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탈미 에너지’ 선언, 미·러 협상이 바꿀 글로벌 에너지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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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선 다변화 속 미·중 갈등 심화
미국은 동맹국 에너지 수출 확대
미·러 유화적 메시지, 협력 가능성↑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에너지 분야로 전선을 넓히는 모습이다. 중국은 러시아에서 저렴한 에너지를 대량 확보하며 비용 절감과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나섰으며, 중국향 에너지 수출이 급감한 미국은 한국과 유럽 등 동맹국을 중심으로 수출선을 다변화해 단기 충격을 완화했다. 다만 최대 수입국인 중국을 상실했다는 점은 미국에 적잖은 부담을 지울 것이란 평이 지배적이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협력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 재편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무역 갈등 에너지 분야로 확산
25일 중국 언론 관찰자망은 해관총서(관세청) 최신 통계를 인용해 “중국의 지난 6월 미국산 석탄·원유·액화천연가스(LNG) 등 3대 주요 에너지 수입이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줄었다”며 “특히 원유는 단 1배럴도 수입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미국산 원유를 전혀 수입하지 않은 것은 지난 3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이러한 통계는 양국 간의 경제적 대립이 에너지 교역에서 현실화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LNG의 수출 감소세도 매우 뚜렷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의하면 지난 2월 초 텍사스 코퍼스 크리스티를 출발해 중국 푸젠성에 도착한 6만9,000 톤(t)급 LNG선을 끝으로 중국행 미국산 LNG 운송은 10주 이상 ‘완전 중단’ 상태를 지속했다. 중국이 미국산 LNG에 15% 추가 관세를 부과한 것도 모자라 이를 49%까지 높이면서 거래 경제성을 사실상 제거한 데 따른 결과다.
대체 수급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기관 CEIC의 조사에서 지난 7월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16.8% 증가했으며, 러시아·중앙아시아에서 들어오는 파이프라인 가스 유입도 4.8% 늘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자국 내 천연가스 생산량을 1년 사이 7.6% 늘리며 외부 변수에 대한 완충력을 키웠다. 이 같은 ‘미국산 LNG 축소→러시아산·파이프라인 확대’ 조합은 단기간 조정이 가능하고 물량 안정성이 높아 중국 내 산업용·발전용 수요의 비용 부담을 매우 효과적으로 낮추는 해법으로 작동한다.
다만 해당 전략이 장기 해법이라는 보장은 없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이 커질수록 제재 심화나 지정학 충격에 취약한 것을 물론, 러시아의 태세 전환에 따라 공급 여력 위축과 가격 재상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협상 파트너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노출되는 ‘비가격 리스크’가 커지는 셈이다. 중국이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하면, 단기 비용 절감 이익이 가격 급등과 공급 차질로 역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업계 전반의 평가다.
상반기 美 에너지 무역수지 430억 달러 흑자
중국이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대폭 줄이면서 직격탄을 맞은 쪽은 미국 셰일업계다. 미국은 2019년 이후 LNG 수출국 순위에서 카타르·호주와 함께 3강을 형성했는데, 당시 중국은 미국산 LNG의 3대 수입국(연간 600억㎥ 이상)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중국행 물량이 0으로 수렴하면서 미국의 전체 LNG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 또한 작년 11%에서 올해 0%로 급락했다.
그럼에도 미국 전체 LNG 수출량은 7월 기준 5,840만 t으로 전년 동월 대비 6.2% 증가했다. 중국이 빠져나간 공백을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등 동맹국 수출량 증가로 만회한 덕분이다. 특히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 1,000억 달러(약 139조원) 규모의 에너지 구매 약정을 체결했고, 실제로 올 상반기 미국산 LNG 수입을 전년 동기 대비 28% 늘리면서 중국행 물량의 상당 부분을 대체했다.
유럽의 수요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EU는 러시아산 가스를 줄이며 미국산 LNG 의존도를 높였다. 그 결과 올해 1~7월 EU의 미국산 LNG 수입은 약 2,250억㎥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은 다소 높은 단가에도 공급 안정성을 이유로 들며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확대했고, 미국 역시 유럽을 중심으로 수출 선적을 조정하면서 늘어난 수요에 대응했다. 그 결과 미국의 에너지 무역수지는 올해 상반기 기준 430억 달러(약 60조원)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국을 잃은 대가 또한 분명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LNG 수입량 1억1,000만 t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한 데다, 원유 수입도 연간 5억 t을 넘는다. 이런 시장에서 배제된 미국은 안정적 수요처 확보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투자 안정성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의 장기 계약을 기반으로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에서 신규 LNG 터미널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지만, 계약이 무산되면서 투자자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다. 중국이 공급선에 변화를 주는 동안 미국은 소수 우호국과의 계약에 의존하는 구도에 갇힌 셈이다.

미·러 협력 시그널에 시장 재편 움직임
이 과정에서 가장 이득을 본 국가는 단연 러시아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일평균 230만 배럴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그 결과 러시아는 사우디를 제치고 중국의 최대 원유 공급국 지위에 올랐다. 서방 제재 여파로 할인된 가격이 적용되면서 중국은 비용 절감과 안정적 공급을 동시에 확보했고, 러시아는 고립된 수출 통로를 중국으로 집중하며 상호 의존도를 한층 높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에 10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으나, 이달 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을 기점으로 양국의 협력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태도를 바꿨다. 푸틴 대통령 역시 회담 직후 “알래스카 LNG 사업 협력에 대해 미국과 논의 중”이라고 밝히며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리스크로 다가오는 만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시장 안정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변화를 글로벌 에너지 질서 재편의 최대 변수로 지목했다.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지정학적 리스크 또한 함께 커지고, 미국이 러시아와 손잡을 경우엔 중국의 협상 지위도 약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는 곧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미·중 갈등’과 ‘미·러 협상’이라는 이중 축에서 재편되는 국면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