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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양곡관리법 논란으로 보는 도농간 정책 갈등과 선거제도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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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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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남다른 정치적 인사이트를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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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민의힘 직권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된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당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민주당 직권으로 국회 본회의에 회부된 법안이기 때문이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반발하는 가운데, 여당과 정부는 개정안이 연 1조원 가량의 재원 낭비를 불러온다면서 국회 본회의 통과시 거부권마저 행사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농촌 지역구 의원들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도시 유권자들과 이해관계 상충

쌀 수확기에 초과생산량이 예상된 생산량의 3% 이상이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 이상 하락한 경우 초과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민주당 소속 의원 5명(서삼석·윤재갑·김승남·윤준병·위성곤)이 발의한 법안이다. 의원 다섯이 발의한 법안의 경우 세부적으로 각기 내용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쌀농사를 짓는 농촌 지역구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 실제로 다섯 의원 모두 농촌 및 자당 우세지역을 지역구로 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싼 갈등이 장래 점점 커질 도농간의 정책적 노선 갈등을 시범적으로 보여주는 케이스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반대해 16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정훈 의원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조 의원은 ‘도시 근로자’의 사례를 언급하며 “도시 근로자들은 왜 일해야 하나. 자기 임금을 시장에 맡겨서 열심히 일해서 세금을 내는데, 농민은 시장 격리조치를 의무화해서 적정 소득을 반드시 보장해야 하는가?”라며 “이것이 형평에 맞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양곡관리법의 수혜자가 되는 쌀 재배 농민 유권자들과 도시에 거주하는 유권자들과의 이해관계가 정면 충돌할 수 있는 사안임을 조 의원의 발언이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여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납세자 입장에서의 양곡관리법 비판론이나,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를 언급하는 것도 전부 수적으로 다수인 도시 유권자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들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개정안 시행시 쌀 초과 공급량은 기존 20만 톤 수준에서 2030년 60만 톤 이상으로 늘어나고, 쌀값은 지금보다 8%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도시 유권자들의 장바구니 물가 사정을 먼저 고려한 입장에 해당한다. 물론 여당이 납세자들의 입장과 소비자들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 결과적으로 도시 유권자들을 대변하게 된 것이고, 여당이 의도적으로 도시민 편을 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표의 등가성 가치는 농어촌 지역 이익보전 및 국가균형발전과 양립하기 어려워 

문제는 지금의 국회 구성도 그나마 농촌 지역구를 배려하고 있으며, 농촌 유권자들의 정책적 요구사항이 도시 유권자들의 요구사항보다 비례적으로 볼 때 훨씬 많이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국회의원 지역구 인구 편차 상한 인구와 하한 인구 비율이 2대1을 넘으면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는 농촌 유권자들이 실질적으로는 지역구 선거에서 ‘2표’에 해당하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정치학계에서는 이러한 도농간 인구편차 문제에 대해 “1인 1표의 가치가 동등해야 하는 평등 선거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미 농촌 유권자들에게 많은 배려를 하고 있는데도, 그냥 구조적인 인구 감소로 인해 절대적인 영향력마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더 농촌 지역구에 배려를 해주면 위헌의 소지가 생기고, 그냥 내버려두면 농촌은 더더욱 축소될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총체적인 딜레마다.

사실 선거체계의 공정성과 농어촌 지역 등 낙후지역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가치적 지향점에 해당한다. 학술연구 <표의 등가성을 통해 본 선거구획정의 공정성: 측정과 함의>에 따르면, 농촌 비중이 높은 경상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등은 전반적으로 의원 1인당 평균 인구수가 크게 낮아 정치적으로 과대대표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의 경우 의원 1인당 평균 인구수가 가장 높아 매우 과소대표된 지역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문제는 이런 상황도 ‘2:1 인구편차’라는 헌재 판결에 의해 농촌지역을 의도적으로 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위적으로 배려를 해줘도 악화될 수밖에 없는 농촌 지역구의 정치적 영향력과 그를 통한 정책 실현 가능성이 최근 제기되고 있는 선거구제 개편 과정에서 반드시 논의돼야 함을 뜻한다. 해당 연구의 경우, 선거체계 공정성이라는 헌법적 원칙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농어촌 인구수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반드시 그런 방법을 따르지는 않더라도, 법기술적인 측면에서의 평등권 배려 조치와 농촌 지역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같이 해내기 위한 정치권 차원의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래야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같은 문제적 법안을 논의할 때, 이익 논리나 진영 논리에 의한 논쟁이 아닌 정책의 실익과 명분을 균형적으로 고려하는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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