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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의 다국적 반도체·통신업체 퀄컴에 대해 부과한 1조원대 과징금이 정당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퀄컴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휴대전화 제조사 등에 부당한 계약을 강요함에 따라 시장경쟁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2월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 밖에도 미국, 대만, EU 등의 국가에서 퀄컴의 특허권 남용 혐의에 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1조원 소송전’ 공정위 판정승
지난 13일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공정위와 퀄컴 인코포레이티드 및 2개 계열사(이하 퀄컴)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공정위 과징금 처분이 적법하다는 내용의 공정위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가 퀄컴의 공정거래법 위반을 적발·제재한 지 6년여 만에 나온 대법원 판결이다. 이에 퀄컴은 법원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2017년 1월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모뎀칩셋과 휴대폰 경쟁 제조사의 사업 활동을 방해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약 1조311억원을 부과했다. 특히 퀄컴이 모뎀칩셋 공급과 특허권을 연계해 특허권을 독식하며 기업들에 이른바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다.
해당 과징금 규모는 현재까지도 역대 최대 기록이다. 과징금이 높은 이유는 그간 퀄컴이 이번 위법 행위를 통해 상당한 매출을 얻었기 때문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과징금 산정 기간은 2009년 12월부터 7년간으로 해당 기간 관련 매출액이 38조원”이라며 “(이번 퀄컴 사태를) 매우 중대한 위반 행위로 보고 관련 매출액의 2.7%를 제재로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시장지배력 남용 시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3%까지 부과할 수 있다. 아울러 이번 판결로 그동안 퀄컴의 불공정행위를 감내하던 국내 기업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과거에도 중국·EU 등에서 반독점법 위반
퀄컴의 특허권 남용 등 소위 갑질로 인한 제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2월 퀄컴은 반독점법 위반에 따라 중국 정부에 약 1조700억원의 벌금을 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퀄컴은 모바일 칩 시장의 기술 특허를 바탕으로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에 로열티를 받아내는 등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18년에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로부터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약 10억 유로(1조3,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제재 사유는 2011년부터 애플을 비롯한 고객사들이 경쟁업체와 거래하는 것을 막고 자사 통신용 칩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한 혐의로, 그간의 반독점 위반 행위와 유사했다.
이렇듯 반독점 위반으로 여러 경제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자, 퀄컴이 그간 기술 특허로 챙긴 수수료가 줄어들며 매출액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국내에선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스마트폰 업체가 퀄컴과의 특허권 로열티 관련한 재협상을 진행하며 수수료를 줄였고, 같은 해 중국에서는 최대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中國移動)가 퀄컴 기술을 사용하는 기기를 아예 판매 명단에서 배제해버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제재 이후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서
기술 특허로 대부분의 매출액을 올렸던 퀄컴은 여러 국가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으며 세계 통신 전자산업의 ‘공공의 적’이 됐다. 이에 미국 정부가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퀄컴 구제규칙’ 도입 등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등 지원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후 몇몇 국가에서 과징금 부과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내려지면서 결국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다만 최근에는 일부 소송에서 승소하며 독점기업 딱지를 떼는 중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17년 애플과의 배타적 거래와 관련해 퀄컴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미국 1심 법원이 FTC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법원이 판결을 뒤집으면서 독점 족쇄를 벗었다.
또 지난해에는 과거 2018년 EC가 부과한 10억 유로 과징금이 부적절하다는 유럽 일반법원의 판결이 떨어지기도 했다. 유럽 일반법원은 “EC가 퀄컴의 행위를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며 “전체 시장 상황을 검토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독점 행위란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