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러시아에 “경제 전쟁” 예고, 우크라 안보 보장 불신 속 불완전 타협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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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러시아 강력 경제 제재 예고
우크라이나 ‘30년 희생의 기억’
복잡한 이해관계, 불완전 합의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 합의가 결렬될 경우, 군사 개입 대신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발동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전면전이 아닌 경제 전쟁으로 러시아를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우크라이나 내부적으로 서방의 안보 보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은 가운데, 국제사회에선 지난한 소모전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불완전한 휴전을 ‘최소한의 평화’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군사 비용보다 경제 제재가 더 효율적’ 계산
26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국무회의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질문을 받자, “우리는 (전쟁) 종식을 원한다”며 “경제 제재라는 강력한 조치가 준비돼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세계 대전이 아니라 경제 전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구체적인 제재 방식은 밝히지 않았다.
종전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과 관련해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에 책임을 돌렸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통성을 문제 삼아 회담을 거부하는 점을 언급하며 “그들은 모두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젤렌스키도 꼭 순수하지는 않다”며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해 우크라이나 측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음을 시사했다.
외교계는 이번 발언을 두고 협상 교착 장기화 속에서 미국이 군사적 개입 대신 경제적 압박을 통한 비용 최소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인력 소모와 막대한 재정 부담을 감수하는 전면전보다 제재라는 수단이 더 효과적이라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15일 푸틴 대통령과 알래스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2주 이내 푸틴과 젤렌스키의 양자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으나, 이후 “실제로 만날지는 알 수 없다”고 발언하며 불확실성을 내비친 바 있다.
협상의 핵심은 서방 신뢰 회복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향후 어떤 휴전협정이나 평화조약이 체결되더라도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그 배경에는 지난 30여 년 동안 서방이 약속했던 ‘안보 보장’이 줄줄이 무산된 역사적 경험이 자리한다. 자유유럽방송은 우크라이나가 “지속 가능한 평화는 종이 위의 합의가 아니라, 집행 가능한 안전 보장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우크라이나의 우려는 러시아가 UN 헌장을 비롯해 최소 6건의 국제조약을 위반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다. 알마티 선언(1991)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1994), 우호협력조약(1997), 국경조약(2003), 하르키우 협정(2010), 민스크 협정(2014·2015) 등 주요 합의가 잇따라 파기되면서 서방의 보장도 신뢰를 상실한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매우 핵심적인 사례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후 막대한 핵무기를 승계했으나, 이를 포기하는 대가로 영토 보전과 안전 보장을 약속받았다. 미국과 영국, 러시아가 서명했고, 프랑스와 중국도 별도 문서로 안전을 보증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무력 개입을 감행했고, 양해각서에 서명한 여타 국가들은 이를 사실상 좌시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는 미국 공영 NPR 인터뷰에서 “크림반도 병합은 전쟁의 첫 단계였다”고 짚으며 “러시아는 이후로도 반복적으로 휴전을 위반하고, 군사작전을 감행해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미국의 역할이 약화될 경우 그 공백을 유럽이 아닌 중국이 메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안전 보장’을 넘어 이행력이 담보된 실질적 안전장치인 셈이다.

양측 만족하는 ‘완전 합의’ 사실상 불가능
한편,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향후 종전 협상이 진전을 보더라도 “누구도 매우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가 불만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 정부가 추구하는 것은 어느 한 쪽의 완벽한 승리나 항복이 아니라 ‘상대적 평화 속에서 살인이 멈추는 협상’”이라고 강조했다. 전쟁의 성격상 어느 한쪽도 원하는 조건을 모두 얻어낼 수 없으며, 불완전한 타협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설명이다.
국제사회 역시 이러한 불완전한 타협을 현실적 최선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전면적 승리를 얻기 어려운 데다, 서방 역시 무한정 지원을 지속하기에는 정치·경제적 부담이 큰 탓이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불만을 안고서라도 전투를 멈추고 정치적 공간을 여는 합의가 ‘최소한의 평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밴스 부통령은 종전을 둘러싼 외교적 장애물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진단을 내놨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상황을 바꿔놨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그간 푸틴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양측 지도자 간 대화 가능성을 열어놨다”면서 “현재 세 정상의 회담 일정 조율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