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초고층 빌딩 절반 가진 中, 부동산 침체 지속에 ‘마천루 규제’ 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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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건설 규제 강화, 성장 모델 전환 신호 상업용 부동산 침체 심각, 공실 확대 및 금융 불안 점화 해외 자본 이탈 가속, 투자 매력도 급격히 하락

20여 년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던 중국 마천루들의 초고층 행진이 멈춰설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무분별한 고층 빌딩 건설 경쟁을 억제하고 도시 개발의 질적 전환을 추진하기 위한 조처라고 밝혔지만, 경제적 이유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속되는 상업용 부동산 침체로 인해 공실률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고 대형 개발 업체들은 연쇄적인 자금난에 직면해 시장 전반의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활발했던 상업용 부동산 거래와 투자 열기가 중국 경제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력 속에 급격히 식어가는 모습이다.
中 최고 지도부 직접 개입 결정
24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최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중앙도시업무회의'를 열고 초고층 빌딩 건설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의에는 시진핑 국가 주석과 리창 총리를 포함한 최고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자들은 도시 성장이 대규모 점진적 확장에서 기존 용량의 품질과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둔 단계로 전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그간 새로운 초고층 건물 건설을 점진적으로 제한해 왔다. 2020년 4월에는 높이가 500m 이상인 신축 건물에 대한 금지가 발표됐고, 2021년에는 인구 300만 명 이상의 도시에서 높이가 250m를 넘는 건물을 금지하는 새로운 규정이 적용됐다. 인구 300만 명 미만의 도시에서는 높이 제한이 150m로 설정됐다. 150m 이상 건물을 지으려면 정부로부터 특별 면제를 받아야 하고, 250m 이상 건물 건축은 허가를 받을 수 없다. 인구 300만 이상 도시에서도 정부 승인이 있으면 250m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있지만, 500m 이상 건물 건축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번 회의에서 제한 대상이 될 구체적인 높이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중국은 초고층 건물을 높이가 100m가 넘는 모든 건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100m 이상 건물 건축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지방 정부는 해당 임계값을 초과하는 신규 건설을 승인하는 데 신중해 질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 고층 건물 절반 보유
중국은 2010년대 세계 최대 건설시장으로 부상한 이후부터 초고층 빌딩을 잇달아 건축했다. 중국 내 초고층 빌딩의 약 60%가 이 시기에 지어졌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한 상하이타워(632m)는 2015년 완공됐고, 이듬해 광저우 CTF 파이낸스 센터(530m)가 준공됐다. 이어 핑안국제금융중심(599m)이 2017년에 완공됐고, 2019년에는 톈진CTF파이낸스센터(530m)가 준공됐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ouncil on Tall Buildings and Urban Habitat, CTBUH)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150m가 넘는 고층 빌딩이 7,591개 있는데, 이 중 중국은 3,562개로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 고층 빌딩 국가인 미국의 807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2020년대 들어서도 톈진CTF파이낸스센터를 비롯해 200m가 넘는 빌딩이 57개나 중국 도시에 새로 들어섰다. 높이 200m 이상 전 세계 초고층 빌딩 1,478개의 절반에 가까운 678개도 중국에 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건설이 가속화된 결과다.
초고층 빌딩은 제한된 토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만 지진과 강풍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건물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특별한 소방 메커니즘도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은 외관과 명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지방자치단체와 부동산 개발업자가 실제 수요와 관계없이 높이와 독특한 디자인으로 서로 경쟁해 왔다.
이에 중국 당국은 2020년부터 이를 '허영 사업'으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 중국의 대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에는 땅이 부족하지 않은 만큼 허영심 때문에 지은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 공산당 관계자는 "마천루를 건설하는 것이 도시의 경제 수준을 과시할 수는 있지만,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그저 맹목적으로 세계에서 몇 번째로 높다거나 중국에서 가장 높다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초고층 빌딩의 경제적 리스크가 커진 것도 건설 규제 요인으로 꼽힌다. 많은 초고층 빌딩들이 확실한 임대 전망 없이 덮어놓고 공사를 시작한 탓에 엄청난 부채를 쌓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 톈진의 높이 597m, 117층짜리 ‘골든 파이낸스 117’은 2009년에 공사를 시작했지만 자금이 없어 아직도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 23.5%, 사상 최고치
초고층 빌딩 건설 제한의 더 본질적인 이유는 상업용 부동산의 침체다. 실제 헝다, 완다, 컨트리가든에 이르기까지 중국 대형 부동산 기업들이 연쇄 자금난을 겪으면서 부동산에 대한 우려가 전방위로 확산되는 가운데,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동부 대도시 대련이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두 개의 고층 빌딩은 하나는 높이가 370m, 다른 하나는 383m다. 일본에 지어진다면 일본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가 될 높이다. 이 구조물들은 2010년대에 완공됐지만 대부분 사용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건물 안에는 불이 거의 켜져 있지 않아 해가 지면 고층 건물이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야경에서 으스스한 그림자를 연출한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해도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상업용 부동산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수많은 기업이 창업하고 각종 서비스 기업이 생겨나면서 상업용 부동산 거래가 왕성했다. 해외 자본 유입도 늘어나 신축 건물이 계속 늘어났고, 사무실 임대료나 매매 가격도 2~3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됐다. 공실률은 거의 제로였다.
하지만 코로나 봉쇄 조치와 중국 경제 침체, 부동산 경기의 하락으로 이런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전문 기업인 CBRE에 따르면 지난해 베이징의 상업용 건물 공실률은 23.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도쿄의 사무실 건물 공실률 2.5%, 런던 중심부 8%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특히 글로벌 주요 기업 여러 곳이 둥지를 튼 베이징 북동부 차오양구의 왕징 및 주셴차오 구역의 공실률은 전년보다 2.2%포인트 뛴 24.5%로 베이징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왕징에 있는 62층짜리 타워 역시 공실률이 20%에 달한다.
이에 외국인 투자자들도 중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블랙스톤은 중국 내 3개의 물류 프로젝트를 핑안보험(平安保)에 매각했고, 캐나다연금계획투자위원회(CPPIB)는 4개 쇼핑 단지의 지분 49%를 중국 국영 다자보험그룹에 매각하는 등 굵직한 매각 사례가 이어졌다. 최근 홍콩 개발업체 파크뷰그룹은 베이징 팡카오디 상업 단지를 매물로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