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주도 ‘노조’처럼 단체협상 추진, 프랜차이즈업계 “누가 사업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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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가맹 분야 단체 협의 허위 정보 공개서 제재도 강화 프랜차이즈업계 “경영 위축”우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점주 권익을 강화하기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창업·운영·폐업 등 전체 과정에서 프랜차이즈 점주의 권익을 대폭 향상시키겠다는 취지지만, 프랜차이즈업계에서는 상생보다는 가맹 본사를 옥죄는 방편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본사와 점주 간 상생은커녕 업계를 공멸의 위험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점주단체 등록제·협의 의무화 추진
23일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서울 마포구 한 패스트푸드 가맹점에서 현장 간담회를 열고 가맹점 창업부터 운영·폐업까지 전 과정에 걸친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가맹점주 권익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맘스터치, 던킨도너츠, 굽네치킨 등 점주 5명과 전국가맹점주협의회,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대한가맹거래사협회 등이 참석했다. 주 위원장은 “가맹점주는 가맹본부에 비해 협상력이 약하고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알기 어려운 구조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구조적 문제를 시정하는 것이 가맹점주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첫 단추다”며 점주단체의 실질적 단체협의권 보장을 강조했다.
가맹점주 권익강화 종합대책의 핵심은 점주단체에 법적 지위를 강화해 실질적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점주단체가 협의를 요청해도 본부가 대표성 부족 등을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공정위는 점주단체 등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일정 비율 이상이 참여하는 단체를 공정위에 등록하도록 해 대표성을 공적으로 인정한다. 또한 점주단체의 협의 요청을 본부가 거부할 경우 시정명령과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제재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협의 남용을 막기 위해 분기별 요청 횟수를 제한하고, 동일 사안을 여러 단체가 중복 요구할 경우 일괄 협의 절차를 두는 등 부작용 방지 장치도 포함됐다.
불공정 행위 근절도 강화된다. 가맹본부가 점주에게 불필요한 품목을 강제로 구매하게 하거나 광고비를 떠넘기는 행위가 대표적 불공정 행위로 지적 왔다. 지난해 기준 가맹점주의 54.9%가 불공정 거래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공정위는 불공정 거래행위를 상시 점검하고, 위반이 확인되면 즉시 제재에 나서기로 했다.
가맹 희망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정보 불균형 문제도 해소하기로 했다. 현행 정보공개서 제도는 등록기관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 사전심사 방식으로, 심사 지연으로 최신 정보 제공이 늦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실제 지난해 정보공개서 심사 기간은 평균 86.8일에 달했다. 공정위는 이를 정보공개서 공시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가맹본부가 책임지고 신속히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고, 허위 공시가 적발될 경우 과태료 상향 등 강력 제재를 부과한다. 또 가맹거래사의 전문성을 활용해 공시 확인제를 도입, 고의·과실로 잘못 확인한 경우 자격 정지 등의 제재를 받도록 했다.
정보공개서 내용도 대폭 손질된다. 그동안 실효성이 낮은 항목 대신 가맹점 생존율, 배달앱 제휴 조건, 사모펀드 보유 지분율 등 창업자의 의사결정에 직접 필요한 정보를 포함한다. 또 직영점 운영 의무를 업종 변경 시까지 확대해, 본부가 사업 경험 없이 편법적으로 신규 가맹사업을 개시하는 길을 원천 차단한다. 이와 함께 폐업이나 계약 갱신 과정에서도 점주 권리가 대폭 확대된다. 그동안 점주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면 해지할 수 있다’는 상법 규정에 기대야 했지만, 추상적 문구 탓에 실효성이 낮았다. 공정위는 이번에 가맹사업법에 계약해지권을 명문화해 점주가 과도한 위약금 부담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단체 난립 땐 프랜차이즈 사업 존속 위협
프랜차이즈업계는 가맹점주 보호라는 정부의 취지에는 큰 틀에서 공감한다는 반응이지만 가맹점주 단체 등록제 도입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이에 대해 ‘노사 분규처럼 가맹본부와 가맹점주들의 갈등이 폭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수십 년째 점주 단체 한 곳과 협의를 하고 있는 한 편의점 업체 관계자는 “목소리를 높이는 단체 간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며 “프랜차이즈 산업은 통일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여러 단체가 상충된 요구를 할 경우 회사 입장에서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도 “본사와 가맹점은 계약으로 맺어진 사업 파트너 관계인데, 가맹점주들이 모여서 강성 노조처럼 변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라며 “계약에 없는 일을 요청하고 본사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사례가 많아질 경우 결국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정책이 본사와 점주 간 상생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대형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계약해지권과 단체협상권 등 가맹점주 친화 정책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기업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일 수 있지만, 중소형 프랜차이즈 기업은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양하고 트렌디한 음식을 찾는 고객들 특성에 맞춰 발전해 온 국내 외식 시장이 어느 한쪽에 편중된 정책으로 위축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도 “프랜차이즈업의 기본은 가맹점주의 매출 등 성과가 좋아야 가맹본사도 잘되는 구조”라며 “본사와 점주들 간 상생을 위한 방법을 찾기보다 가맹본사에 대한 정책 조항을 만들어 옥죄고, 점주들 이야기만 듣는 것은 본사와 점주가 서로 윈윈하는 방향이 아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프랜차이즈업계는 공정위가 내놓은 ‘위약금 부담 없는 계약 해지 보장’도 악용의 소지가 크다는 입장이다. 한 외식업 프랜차이즈 기업 관계자는 “가맹본부와 가맹점주는 사적인 계약 관계”라며 “정당한 계약 해지라고 인정되는 사례가 하나둘 늘다 보면 기업의 투자금 회수 등 사업상 안전장치가 사라지는 위험이 초래된다”고 말했다.
'재료 공급 마진' 놓고 공방, 대법 확정 시 줄도산 우려
더욱이 현재 프랜차이즈 본부와 가맹점주 사이에서 '차액가맹금'(원·부자재 공급을 통한 마진)' 소송을 둘러싼 공방전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차액가맹금을 부당 이득으로 최종 판단하면 본사의 핵심 수익 구조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조정 문제가아닌, 업계 전반의 사업 모델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대부분 가맹본부가 관련 소송·분쟁을 겪으며 결국 줄도산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에 따르면 2020년 피자헛 가맹점주 94명을 시작으로 롯데슈퍼·롯데프레시(110명), BHC(327명), 배스킨라빈스(417명), 투썸플레이스(273명), 맘스터치(221명), 버거킹(60명), 명륜진사갈비(17명) 등 현재까지 총 17개 브랜드에서 총 2,491명의 가맹점주들이 차액가맹금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피자헛은 차액가맹금 소송 2심에서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차액가맹금 210억원은 부당이득이므로 전액 반환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상고한 상황으로, 올해 또는 늦어도 내년에는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브랜드 사용료(로열티) 중심의 수익 구조를 지닌 미국 프랜차이즈 본사와 달리, 국내 가맹 본부의 약 90%가 원·부자재를 공급하면서 남기는 유통마진인 차액가맹금을 핵심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보통 계약서상 본사의 구체적인 마진율 등에 대한 명시 없이 ‘암묵적 합의’를 관행처럼 여겨왔다.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국내는 국토가 넓지 않아 물류 공급이 용이한 데다, 영세 가맹본부가 많은 탓에 상표권 사용 대가인 로열티 계약이 어려워 차액가맹금 방식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며 “피자헛마저 원심판결로 회생 절차에 들어간 마당에, 대법원 판결이 부당이득으로 결론 나면 영세 가맹본부가 74.5%(7360개)에 달하는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