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선 뒷전이었는데” 사모펀드 품에 안긴 솔믹스·피유코어·PI첨단소재, SK 떠난 뒤 ‘잭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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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믹스·PI첨단소재 등 PEF 품에 안겨 단기간 고수익 회수 ESG·재무 전략 따라 정리한 자산들, 유동성 확보로 '윈윈' PEF 투자·자금 투입 통해 가치 재평가

SK그룹이 비핵심으로 정리한 사업부들이 사모펀드(PEF) 손에서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최근 솔믹스가 인수 2년도 채 안 돼 재매각되며 높은 수익률을 안긴 데 이어 PI첨단소재, 피유코어 등도 실적 개선과 회수 성과를 내는 모습이다. 그룹 차원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기조와 재무·사업 재편 전략에 따라 정리된 사업들이 투자자들에게는 높은 성과를 안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앤코, 솔믹스 매각으로 2,000억대 차익실현
1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그룹 중간지주사인 SKC에서 매각된 세라믹 부품사 솔믹스(구 SK엔펄스 파인세라믹스)는 최근 새주인을 찾았다. 국내 PEF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는 2023년 말 SKC로부터 약 3,300억원에 솔믹스를 인수한 뒤, 이달 TKG태광에 5,400억원에 되팔았다. 이번 매각으로 한앤코는 불과 1년 반 만에 2,000억원 이상 차익을 실현하게 됐다. 단기간에 잭팟을 터뜨린 셈이다.
이번 거래 성사의 배경으로는 솔믹스의 빠른 실적 개선이 꼽힌다. 한앤코는 솔믹스 인수 직후부터 경영 효율화와 외부 고객사 확보에 주력하며 사업 체질 개선에 속도를 냈다. 당시 고객사 대부분이 SK그룹 계열사였으나, 인수 이후 삼성전자와 해외 반도체 기업으로 공급망을 빠르게 넓혔다. 그 결과 지난해 솔믹스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약 400억원으로, 2023년 200억원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매출도 1,670억원에서 1,880억원으로 12%가량 상승했다.
이 같은 실적 개선은 한앤코 내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당초 한앤코는 인수 시점에 마련한 개선 계획을 단계적으로 실행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핵심 투자 포인트가 예상보다 짧은 기간 안에 달성되면서 보유 기간이 짧더라도 매각을 검토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부가적인 이유로는 반도체 섹터 익스포저(노출 비중) 조정이 거론된다. 솔믹스는 지난해 7월 4조7,000억원 규모로 조성된 4호 블라인드펀드에 편입돼 있다. 4호 펀드에는 솔믹스를 비롯해 SK스페셜티(2조6,308억원), 엔펄스(약 3,346억원) 등 반도체 소재·부품 자산이 대다수 편입된 상태다. 업황 변동성에 따라 특정 산업 비중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것은 자칫 출자자(LP) 입장에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어 재조정이 필요했던 셈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이번 솔믹스 매각 추진은 섹터 비중 조절과 조기 성과 실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사례로, 한앤코의 운용 전략 유연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PI첨단소재, 프랑스 기업에 재매각되며 연 20% IRR 성과
폴리이미드(PI)필름 생산 기업 PI첨단소재 역시 SK가 지분을 정리한 이후 새 주인 손에서 잭팟이 터졌다. 2020년 SKC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국내 PEF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글랜우드PE)에 매각한 뒤, 3년 만인 지난해 프랑스 화학기업 아케마(Arkema)에 약 1조원에 재매각됐다. PI첨단소재는 SKC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2008년 50대 50으로 합작 설립한 SKC코오롱PI가 전신이다.
앞서 글랜우드PE는 지난 2020년 PI첨단소재의 경영권 지분을 SKC와 코오롱으로부터 6,080억원에 사들였다. 2022년 2월 PI첨단소재 매각을 공표한 이후 홍콩계 PEF 운용사 베어링PEA와 1조2,750억원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기도 했다. 다만 2022년 말 베어링PEA가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거래는 무산됐다. 글랜우드PE는 위약벌 청구를 위해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선임해 2023년 4월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에 국제중재를 신청한 바 있다. 이후 글랜우드PE는 새로운 인수자를 구했고 아케마가 낙점됐다. IB업계에 따르면 해당 거래로 투자자들은 연 20% 안팎의 내부수익률(IRR)을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서 출발한 고부가가치 PI 필름 사업이 글로벌 전략적 투자자(SI) 품으로 넘어가면서 밸류에이션이 크게 뛰었다는 평가다.

피유코어, 우크라이나 재건 시 매출 2,000억 달성 기대
SKC에서 2021년 글랜우드PE로 매각된 피유코어(폴리우레탄 사업부)도 높은 잠재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랜우드PE는 인수 당시 글로벌 컨설팅 펌인 BCG, 룩센트 등과 함께 피유코어를 정밀 진단했다. 그 결과 피유코어의 핵심 제품인 폴리우레탄(PU)이 전 세계 시장에서 수요가 점진적으로 늘 수 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실제 최근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될 기미가 보이면서 유럽에서 전후 재건 사업에 대한 기대가 꿈틀대고 있다. PU는 건축용 단열재와 각종 공업용 소재에 폭넓게 쓰이는 화학제품으로, 전쟁 과정에서 폭파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PU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피유코어는 전후 재건 수요 확대를 겨냥해 올해 실적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피유코어의 목표가 현실화되면 5년 뒤 폴란드 법인의 실적은 가파르게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폴란드 법인의 매출액 예상치는 약 903억원, 영업이익은 약 55억원이지만 2030년에는 매출은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높인 2,000억원, 영업이익은 4배 가까이 증가한 2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목표치 상향 배경에는 글랜우드PE의 적극적인 자금 투입이 밑바탕이 됐다. 피유코어를 4,024억원에 인수한 글랜우드PE는 이 회사에 추가로 58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해 신규 자금을 투입해 줬다. 글랜우드PE에 인수되기 전까지 매년 수십억원씩 모회사에 배당을 하던 피유코어는 자체 여력이 생기면서 한국의 울산 공장에 총 1,000억원의 신규 투자도 결정했다. 이에 폴란드 현지 법인에서도 생산 시설 확충을 쉽게 결정하며 매출 확대에 발판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대기업 아래 비핵심 사업으로 분류됐던 회사를 PE가 인수한 뒤 사업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올바른 사례”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