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덮친 금융권, 역대급 실적에도 고용 축소 가속화
입력
수정
4대 시중은행 하반기 채용 규모, 2년 새 절반 가까이 줄어 카드·보험업계도 신입 공채 줄이고 경력직 수시 채용 전환 비대면 거래 늘어 영업점 감축, 주 4.5일제 논란까지 겹쳐

국내 은행권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지만, 신입 채용 규모는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카드업계와 보험업계 역시 일부 그룹사를 제외하면 신입 공채 대신 경력직 위주의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디지털 전환과 영업점 축소로 인력 수요가 감소하는 데다, 주 4.5일제 도입 논의까지 겹치면서 금융권 고용 축소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은행별로 각 15~30명씩 채용 규모 감소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올해 하반기 채용 규모는 645명으로 지난해 상반기 740명보다 100명가량 감소했다. 2023년 하반기(850명)과 비교하면 200명 이상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연간 채용 인원 역시 2023년 1,880명에서 지난해 1,270명, 올해 1,215명으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은행별 채용 규모를 보면 신한은행이 100명, KB국민은행 180명, 하나은행이 170명, 우리은행 195명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5~30명 감소했다.
카드업계 역시 신규 인력 충원을 축소하는 분위기다. 국내 카드사들은 통상 8월 말~9월 중순 사이 하반기 공채를 진행하지만, 올해는 삼성·현대·하나·우리·비씨카드 등 5곳 만이 신입 채용을 진행 중이다. 최근 해킹 사고로 큰 타격을 입은 롯데카드는 공채 없이 경력직 위주의 수시채용만 이어가고 있다. 보험업계는 삼성생명·삼성화재, 한화생명·한화손해보험 등 그룹사들이 신규 채용을 진행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정규직 신입보다는 비정규직 충원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노조, 주 4.5일제 도입 두고 총파업
전문가들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금융업계의 고용 축소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비대면 금융 거래 활성화로 대면 업무가 점차 줄어들면서 인력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은행 점포는 2019년 6,738개에서 지난해 5,625개로 5년 새 1,113곳(16.5%) 감소했다. 보험업계 역시 보험 모집과 판매 채널에서 GA(독립대리점) 중심 비전속 채널 매출이 70%에 육박하는 등 전통 대면 영업이 축소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주 4.5일제가 금융권의 채용에 제약을 거는 변수로 부상했다. 대면 업무량이 줄어든 가운데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 근로자 수를 더 늘리기 어려워진다. 은행원이 주를 이루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주 4.5일제의 선제적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26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금융노조는 과거 주 5일제를 도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 4.5일제도 금융사가 먼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임금 3.9% 인상과 신입 채용 확대, 정년 연장 등도 요구 중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비대면 거래의 증가로 영업점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근무시간 축소와 임금 인상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채용까지 늘리는 것은 무리”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기준 4대 은행의 국내 영업점은 2,691개로 4년 새 400여 개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억대 연봉에 안정적 고용 구조로 선망 직업으로 꼽히는 은행원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4대 은행의 지난해 직원 연봉은 평균 1억1,800만원이다.

국민銀 등 퇴직자 재채용 사례는 증가해
신입 채용의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은행들은 희망퇴직으로 떠난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다시 불러 인력 공백을 메우고 있다. 핵심인력은 신사업 확대에 집중 투입하는 대신 전통 업무에 숙련된 경력자들을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채용에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은행은 실시한 금융권 퇴직인력 재채용을 진행했는데, 채용된 인력은 내부 통제·모니터링·여신 감리 등 리스크 관리 업무와 지역 중소기업 현장 컨설팅에 투입될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시중은행 중 퇴직자 재채용에 가장 적극적인 기관으로 꼽힌다. 최근 5년간 재고용한 인원은 총 2,053명으로 은행권에서 가장 많은 규모다. 지난 7월에는 2015년 6월 이후 희망퇴직자를 대상으로 계약직 채용 공고를 냈다. 자금세탁방지, 집단대출 업무지원, 금융사기 지급정지 및 피해구제, 비대면 가계대출 심사 등의 분야에서 일했던 이들이 대상이다. 계약 기간은 통상 1년으로 이들의 급여는 257만원에서 307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NH농협은행은 최근 5년간 1,109명의 퇴직자를 재고용했다. 6월에만 25명을 뽑았다. 하나은행은 같은 기간 재채용 인원이 466명으로 시중은행 중에는 다소 적은 편이지만, 올해 6~7월에만 퇴직자 19명을 재채용하면서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퇴직자 재채용으로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숙련된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며 "퇴직자 또한 자신의 노하우를 활용하면서 인생을 설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만족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