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2박3일 방한 일정 모두 경주에서 소화, 여론 의식해 서울행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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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취소설 일단락, 경주 중심 회담 일정
과거 중국 ‘이기주의’로 부정적 평가 일색
외교 행보 변화→한중 관계 영향 가능성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 달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당초 중국은 서울 신라호텔 숙박 계획을 돌연 취소해 방한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지만, 결국 숙소 변경 계획을 알리며 여론을 의식하는 행보를 보였다. 과거 국제사회는 중국을 배금주의와 권위주의에 매몰된 사회로 평가하며 패권국 도약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해 왔으나, 이번 조치를 통해 외교 상대국의 민심을 고려하는 변화를 보여줬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서울 체류 일정 취소, 국내 여론 의식했나
30일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시 주석은 다음 달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2박 3일간 방한한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시 주석은 전 기간을 경주에 머물며 한중 정상회담은 물론 미·중 정상회담도 모두 이곳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중국이 내년 APEC 의장국을 맡는 만큼 회의 말미에는 의장직 인수와 차기 개최지 발표 절차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에겐 경주가 이번 방한의 중심 무대가 되는 셈이다.
다만 방한 형식 자체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한국을 공식적으로 양자 방문하는 형식을 취할 경우, 중국은 APEC 참석을 넘어 한국과의 관계 강화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 그러나 단순히 다자 회의 참가 차원으로 경주에 오는 것이라면, ‘장소가 한국일 뿐’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정부 내부적으로 시 주석의 이번 일정을 국빈 방한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최종 채택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양국의 외교적 수위 조절이 병행되는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 과정에서 서울 신라호텔 숙박 계획이 돌연 취소돼 눈길을 끌었다. 당초 중국 측은 시 주석 일행이 APEC 정상회의 직후 서울 신라호텔에 체류하며 한국 정부와 별도 회담 일정을 가지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지난 27일 대관을 취소했다. 앞서 신라호텔은 국가 행사 일정을 이유로 기존 예약자들의 결혼식을 취소 통보했으나, 중국 측 예약 철회로 예정된 예식을 치를 수 있다는 안내를 내놨다. 이에 일각에선 “혹시 시진핑 방한 자체가 취소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이번 조정은 방한 취소가 아닌 숙소 변경으로 귀결됐다. 시 주석 일행의 경주 체류로 일정이 확정되면서 신라호텔 대관은 불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취소된 행사들이 원상 복구된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중국 측이 국내 여론에 신경을 쓴 결과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신라호텔이 소비자 예식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사실이 사회적 공분을 산 만큼, 중국이 불필요한 잡음을 피하고 한국 여론을 고려한 행보를 택했단 해석이다.
“중국, 패권국가 도약 불가능” 비판도
과거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경제 규모가 급격히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부에는 배금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다는 인식이다. 많은 국제 전문가가 중국은 “사회 구성원 간의 네트워크와 호혜적 관계가 결여돼 있으며, 공산당 중심의 강한 통제 체제가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구조로 작동한다”는 비판을 쏟아냈고, 이는 중국 사회 전반에 신뢰와 규범을 형성하는 ‘사회적 자본’이 부족하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이 같은 한계는 중국이 패권국으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전망을 낳기도 했다. 서방 사회가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법치, 관용, 민주주의, 다양성과 같은 가치가 뿌리내려 사회적 자본이 자연스럽게 축적됐기 때문인데, 중국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아래에서 자유로운 사상과 개성을 억누르는 탓에 국민 간 신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관시(關係)’ 문화는 중국 내 사회적 자본을 대신하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배타성과 폐쇄성을 강화해 부패로 연결될 위험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공산당이 내세운 ‘중국몽’이나 ‘민족 부흥’ 같은 구호도 국제사회에서는 협력보다는 충성과 지배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해석됐다. 덩샤오핑 체제 아래선 개혁개방 전략이 일정 수준의 성과를 냈으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1만 달러 수준에 도달하면서 체제적 모순이 노출됐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선 중국이 미국을 경제 규모에서 추월하더라도 인권·민주주의·법치 등 보편적 가치의 결핍 때문에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견해 또한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 국제사회는 중국의 성장세를 단순한 경제적 부상으로만 평가했을 뿐, 이를 글로벌 리더십과 동일시하지 않았다. 중국은 공산당의 강력한 통치 시스템과 9,000만 명이 넘는 당원을 기반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는 오히려 사회적 자본 결핍을 상쇄하기 위한 강압적 장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처럼 부정적 이미지가 장기간 누적되면서 중국은 패권국으로 올라서기에는 근본적 자산이 부족하다는 비판적 시각 또한 오랜 시간 이어졌다.

외교 상대국 여론 고려 행보 이례적
하지만 국제사회의 이러한 부정적 시각은 중국이 외교 현장에서 이미지 관리에 민감해지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최근 중국은 정상외교를 준비할 때 회담 장소와 일정을 단순화하고, 현지 여론을 자극할 수 있는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려는 태도를 보인다. 대표단의 숙소 및 행사 동선을 조정하거나 불편이 예상되는 부분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실무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개최국 국민 여론을 중요한 변수로 인식하고 있단 신호로 읽힌다.
이번 방한 일정의 조정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내년 APEC 의장국으로서 이미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시 주석으로선 의장직을 인수한 직후부터 회의 의제를 주도해야 하는 만큼 한국 내에서 불필요한 논란이나 잡음을 만들어선 안 되는 상황이다. 이는 곧 중국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행사 외 불필요한 잡음을 피하고, 국내 민심과 언론 환경을 고려한 조정이 더 큰 외교적 이득으로 이어진다는 계산으로 이어진다.
외교계에선 중국의 이러한 태도가 일회성에 그칠지,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관행으로 굳어질지 주목하는 모양새다. 행사 보도 방식, 회담 수위 조절, 생활 불편 최소화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중국이 외교 상대국 여론 관리 자체를 하나의 전략으로 편입한 것과 같다는 평가다. 반대로 이번 사례만으로 끝난다면, 전술적 대응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관전 포인트는 향후 국제사회 내 중국의 외교적 신뢰도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