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아파트도 예외 없다" 올림픽파크포레온 비롯 전국 신축 단지, 하자 논란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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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원 내고 들어왔는데"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하자 논란 휩싸여 경기도·지방 등에서도 신축 아파트 하자 관련 갈등 속출 '하자 많은 시공사' 공개 나선 정부, 실효성은 의문

신축 아파트를 둘러싼 '하자 논란'이 속속 누적되고 있다. 서울의 핵심 재건축 단지부터 시작해 전국 각지에서 건설 하자로 인해 생활 불편을 겪는 입주민이 급증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업계에 품질 개선 노력을 촉구하기 위해 하자 판정 건수가 많은 건설사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나섰으나, 시장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급증하는 하자 분쟁 사건
2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축 아파트 곳곳에서 하자가 발생하면서 건설사와 입주민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 분쟁 사건은 2022년 4,370건에서 2023년 4,559건, 2024년 4,663건으로 늘어났다. 하자심사 신청 규모는 최근 5년간 총 1만989건이었으며, 이 중 최종 하자로 판정받은 비율은 67%(7411건)였다. 지난해에는 전체 하자 심사 건수(1,774건) 가운데 1,399건(78.9%)이 하자로 판정됐다. 하자로 인정된 주요 유형은 기능 불량(15.2%), 들뜸 및 탈락(13.8%), 균열(10.3%), 결로(10.1%), 누수(7.1%), 오염 및 변색(6.6%) 등이다.
실제 갈등 사례를 살펴보면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이 명확하게 두드러진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들어선 국내 최대 규모의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포레온’은 국민평형(전용 84㎡) 기준 시세가 30억원에 육박하는 초고가 단지임에도 하자 논란에 휩싸였다. 가장 큰 논란은 3단지 34층 복도에서 발생한 벽면 균열(크랙)이었다. 입주민이 촬영해 공개한 사진에는 벽면을 따라 수평 방향으로 깊고 긴 균열이 유리창 인접부까지 뻗어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에 입주민들은 “크랙이 하루 만에 번지는 등 건물 안전 자체가 걱정된다”며 시공사인 현대건설에 정밀안전진단과 신속한 설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화장실에서 올라오는 악취 역시 문제가 됐다. △비규격 정심 플랜지(고무 연질 패킹) 사용 △배관 연결 부위의 이탈 및 밀착 불량 △제품 손상 및 설계 미흡 등으로 인해 불쾌한 냄새가 유발된 것이다. 실제 공개된 올림픽파크포레온 현장 사진을 살펴보면 플랜지 부위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고, 물이 샌 자리도 다수 확인된다. 이에 더해 엘리베이터 대기 공간에서 발생하는 고주파 소음 문제 등도 입주민들의 생활 불편을 가중했다.

생활 불편에 책임 공방까지
서울 외 지역에서도 신축 아파트 하자로 인한 갈등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 '힐스테이트 더 운정'의 경우, 입주 예정자들이 사전 점검에서 벽지 찢김·들뜸, 타일 균열·파손, 가구 단차·개폐 불량, 창호 결로·밀폐 불량, 전기 분전반·차단기 작동 오류 등 생활 필수 품목 전반에 걸친 하자를 대량으로 접수했다. 분양가가 평당 2,600만원, 전용 84㎡ 기준 8억원대임을 감안하면 하자의 양과 범위가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전 점검에서 집계된 하자 중 일부가 극심한 생활 불편과 위험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창호 밀폐 불량은 결로·난방비 폭증과 직결되고, 전기 분전반·차단기 오류는 화재 위험을 높인다. 타일 들뜸·균열은 파손·낙상 위험을 키우고, 욕실 배수 불량은 곰팡이·악취·누수의 뿌리가 된다. 이에 더해 겉으로 가벼워 보이는 마감 하자들도 누수·결로·전기 등과 맞물리면 구조·안전 이슈로 비화하기 쉽다.
광주 광산구 첨단지구에 위치한 한 프리미엄 주상복합 아파트에서는 시공사가 하자를 인지한 상태로 입주를 강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시공사인 H건설은 공사이행합의서를 통해 '입주 전까지 부적합 사항을 보수한 뒤 시행사의 확인을 거쳐 입주를 개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세대 내 하자 항목으로는 △주방 벽체 돌출 △욕실·가구 색상 불일치 △테라스 난간 석재 미시공 △천장 점검구·환기구 색상 불일치 △슬라이딩도어 불량 △조명 색상·프레임 불량 등 12가지가 적시됐다. 단지 전체 점검 항목에는 △포장 불량 △주차장 배수시설 미비 △커뮤니티·놀이시설 안전 문제 △근린생활시설 파손 등 26가지가 포함됐다. 모든 부적합 사항은 재시공·보수 후 사진 자료와 전수조사를 통해 확인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같은 합의서가 존재함에도 불구, 시공사가 합의 사항을 완료하지 않고 이와 관련해 고지하지도 않은 채 입주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시공사 측은 합의서가 모두 시행사의 요구에 따라 작성된 것이라며 책임을 시행사로 전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입주 전 하자 보수및 준공 절차의 적법성 관련 갈등은 물론, 계약자·시행사·시공사 간 책임 공방까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파트 하자, 결국 입주민만의 문제?
곳곳에서 격화하는 갈등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되자, 정부는 지난 2023년 9월 이후로 총 4차례에 걸쳐 '하자 판정 건수 상위 20개 건설사 명단'을 발표하고 나섰다. 가장 최근 통계치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6개월간 집계됐다. 해당 기간 하자 건수가 가장 많았던 건설사는 한화 건설 부문(하자 심사 접수 195건, 하자 판정 건수 97건)이었으며, 이어 현대건설(81건)과 대우조선해양건설(80건), 한경기건(79건), 삼부토건(71건) 순으로 뒤를 이었다.
정부는 이 같은 조치가 하자 관련 분쟁을 해결할 '열쇠'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상기 통계치 발표 당시 국토부 김영아 주택건설공급과 과장은 "명단 공개 이후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하자 보수에 적극 대응함에 따라 하자 분쟁 사건이 상당히 줄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명단 공개는 실효적 조치"라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 건설사가 품질 개선을 도모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하자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단순한 명단 공개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아파트 하자 관련 분쟁이 갖는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통상 자동차나 전자 제품에서 설계·제작 결함, 부품 불량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이는 ‘사회 이슈’로 발전된다. 소비자가 대규모 소송을 제기하거나, 정부의 리콜 명령으로 상품의 대대적인 수리나 교환이 이뤄지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평판 하락에 대비해 결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아파트의 하자는 해당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문제로 한정되며, 동일한 건설사가 시공했다고 해도 아파트마다 상태가 달라 집단 대응이 어렵다. 특히 공개적으로 하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시 주택 가격이 하락할 수 있는 만큼, 자산 가치 유지를 원하는 입주민들은 적극적으로 하자 대응에 나서지 않기도 한다. 정부 역시 입주자의 청구가 없으면 특별점검 등을 제외하고는 강제력 있게 하자 문제에 개입하기도 어렵다. 이렇다 보니 건설사는 결함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추후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이나 소송 판결 이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결국 공동주택의 결함이 ‘입주민만의 문제’로 치부되는 이상, 물밑 분쟁은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