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지 않는 소비·경기부양은 지지부진, 세계 경제 흔드는 中 디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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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주택 투자 붐으로 경기부양 지금은 부채 많고 금리 낮아 부양 한계 내수 부진에 헐값 수출 공세 악순환, 세계 경제 좀먹는다

중국 정부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대응을 위해 전기차·태양광 등의 과잉생산을 옥죄고 나섰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과의 관세 전쟁으로 수출길이 막힌 만큼 얼어붙은 내수 소비를 끌어 올리는 게 관건으로, 공급만 틀어쥐기보다는 소비 부양책이라는 ‘당근’을 같이 내놔야 정책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급통제만으로는 침체 극복 한계”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중국 당국의 과잉 생산 억제 노력은 철강과 태양과 부분의 과잉 공급 문제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규모 경기 부양책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콩 투자분석업체 가베칼 드라고노믹스의 중국 연구 부국장인 크리스토퍼 베드도르는 “2015년 플레이북을 단순히 다시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는 가계 수요 약화와 같은 광범위한 거시경제적 것으로, 일부 산업에서 경쟁을 제한하기 위한 일련의 무분별한 정부 개입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5년 디플레이션에 직면했을 당시 중국 정부는 공급 과잉 문제를 단속하는 한편 9,000억 달러(약 1,260조원)에 달하는 주택 투자 붐을 일으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금도 10년 전과 같은 공식을 적용하려 하고 있지만, 경기 부양의 불씨를 지필 방법이 없어 오히려 경제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더군다나 중국 당국이 경기 부양에 나설 수 있는 여력도 많지 않다. 중국의 총부채는 10년 전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의 200%가 조금 넘었지만 지금은 300% 이상으로 치솟았다. 주요 정책 금리도 1.4%에 불과해 중국인민은행이 금리를 인하할 여지도 크지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을 여력이 없다면 더 큰 폭의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진단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현 상황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수출 경쟁력을 위해 특정 산업에선 디플레이션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모습도 보인다. 실제 중국 정부 내에서 디플레이션은 여전히 금기어다. 각종 경제정책 발표나 기자회견 때 언급조차 막혀 있다. 부진한 경제 데이터는 무역전쟁 등 외부 탓으로 돌린다. 오히려 중국 정부 일각에선 “가격이 떨어지면 좋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중국 경제 불안한데 증시는 14% 껑충, 소비 줄이고 저축·투자 확대
하지만 중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경제정책은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당국은 무역 전쟁이 야기한 수출 타격을 상쇄하기 위해 재고를 내수로 돌리고 있는데, 이는 과잉 투자, 과잉 공급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소비 심리를 더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최근 미국을 능가하는 상승세를 뽐내고 있는 중국 증시가 이를 방증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한 달 사이 중국 본토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 달러(약 1,390조원) 늘어났다. 25일 종가 기준 상하이종합지수는 올해 들어 14% 넘게 뛰면서 1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상하이와 선전 증시 우량주를 묶은 CSI300지수는 같은 기간 11% 넘게 올랐다. 연중 저점에 비해선 20% 이상 급등했다. 올해 10% 상승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를 웃도는 성적이다.
이 같은 랠리는 중국의 경기 불확실성과 부동산·채권 같은 다른 투자처의 매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고액 자산가나 기관 투자자들이 증시로 몰린 영향이다.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 때문에 소비를 줄이고, 지출 대신 저축이나 투자 쪽으로 돈을 돌리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의미다. 디플레이션이 무서운 이유는 경제를 빠르게 좀먹는 데 있다. 소비자들이 제품·서비스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믿고 구매를 미루면 기업의 매출은 줄고 수익도 악화된다. 어쩔 수 없이 기업은 근로자 임금과 고용을 줄이고 투자까지 축소한다. 쓸 돈이 없어진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물가는 더 떨어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中 디플레 수출, 세계 경제에 악재
이러한 악순환은 세계 경제에도 적신호다. 경기 둔화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한 중국이 상품 수출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로, 싼값의 중국 제품의 공세에 중국과 유사한 수출 구조를 가진 국가는 산업 경쟁력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GDP 대비 무역 비중이 높고 그중에서도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도 악재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가격 경쟁에서 밀리며 제조업 기반이 악화될 수 있고, 이에 따라 국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릴 위험이 크다.
중국 디플레이션 수출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에도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자국산 제품보다 턱없이 싼 중국산 제품이 밀려들면서 기업 줄도산, 정리해고 등 각종 피해에 시달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 등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겪은 ‘차이나 쇼크’를 개도국이 뒤늦게 겪고 있는 셈이다.
중국발 저가 수출로 큰 피해를 본 또 하나의 국가는 태국이다. 태국 산업부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플라스틱, 가죽, 고무, 기계, 금속, 목재 가공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3,500개 태국 업체가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1년 월평균 도산 업체 숫자가 57개였지만, 지난해 들어 월평균 97개 업체로 늘어났다. 태국 내에서는 제조업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끄랭끄라이 티안누꾼 태국 산업연맹 회장은 “합법과 비합법 경로를 통해 시장에 유입되는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인해 태국 제조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작년 45개 산업 분야 중 20개가 저가 덤핑 상품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베트남도 중국산 저가 상품 유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베트남 의회는 지난해 12월 테무의 베트남 내 서비스를 중단시켰고, 지난달부터는 100만 동(약 5만6,000원) 미만의 저가 수입품에 대해서도 최대 10%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동남아 지역 최대 시장인 인도네시아도 지난해 6월 중국 영상 플랫폼 틱톡의 쇼핑 서비스인 틱톡숍 영업을 중단시켰고, 중국 온라인 쇼핑몰 테무의 시장 진입도 차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