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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아세안, 미국 관세 충격에 공동 대응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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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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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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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미국의 새 관세 조치로 통상 압박에 직면
개별 대응, 협상력 약화 및 강대국 입지 강화  
공동 협상·보상 기금 등 집단 대응 체계 시급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새 관세 제도를 시행하면서 아세안(ASEAN) 국가들이 수십조원대의 추가 비용 압박을 받게 됐다. 2025년 8월 7일부터 미국은 ‘상호주의’라는 이름으로 무역적자가 있는 대부분의 교역 상대국에 최소 15%의 관세를 부과하고, 소액 수입품에 적용되던 면세 규정(de minimis)도 폐지했다. 지난해 미국과 아세안의 교역 규모는 약 4,760억 달러(약 652조원)였으며, 이 조치가 그대로 적용될 경우 최대 528억 달러(약 72조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세안의 구조적 취약성은 역내 교역 비중이 전체 수출의 22%에 불과하다는 데서 드러난다. 대부분의 수출이 미국·중국·유럽 등 역외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관세 충격은 곧바로 실물경제에 타격을 준다. 여기에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활용률도 낮아 완충 효과는 사실상 미미하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에서 RCEP 특혜 활용 비중은 4%, 베트남은 1%에 그쳤다. 결국 아세안이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각국이 개별 협상에 매달리면서 협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사진=ChatGPT

무역 개방만으로는 한계

아세안에 대한 전통적인 해법은 역내 무역 개방 확대다. 그러나 이 조치만으로는 외부 충격을 방어하기 어렵다. 미국의 새로운 관세 정책은 관세율 상향, 국가별 추가 할증, 소액 면세 폐지 등으로 시장 접근의 기본 전제를 흔들었다.

여기에 중국의 압박과 유인책, 더디게 진행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규범까지 겹치면서 아세안은 강대국의 통상 압박에 노출돼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역내 교역 확대가 아니라, 대외적으로 공동 협상력을 갖추고 보복 조치를 관리하며 단일 창구로 대응할 수 있는 집단적 역량이다. 선택지는 명확하다. 무역 개방을 공동으로 지켜내느냐, 아니면 분열 속에서 취약성을 드러내느냐다.

분열이 초래하는 비용

2024년 미국의 아세안 상품 수입액은 약 3,520억 달러(약 482조원)였다. 여기에 15%의 관세가 일괄 적용될 경우 총 부담액은 528억 달러(약 72조원)에 이른다. 설령 관세 적용 범위를 줄이고 기업이 일부 비용을 흡수하더라도, 충격 규모는 수십조원에 달해 아세안 소규모 회원국의 연간 수출액을 뛰어넘는다. 소액 면세 폐지로 인한 물류비용과 기업의 준수 부담까지 더하면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024년 미국-ASEAN 상품 교역과 15% 관세 하한 적용 시 노출 규모(단위: 십억 달러, %)
주: 항목-미국의 ASEAN 수입, 관세 적용 비중, 관세율, 총 관세 노출액, 수출업자 부담률, 순 수출업자 부담액(X축), 금액 및 비율(Y축)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으로, 관세 인하와 원산지 규정 완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그러나 실제 활용률은 극히 낮다. 기업들이 복잡한 원산지 인증 절차를 피하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최혜국대우(MFN) 세율을 그대로 적용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도적 기회가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국이 개별 협상을 진행하면, 한 국가가 내놓은 양보가 다른 국가의 기준점으로 굳어져 협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국가별 RCEP 원산지규정 활용률(단위: %)
주: 국가-베트남, 태국, 중국(X축), 활용률(Y축)/2022년(갈색), 2023년(회색)

대응 수단의 공백과 EU의 사례

아세안은 제도적 유연성을 일부 갖추고 있다. 아세안 헌장 제21조 2항은 일부 회원국이 먼저 합의된 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아세안 마이너스-X’ 방식을 허용한다. 모든 회원국이 동시에 참여하지 않아도, 의지가 있는 국가가 먼저 행동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그러나 구체적인 통상 방어 수단은 아직 부재하다. 유럽연합(EU)은 ‘통상위협대응조치(Anti-Coercion Regulation)’를 마련해 두고 있으며, 실제 발동 사례는 없지만 그 자체로 협상력을 높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아세안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산지 규정 활용률을 높이는 장치, ▲피해 산업을 지원하는 공동 기금, ▲관세나 쿼터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자동으로 공동 협상을 개시하는 장치 등이 그것이다. 이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공급망 협정 아래 데이터 공유, 위기 대응, 스트레스 테스트 같은 기구가 가동되고 있는 만큼, 이를 연계하면 실질적 억지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공동 대응을 위한 제도 설계

아세안이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 장치는 여러 가지다. 우선 아세안 공동 협상팀(ASEAN Joint Negotiating Team, AJNT)을 설치해 일정 수준 이상의 관세 조치가 가해질 경우 자동으로 가동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아세안은 단일 협상 창구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대외 대응 의정서를 제정해 회원국들이 공동 대응안을 미리 합의하고, 개별 국가가 단독으로 양보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관세 보상 기금(ASEAN Tariff Compensation Facility, ATCF)을 마련해 피해 산업을 단기 지원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 등과 공동 재원을 조성하면 재정적 뒷받침을 강화할 수 있다.

여기에 원산지 규정(Rules of Origin, ROO) 활용 확대 프로그램을 운영해 공동 인증, 디지털 데이터베이스, 공동 감사 체계를 도입하면 RCEP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활용률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이 모든 장치는 아세안 헌장이 허용하는 ‘마이너스-X’ 조항을 근거로 추진할 수 있다. 결국 개별 국가가 미국이나 중국과 별도 협상을 추진하더라도, 반드시 AJNT라는 단일 창구를 거치도록 만드는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아세안 방식의 선택

일부에서는 아세안이 유럽연합(EU)과 다르다는 점을 들어 연합형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비켜간 지적이다. 공동 대응 체계는 초국가주의가 아니라, 아세안 특유의 정부 간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미리 위임된 권한을 통해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역내 GDP나 교역 비중의 70% 이상을 대표하는 회원국이 발동을 승인하면 자동으로 공동 대응이 개시되고, 나머지 국가는 같은 조건으로 뒤늦게 참여할 수 있다. 아세안 경제공동체의 분쟁 해결 장치와 헌장의 규범적 근거는 이를 뒷받침한다. 재무 당국은 국가 예산 과정에 노출 지수를 반영해 ATCF에 자동 출연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회의론과 위험 관리

아세안의 집단 대응은 보복을 유발할 수 있다는 회의론이 존재한다. 그러나 개별 양보는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초래한다. 반대로 공동 대응은 협상 조건을 분명히 하여 분쟁을 조기에 종결시킬 수 있다. 2025년 8월의 관세 파동에서도 일본과 한국은 조건을 조정했지만, 인도는 큰 폭의 관세 인상을 감수해야 했다. 아세안이 분산된 형태로 협상한다면 불리한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가능성 역시 과장된 우려다. 공동 협상, 상쇄 조치, 한시적 지원, 원산지 규정 활용 확대 모두 WTO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 있다. 또한 소규모 회원국이 대형 회원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지적도 ATCF의 분담 공식과 AJNT의 초다수 발동 규칙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실제 위험은 개별 대응이 지속될 때 발생한다. 이 경우 공급망이 왜곡되고 역내 특혜가 무너져, 협상력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세안의 과제

아세안이 직면한 현실은 분명하다. 역내 교역 의존도가 낮고 제도적 완충 장치가 미흡한 상태에서 개별 대응은 협상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공동 대응을 제도화하지 않는다면 향후 협상에서 더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연합과 같은 초국가적 체제를 그대로 모방할 필요는 없다. 아세안은 자체적으로 공동 협상팀, 대외 대응 의정서, 관세 보상 기금, 원산지 규정 활용 확대 프로그램 등 현실적 수단을 마련할 수 있다. 핵심은 결단이다. 역내 무역 개방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외부 충격을 방어할 제도적 장치를 갖출 때, 아세안은 비로소 협상력을 확보하고 경제적 자율성을 지킬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Forge the Shield: Why ASEAN Needs a Union-Style Economic Defense Now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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