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꾼 세계 곡물 가격의 기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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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피해로 축소된 경작지·노동력 물류 차질·보험료 상승에 따른 비용 구조 변화 지뢰 제거·관개 복구가 좌우하는 재건 과제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2021년 약 3,300만 톤의 밀을 수확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다 해도 이 수준을 회복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향후 생산량이 2,000만 톤 초반대에 머물 것으로 내다본다. 지뢰와 불발탄으로 오염된 농지, 카호우카댐 붕괴로 관개가 끊긴 경작지, 그리고 난민과 해외 이주민으로 인한 노동력 공백 때문이다.
이 같은 제약은 일시적 차질이 아니라 곡물 생산과 수출 비용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결국 국제시장에서 ‘전쟁 전 가격’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다만 정책적 지원과 투자가 뒷받침된다면 우크라이나 농업은 새로운 조건 속에서 회복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가격 충격에서 구조적 변화로
전쟁 직후 곡물 가격 급등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항로가 열리고 러시아 수출이 정상화되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전쟁은 가격 결정 요인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세계 다른 지역에서 공급이 늘더라도 옥수수와 밀 가격은 침공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곡물의 저장과 출하 시기, 거래 과정에서 붙는 위험 부담까지 달라졌기 때문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의 곡물 가격지수는 2022년 급등 이후 다소 안정됐지만 여전히 큰 변동성을 보인다. 전쟁 초기 밀 가격은 40% 가까이 치솟았다가 이후 하락했지만, 지금도 침공 전보다 2~3%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5년 중반 가격 역시 코로나 이전의 저점에는 미치지 못한다.
결국 중요한 점은 매달 가격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아니라, 가격의 바닥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데 있다. 생산·물류·보험 전반의 비용이 상시로 발생하면서 시장의 구조적 변수로 굳어졌다.

주: 왼쪽-옥수수 가격, 오른쪽-밀 가격/연도(X축), 실질 가격 지수(Y축)/침공이 없었을 경우의 가격(연두색), 해상 수출이 없었을 경우의 가격(연한 빨강), 현재 상황에서의 가격(진한 빨강), 실제 가격(초록색)
지뢰와 관개 손실, 땅이 남긴 과제
곡물 생산의 핵심은 토지와 물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전쟁으로 심각하게 훼손됐다. 2024년 조사에서 우크라이나 농지는 ‘심각한 오염’ 단계에서 ‘대규모 오염’으로 상향됐다. 정부는 약 47만 헥타르를 지뢰 제거 우선 대상으로 지정했지만, 실제 경작으로 복귀한 면적은 극히 제한적이다.
카호우카댐 붕괴는 남부 농업지대에 큰 타격을 줬다. 약 60만 헥타르가 관개 시설을 잃었고, 위성사진은 헤르손과 자포리자 일대 수로가 말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작이 가능하더라도 포격과 중장비 이동,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며 토양 구조가 크게 손상됐다.
농업 전문가들은 피복작물 재배와 윤작 확대, 재생 농법 등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보지만, 본래 생산력을 되찾기까지는 수년이 필요하다. 지뢰 제거에는 막대한 비용이, 관개 복구에는 대규모 자본과 자재가 요구된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의 밀 경작 면적은 전쟁 전보다 약 25% 줄어든 상태에서 회복이 멈춰 있다. 지금 토지는 더 이상 풍부한 자원이 아니라 생산의 병목으로 작용한다.
인력 공백과 기술 단절, 농업의 또 다른 위기
농업은 토지와 자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숙련된 인력이 있어야 생산할 수 있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 농업은 전체 고용의 약 14%를 차지하며 수출의 중요한 축이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수백만 명이 해외로 이주하거나 국내에서 흩어지면서 노동력 기반이 급격히 약화됐다.
이는 단순한 인력 부족이 아니다. 오랜 기간 쌓인 팀워크와 기술 네트워크가 붕괴됐다. 콤바인은 숙련 운전자가 없으면 가동률이 떨어지고, 관개 시설은 기술자가 없으면 방치될 수밖에 없다. 신규 인력 양성에도 계절 단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난민 생활에서 비롯된 심리적 부담, 금융 접근성 저하, 청년층의 도시·해외 이주가 겹치며 농업의 인적 자본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겉으로는 경작 면적이 유지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 생산 효율은 낮아졌다. 평화가 온다고 해서 노동력이 즉각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귀환은 점진적이며, 돌아온 인력이 반드시 농업에 복귀하지 않는다. 이런 요인으로 생산성과 비용의 격차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물류와 보험, 높아진 수출 비용
물류 문제는 우크라이나 곡물 가격의 하한선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2023년 말 흑해 수출 회랑이 재개되면서 물동량은 회복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위협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오데사 항만과 다뉴브 일대 시설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며 화물은 평시 수준 운임으로 거래되기 어렵다.
전쟁 위험 보험료도 크게 올랐다. 선체 가치의 0.6~1.0%까지 상승했고, 대규모 공격 직후에는 1%를 넘어섰다. 정부가 마련한 보험 공동기금이 일부 부담을 줄였지만, 여전히 평시와는 차이가 크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초르노모르스크 항에서 실은 밀은 프랑스 루앙 항에서 선적한 동일 물량보다 보험료와 운임이 더 비싸다.
항만 피해도 누적됐다. 2024년 우크라이나 항만의 화물 처리량은 전년보다 늘었지만, 전쟁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크게 낮다. 철도와 도로가 대체 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톤당 운송비는 해상 수송보다 훨씬 높다. 이는 과거 가격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우회 경로라는 점을 보여준다.
줄어든 생산, 높아진 가격 기준선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밀 수확 면적은 2021~2022년 740만 헥타르에서 최근 500만~550만 헥타르로 줄었다. 생산량도 2,200만~2,300만 톤에 머물러 2021년 기록치보다 약 30% 감소했다. 이는 세계 밀 수출 시장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규모다.
남미 옥수수와 북미 봄밀이 일부 공급을 보완했지만, 세계 시장은 더 높은 비용 구조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 미국산 경질 적색 겨울밀(Hard Red Winter, HRW)와 연질 적색 겨울밀(Soft Red Winter, SRW) 가격은 2025년 들어 2022년 급등기보다는 낮아졌지만, 2019년의 저점과는 여전히 차이가 크다. 국제 곡물 전망도 세계 재고가 여전히 빠듯하다고 평가한다.
세계 다른 지역의 생산이 늘었더라도 전쟁으로 인한 위험 요인이 가격을 떠받치면서 시장은 과거보다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해도 변동성은 완화될 수 있겠지만, 2021년 당시의 토지·노동·물류 조건이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어렵다.

주: 왼쪽-옥수수, 오른쪽-밀/구분-수확 면적, 생산, 수출 (X축), 국가 점유율(Y축)/우크라이나(분홍색)는 전 세계 밀 생산의 3~4%지만 수출은 9~10%, 옥수수도 수출의 약 14에 달하는 주요 공급국이다.
낙관론이 놓친 현실
전쟁 이후 곡물 시장을 두고 두 가지 반론이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첫째, 세계 수확량이 늘어 우크라이나 손실을 상쇄하면 가격이 전쟁 전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전쟁이 끝나면 투자 자본이 몰려 비용 격차가 빠르게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두 주장 모두 현실을 단순화한다.
국제곡물위원회는 2025~2026년 기록적인 생산을 예상하지만, 이는 지역별·품질별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흑해 물류의 위험 프리미엄을 제거하지도 못한다. 날씨가 최적이라 해도 지뢰 제거, 관개 복구, 숙련 인력 재훈련, 선박 보험 부담은 수년간 지속된다.
자본 역시 시간을 단축할 수 없다. 국제지뢰행동검토단은 우크라이나의 오염 심각도를 상향 조정했으며, 충분한 자금이 투입되더라도 정화와 안전한 농업 재개에는 수년이 소요된다. 투자가 미래 생산량의 상한을 높일 수는 있어도, 단기간에 가격의 하한을 낮추기는 어렵다. 따라서 합리적 전망은 ‘2019년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더 높은 비용 구조와 더 큰 불확실성에 기반한 새로운 시장 질서다.
결론과 과제
우크라이나 농업 위기는 이제 가격 하한선을 형성하는 핵심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지뢰로 오염된 농지, 끊긴 관개망, 피해를 본 항만, 이탈한 숙련 노동력은 모두 곡물 생산의 기본 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
따라서 과거로의 복귀를 기대하기보다 현실을 전제로 한 대응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와 정부는 지뢰 제거와 관개 복구를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며, 규제 당국은 흑해 항로의 보험·인프라 위험을 구조적 변수로 인정해야 한다. 과거 상황을 되돌리려 하기보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계획을 세울 때, 우크라이나 농업의 회복과 세계 곡물 공급망 안정이 가능하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New Grain Price Floor: Why Post-War Ukraine Won't Reset the Clock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