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유럽 경제” 프랑스·영국·독일, 서유럽 3대 강국 동반 재정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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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영국·독일, 재정 압박 심화 프랑스 부채 급증에 IMF 개입 가능성 제기 유럽 경제 위상 붕괴 속 구조적 쇠락 징후

서유럽을 대표하는 세 강대국이 일제히 재정적 압박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프랑스는 천문학적 재정적자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우려까지 제기될 만큼 부채 부담이 심화됐고, 영국도 1970년대 IMF 차입 사태를 연상시키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나마 가장 재정 건전성이 높다고 평가받던 독일마저 국방비 압박에 재정준칙까지 수정하는 등 유럽의 경제적 위상 자체가 근본적 시험대에 오른 양상이다. 이는 단순한 경기 순환적 위기가 아닌, 유럽 내 구조적 쇠락의 징후로 평가된다.
프랑스, 1분기 국가부채 5,000조원 돌파
27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유력 매체 르몽드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날 에리크 롬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프랑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IMF 개입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프랑스 재정 상황은 각종 지표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 부은 데다, 수십년간 추진해 온 탈산업화로 인해 국가 기간산업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어서다.
유럽연합 통계청(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프랑스 국가 부채는 3조3,000억유로(약 5,000조원)를 넘어섰다. 국가부채는 정부가 갚아야 할 빚으로,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율은 114.1%에 달한다. 1년 내내 온 국민이 번 돈을 모두 쏟아부어도 빚 14%가 남는다는 의미다. 이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에서 그리스(152.5%), 이탈리아(137.9%)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로, 독일(62.3%)보다 2배 가까이 많고, 네덜란드(43.2%)와 비교하면 3배에 육박한다.
또한 프랑스는 현재 재정 건전성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재정 부실로 ‘돼지들(PIIGS)’이라 불렸던 스페인(103.5%), 포르투갈(96.4%)보다 나쁘다. 한때 IMF 구제금융 신세를 진 아일랜드(34.9%)와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다.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지난해 프랑스 재정적자 비율은 GDP 대비 -5.8%를 기록했다. 1년 동안 나라 살림에 들어온 돈보다 나간 돈이 5.8% 많았다는 뜻이다. 이는 그리스(1.3% 재정흑자), 이탈리아(-4.3%), 스페인(-2.5%)보다 높은 수치다. 유럽연합(EU)은 안정성을 이유로 –3% 이내를 권장한다.
재정 악화에도 ‘일할 의지 없는’ 佛 국민들
더 심각한 문제는 프랑스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사회 내부의 저항 구조다. 현재 프랑스 정부는 내년까지 적자를 4.6% 수준으로 낮추고 오는 2029년까지 3% 이하로 줄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세수 확보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공휴일을 이틀 폐지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공휴일이 사라질 경우 노동자들은 무급으로 이틀을 더 일하게 되는 셈으로, 그 대가로 기업은 추가 생산 활동에 대해 정부에 일정 세금을 내야 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재정을 확충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오독사(Odoxa)가 지난 20~21일 프랑스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4%는 공휴일 폐지에 반대했으며, 이틀 중 하루만 없애는 방안에도 80%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80%는 이번 조치를 사실상 '위장된 새로운 세금'이라고 인식했고, 66%는 '더 많이 일하는 것과 국가 재정 개선 사이의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야권도 강하게 반발했다. 극우 국민연합(RN)의 장 필리프 탕기 의원은 최근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에 출연해 “마크롱 정권이 7년의 집권 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일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공휴일은 선물이나 공공 지출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조직 체계로, 국가의 예산 절감과는 상관이 없다”고 전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공휴일 폐지 제안을 비롯해 내년도 예산안 기조와 관련해 모든 정당과 논의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영국·독일도 재정 경고등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건 영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영국이 과도한 정부부채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70년대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이 팽배하다. 영국은 현재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96.3%로, 선진국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 영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정부부채가 늘면서 현재 30년 만기 국채 가격은 6%에 달했다. 영국 예산국(OBR)에 따르면 올해 부채 이자 상환액은 1,112억 파운드(약 209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지난 6월에만 영국 정부는 210억 파운드(39조4,000억원)를 새롭게 차입해야 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66억 파운드(약 12조4,000억원)나 많은 액수이자, 최근 32년 사상 두 번째로 높은 차입액으로, 영국 경제의 심각한 경제 위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오랫동안 긴축 재정을 고수한 독일도 수년간 지속되는 역상장에 올해 3월 재정준칙까지 완화했다. 부채 브레이크(debt brake·독일어로는 Schuldenbremse)라고 불리는 이 준칙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GDP의 0.35% 이내로 제한하고 있지만, 최근 경기 둔화와 지정학적 부담으로 인해 이를 수정한 것이다.
또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압박하는 국방비 증액 등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FT는 "독일의 경제학자들은 부채 브레이크를 '구시대적 재정 억제 장치'라고 부른다"면서 "(엄격한 재정 준칙을 고집하는 한) 인프라에 절실히 필요한 투자를 하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 요구하는 방위비 증액에 대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다만 부채·재정적자 확대, 사회복지·성장과의 균형 등 재정운용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국방비 증액으로 독일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333억 유로(약 54조원)에서 2029년 1,261억 유로(약 204조6,000억원)로 4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