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까지 닥친 美 연방 정부 셧다운, 시장서 신용등급 강등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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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방 정부 '셧다운' 초읽기, 시장 불안감 가중 3대 신용평가사 최고 등급 모두 잃은 美, 추가 하향 있을까 신용등급 강등 시 국채금리 뛰며 재정 부담 확대 전망

미국 시장에서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 ACA)를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연방 정부의 업무 정지 위기가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셧다운으로 인해 미국의 신용등급이 추가로 강등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흘러나온다.
ACA 관련 논의 '평행선'
29일(이하 현지시간) 외신 등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JD 밴스 부통령, 공화당 존 슌 상원 원내대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 등과 백악관에서 만나 셧다운을 피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민주당 측 인사들과 공화당 측 인사들은 올해 말 종료되는 ACA의 보조금 지급 연장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민주당이 정부 예산을 ‘인질’로 잡아 불법 이민자에게 ACA를 통해 국민의 세금을 지원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ACA 보조금 연장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법안으로 삭감된 메디케어 예산을 복구해야 한다며 맞섰다. 밴스 부통령은 “민주당이 ‘옳은 일’을 하려 들지 않는 탓에 정부가 셧다운을 향해가고 있다”고 민주당을 비판했고, 제프리스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헬스케어를 해치는 공화당의 법안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측의 대치가 이어지며 연방 정부의 셧다운은 가시권에 들어왔다. 임시예산안이 30일 중 상원에서 처리되지 않을 경우, 연방 정부의 일부 업무는 이튿날인 10월 1일부터 정지되며 공무원들은 무급 휴직에 들어간다. 각종 지표의 발표 역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미 노동부는 정부 기능이 마비되면 9월 고용 동향 지표는 예정일(10월 3일)에 발표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9월 고용 동향은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핵심 참고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만약 셧다운이 장기화하며 노동부가 다음 달 15일 발표 예정이었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공개하지 못할 시 연준은 최신 데이터 없이 통화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무디스, 신용등급 추가 강등 가능성 시사해
셧다운을 둘러싼 시장 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셧다운 사태로 인해 미국의 신용등급이 추가 강등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앞서 지난 5월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내리고, 정치 문제가 경제에 심각한 반향을 일으키면 미국의 신용등급을 추가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17년 이래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 수준인 Aaa로 유지해 오던 무디스가 백여 년 만에 미국에 대한 평가를 바꾼 것이다.
무디스는 강등 이유로 급격히 불어난 미국의 국가 부채를 꼽았다. 미국 정부 부채 비율과 이자 지급 비율이 지난 10여 년간 유사한 등급의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강등이 결정된 올해 5월 기준 36조2,200억 달러(5경353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조6,600억 달러(2,308조원)가량 급증한 수치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국채 이자로 지출한 금액은 1조1,330억 달러(약 1,575조원)로 사상 처음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로써 미국은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의 최고 등급 지위를 모두 잃게 됐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11년 8월 미국 정부의 부채 급증을 이유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피치 역시 2023년 8월 정치적 갈등으로 부채한도 협상이 파국 직전까지 치닫자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 채무 부담이 향후 3년간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거버넌스(governance)가 나빠졌다”며 미국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낮췄다.

신용등급 하락의 '후폭풍'
미국의 신용등급이 재차 조정될 경우, 연방 정부의 재정 부담은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신용등급이 하락할 시 투자자들은 미 국채의 안전성이 훼손됐다는 이유로 더 높은 수익률(프리미엄)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5월 무디스의 신용등급 하향 발표 직후 시장 벤치마크 금리인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국채 시장 마감 전 약 15분 동안 연 4.44% 선에서 4.49%로 뛴 바 있다(국채 가격 하락).
국채 금리가 오르면 미국 정부는 이자 비용 부담이 확대돼 더 많은 부채를 떠안게 된다. 대출 등 여타 시장 금리가 국채 금리와 함께 상승세를 탈 시 경기 침체 위기가 닥칠 위험도 있다. 아울러 미국 국채는 글로벌 채권시장의 기반이 되는 금리인 만큼, 미 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 세계 채권 시장에도 혼란이 불가피하다.
미 국채와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며 매도세가 이어지는 ‘셀 USA’ 현상이 가속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 통상 정책으로 인해 미국 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눈에 띄게 위축된 가운데, 신용 등급마저 강등되면 시장 충격이 거세지며 투자자가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