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영토 수복 가능해" 입장 뒤집은 트럼프, 에너지 앞세워 러시아 압박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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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우크라이나, 국가 원래 형태 되찾을 수 있어" EU에 자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요구한 美, 러시아 '돈줄' 끊긴다 EU LNG 무역 구도,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이 변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러시아 대응 전략을 전격 선회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 수복 가능성을 인정하고, 러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소속국 영공 침범을 비판하는 등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이 러시아산 에너지의 수출 통로를 가로막은 채 앞으로도 러시아를 옥죌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러시아에 압박 가하는 트럼프
23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위대한 정신을 가진 우크라이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며 “그들은 국가를 원래 형태 그대로 되찾을 수 있으며, 어쩌면 그 이상을 이룰 수도 있다”고 적었다. 취임 직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終戰) 외교에 드라이브를 걸며 우크라이나 영토 수복에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이는 미국의 종전 구상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응하지 않은 결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국제연합(UN) 총회를 계기로 진행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그는 "러시아 전투기가 나토 회원국 영공을 침범하면 격추해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최근 러시아군의 전투기 및 드론이 폴란드, 에스토니아, 덴마크 등 나토 회원국들의 영공을 침범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동참 여부에 대한 질문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도 호의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용감한 남자”라 표현하며 “우크라이나가 벌이고 있는 싸움에 대해 큰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또 “가장 큰 진전은 현재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솔직히 우크라이나는 이 큰 군대를 막는 일을 매우 잘하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올해 초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쟁의 원인을 일부 돌리며 휴전을 요구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태도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총회 연설에서도 “만약 러시아가 전쟁 종식을 위해 합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미국은 매우 강력한 관세 조치를 단행할 준비가 돼 있다”며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어 인도와 중국, 일부 나토 회원국을 호명하며 이들이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해 사실상의 전쟁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U의 에너지 수입처 전환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에너지'를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부터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로를 틀어막는 데 힘을 쏟아 왔기 때문이다. 최근 관세 협상 과정에서 유럽연합(EU)에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도록 유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달 21일 미국과 EU가 발표한 무역 합의 후속 조치 공동성명에는 “EU는 2028년까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석유, 원자력 에너지 제품을 총 7,500억 달러(약 1,040조원) 규모로 구매할 의도(intend to procure)가 있으며, 미국산 인공지능(AI) 반도체도 최소 400억 달러(약 55조7,000억원) 규모로 구매할 계획(intend to purchase)”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관세 협상을 계기로 EU의 미국산 에너지 의존도가 대폭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러시아산 에너지는 사실상 설 자리를 잃게 됐다. EU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꾸준히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축소해 왔다. 전쟁이 발발한 이후 지난달까지 18차례에 걸쳐 러시아에 수출입 제한 등 각종 무역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최근 양국 간 무역 수지를 살펴보면 이 같은 EU의 조치가 낳은 결과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EU 통계국(유로스탯) 자료에 따르면, EU의 대러 에너지 무역 적자는 2022년 2분기 428억 유로(약 69조8,800억원)에서 올해 2분기 42억 유로(약 6조8,580억원)로 9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원유 수입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9%에서 2%로 미끄러졌고,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 역시 39%에서 13%로 떨어졌다.
EU는 지난 5월 발표한 ‘REPowerEU 로드맵’에 따라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완전히 중단할 방침이다. 해당 로드맵에는 러시아산 가스의 신규 계약을 금지하고, 기존 단기 계약을 2025년 말까지 종료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이를 통해 2025년 말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추가로 1/3 감축하며, 2027년까지 모든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구상이다.

비싼 美 에너지, AKLNG가 열쇠일까
향후 EU 에너지 수입처 전환 전략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는 미국산 LNG의 '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낸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16일 EU 경쟁력에 대한 EU집행위원회 보고서 발표 1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대미 관세 협정 조건이 어떻든, 이는 가스 구매 방식을 바꿀 기회로 여겨져야 한다”며 “3월 이후 유럽으로 운송되는 LNG는 물류 및 재기화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미국보다 60~90% 더 비쌌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미국이 추진 중인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AKLNG)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KLNG는 알래스카 북부 유전 지대에서 남부 니키스키까지 800마일(약 1,287km)에 이르는 천연가스 수송관을 설치하고, 알래스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프로젝트다. AKLNG를 주도하는 미국의 에너지 개발 업체 글렌판은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에 대한 최종투자결정(FID) 시기를 2025년 말, LNG 수출인프라 구축에 대한 FID 시기를 2026년으로 각각 계획 중이다.
다만 최근 러시아 측이 AKLNG 사업 협력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일 극동 연해주 주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10차 동방경제포럼(EEF)에서 “알래스카에 자원이 있고, 가스 채굴 및 액화에 효과적인 기술을 보유한 러시아는 알래스카에서 미국 기업과 협력할 좋은 제안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지난 8일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와 미국이 ‘여기(러시아)’와 ‘알래스카’ 모두에서 공동으로 LNG 생산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