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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후보가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사칭해 지속적으로 모욕한 성명불상의 스토킹 계정들을 경찰에 대거 고소했다. 이번 사건의 특이점은 장 후보에 대한 직접적 모욕보다는 장 후보를 사칭한 계정들이 이준석계 정치인들을 비난함으로써 마치 장 후보가 직접 이준석계 정치인들을 공개 저격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행각들을 저질렀다는 점에 있다. 명예훼손의 양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장예찬 명예훼손, 몇 년 전부터 자행되던 정치 테러 성격에 가까워
장 후보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최근 제 이름을 사칭하고 사진을 도용해 저를 모욕하는 페이스북 계정들이 연달아 생겨나고 있다"며 "계정 삭제 조치를 해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스토킹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지방경찰청에 해당 페이스북 계정들에 대한 고소를 진행했다"며 "이유는 최근 보이는 페이스북 사칭 계정들에 의한 공격은 건강한 정치문화를 갉아먹는 온라인 스토킹이자 일종의 테러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 후보의 언급대로 몇 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페이스북 사칭 계정들의 명예훼손과 모욕은 온라인 스토킹이자 정치 테러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당대회 기간 등 당내 경선이 있을 때면 페이스북에서는 온갖 가계정들이 활개를 치며 특정 유권자나 계정들의 자유로운 정치 발언 및 토론을 방해하는 양태가 관찰된다. 특히 고령층 유권자들이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려고 하면, 대거 나타나 ‘틀딱’ 등의 비속어를 써 가며 공격하기에, 고령층 유권자들이 자신의 의사표현을 꺼리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는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 전 대표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새보계’, ‘좌파’ 등의 인신공격을 가해 그들의 입을 막는다. 즉 유권자들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고 익명성에 숨어 특정 유저들을 인신공격하고 감정적인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가계정들의 활동은 반드시 법으로 엄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번 장 후보 사건의 경우 이러한 가계정들의 온라인 테러 행위가 좀 더 지능적으로 진화된 형태를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장 후보 본인을 직접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장 후보를 사칭해 이준석계 후보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해 마치 장 후보가 직접 이준석계 후보들을 비난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이번 고소당한 가계정들이 장 후보를 명예훼손하는 수법이다.
법조계 "딥페이크 통한 타인 명예훼손 처벌할 수 있어"
사실 이러한 행태는 최근 급격히 문제시되고 있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합성한 유명인 또는 타인의 얼굴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비난을 가하는 것이 전형적인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명예훼손의 양태이기 때문이다. 장 후보의 사진을 이용해 타 후보를 비난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현재 법조계는 딥페이크, 혹은 계정 사칭을 통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정보통신망법 제70조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물론 합성된 특정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경우와 언급된 타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경우로 나눠서 처벌될 수 있다. 이번 장 후보 관련 사건은 합성된 특정인에 해당하는 장 후보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것이다. 다만 명예훼손이 적용되려면 단순히 타인을 사칭하거나, 사칭 계정으로 가짜 게시물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진술하는 행위가 있어야 하는 만큼 현행법상 사칭만으로 형사처벌을 부과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딥페이크 영상이나 SNS상의 사칭 계정을 통한 악성 명예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사실관계 진술'이라는 조건 없이 인터넷에서의 타인 사칭만으로도 해외 입법례들처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례로 캐나다의 경우 지난 2009년 형법을 개정해 인터넷 타인 사칭 관련 처벌을 크게 강화했다. 캐나다 형법은 ▲사칭된 사람 또는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타인을 사칭(identity fraud)하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또한 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타인을 가해·협박·위력·기망하기 위해 동의 없이 인터넷 웹사이트 등의 전자적 수단을 통해 타인을 사칭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달러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1대 국회 또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7월 “2차 피해가 없는 경우에도 정보통신망에서의 타인 사칭은 그 자체로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칭 행위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딥페이크 및 사칭 관련 기술들이 점점 고도화돼가고 있는 만큼 현실에 맞춰 관련 법제를 더욱 촘촘히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