 특정 산업의 대중 의존도가 높아지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주: 기간(X축), 금액(Y축)/중국 → ASEAN 수출(진한 파란 선), ASEAN → 중국 수입(연한 파란 선)
관세와 원산지 규정, 우회 경로 논란
미국의 전기차 관세 100% 인상과 배터리·반도체·태양광 전지 관세 인상, EU의 최대 38% 상계관세 부과로 중국 기업의 아세안 진출 유인이 커졌다. 그러나 규제도 강화됐다. 미국 상무부는 이미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을 통한 중국산 태양광 제품의 관세 회피를 적발했고, 새로운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로 동남아 전역이 주시 대상이 됐다.

주: 지역-미국, 유럽연합, ASEAN 평균(X축), 관세율(Y축)/2024년 이전 관세율(진한 파란색), 2024년 이후 관세율(연한 파란색)
이에 따라 원산지 규정(Rules of Origin, ROO) 준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과 개정 ACFTA 3.0은 여러 회원국에서 생산한 부품과 소재를 합산해 최종 제품을 ‘역내산’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확대했다. 이를 통해 합법적인 원산지 재인증이 가능하지만, 활용률은 국가별로 차이가 크고 절차도 복잡하다.
전환의 지속성과 과제
미국과 EU의 대중 관세 정책은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정학적·경제적 위험을 줄일 수 있으면 다변화를 추진하고, 불가피할 때는 거래 비중을 축소하는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2025~2028년 동안 중국의 중개 전략이 약화되기보다 강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아세안의 전기차·배터리·태양광 산업 생태계는 성장 중이지만 중국산 중간재 의존도가 높아 원자재 가격 변동이나 주요 시장의 관세 조치에 민감하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투자와 고용 확대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가치사슬 고도화와 현지 산업 연계 강화 없이는 이익이 장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ACFTA 3.0과 RCEP은 표준 조율과 중소기업 참여 확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중국 부가가치 집중을 심화시킬 위험도 있다.
정책 대응 방향
정책당국은 산업계와 협력해 시험·인증 허브를 설립하고, 가치사슬 핵심 단계를 역내에 유지해야 한다. 원산지 규정 지원센터를 운영해 미국·EU 제재 위험 없이 합법적으로 부품을 누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우회 시도 가능성을 고려해 지원과 집행을 병행하고, 전자 원산지 증명서와 무작위 감사 체계를 도입하며, 투자 위축을 막으면서도 실효성 있는 제재를 적용해야 한다. 목표는 중국 주도 흐름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역내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비판과 반론
일부에서는 중국의 행보를 규범을 앞세운 신제국주의로 평가하지만, 아세안이 상호주의 규칙을 고수한다면 상황은 다르다. ACFTA 3.0 개정안에는 디지털·그린 경제 장이 포함돼 있으며, 이를 투명성과 공급망 연결 표준과 결합해 강제력 있게 설계하면 지역 주도권을 확대할 수 있다.
또한 EU와 미국의 관세 장벽은 생산기지 재배치 과정에 지속적으로 제약을 가하고 있다. 단순 환적은 무거운 벌금을 불러오기 때문에 기업들은 현지 콘텐츠 확대, 인력 훈련, 시험 인프라 구축 등에 실질적으로 투자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우회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이 규제를 더 강화하면 일부 이전은 중단될 수 있지만, 중국 기업들은 이미 물리적 투자를 마쳤다.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주요 프로젝트는 매몰 비용이기 때문에 쉽게 철수하기 어렵고, RCEP의 누적 규정은 합법적인 역내 콘텐츠 재인증 과정의 마찰을 줄여준다.
판을 소유하지 않고도 참여하는 전략
중국은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한 적은 없지만, 자유무역협정 개정, 역내 펀드 지원, 공동 생산 거점 확대, 개방성 확대 조치가 관세 장벽 속에서도 효과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수치 자체가 아니라, 어떤 구조 속에서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누가 규칙을 설계하며 기술 축적이 이뤄지는지다. 동남아는 중국의 전략을 활용하되 과도한 의존을 피하고, 상호주의와 실질적 협력 기반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지역 주도권을 강화해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From Emperor to Broker: China’s Tactical Multilateralism Meets a Wary Southeast Asia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