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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후순위에 배치된 재정준칙 안건이 사회경제기본법 관련 논의에 밀려 다뤄지지 않았다. 이에 16일 재논의를 시도한다고 밝혔으나, 야당에서 사회경제기본법과 함께 처리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유의미한 진전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기획재정위원회서 논의 안 된 재정준칙, 16일 해결되나?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고 여러 재정에 관한 안건을 다뤘다. 이날 안건은 총 52개로 시간 관계상 사회경제기본법과 국가재정법 일부 법률안만 상정되었고, 재정준칙과 관련된 안건은 후순위로 밀렸다. 국회 기재위 간사인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회의 후 "사회경제기본법 관련 논의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며 재정준칙안이 후순위로 밀린 이유에 대해서는 “3월에 충분히 논의했고, 지난 4월에 여야 간사 간 합의해 처리하자고 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사회경제기본법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 협동조합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포함한 사회적경제 3법 가운데 하나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해당 법이 결국 비영리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에 최대 7조원의 세금을 퍼주는 ‘운동권 지대 추구법’이라며 재정준칙 처리와 사회경제기본법을 연계한 것은 재정 건전화를 볼모로 잡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재정준칙안은 여야가 선심성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의 문턱을 낮추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지난달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과 대조적으로 31개월째 국회에서 공전 중이다. 국가채무는 지난해 1,000조원을 돌파했으며, 기획재정부는 올해 국가채무가 1,135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분기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연간 예상치의 90%를 넘어선 상태인 만큼 일각에서는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으면 2040년 생산가능 인구 1인당 국가채무가 1억원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냈다.
소위가 열리기 전인 지난 14일, 기재부는 이례적으로 참고 자료를 내 재정준칙 도입을 호소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물론 윤석열 대통령도 재정준칙 도입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현재 재정준칙은 세계 105개국에서 운용 중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도 우리와 튀르키예만 빼고 도입한 상태다. 기재부는 재정준칙을 도입할 경우 "국가신용등급에 긍정적 영향, 국채금리 안정을 통한 이자 부담 완화 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갖고 있는 민주당이 재정준칙 도입을 반대하고 있어 의결은 불투명하다. 국민의힘은 16일 경제재정소위를 다시 열어 재정준칙 법을 심의하고 오는 22일 전체 회의에서 의결하겠다고 밝혔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만 없는 재정준칙, 민주당 '준칙안 기준 재검토 요구'
사실 재정준칙안은 이미 지난 9월 기재부에서 발의했다. 골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3% 내로 유지하고, 국가채무 비율이 GDP의 60%를 초과하면 적자 폭을 2% 내로 유지하며, 재정수지 기준을 통합재정수지보다 엄격한 관리재정수지로 준용한다는 내용이다. 보완장치로는 전쟁·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등 예외 상황 때는 준칙을 면제하고, 예외 사유가 소멸하면 다음에 편성하는 본예산부터 재정준칙은 즉시 재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를 담보하기 위한 재정 건전화 대책 수립도 의무화하고, 세입이 예산을 초과하거나 지출이 당초 세출예산에 미달할 때 발생하는 세계잉여금은 부채를 상환하는 데 활용하며, 세계잉여금 중 국가채무상환에 쓰는 비율을 현행 30%에서 50%로 높이도록 했다.
지난 4월 26일에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인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유럽을 방문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만나 재정준칙 도입 필요성을 확인받기도 했다. 윤 위원장은 "라가르드 총재가 재정 운영 시 국가채무를 줄이고 지출을 구조적으로 개혁하는 방향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며 “한국의 유례없는 저출생·고령화 상황을 감안할 때 향후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유럽연합과 같은 재정 규율 시스템 도입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또 엘로이 수아레즈 스페인 하원 재정·공공기능위원장, 카예타나 알바레스 데 톨레도 부위원장, 호세 루이스 아세베스 갈린도 하원의원, 마리아 루이사 빌체스 하원의원과도 만나 재정준칙 도입의 효과와 유연한 준칙 운용의 적절성 및 한국과 스페인의 경제 협력 강화 방안 등에 대해 심도 있게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가채무 60%, 재정준칙 3% 등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GDP 대비 적자 폭을 2~3%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재정 운영의 틀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를 둘러싼 최근 논의에서 고정된 숫자를 기준으로 하는 과거 방식은 지양하는 추세”라며 “세계 여러 나라 연구자 사이에서 기존 재정준칙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 반면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상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나라치고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가 한국 외에 거의 없다”며 당연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세금 줄이고 재정준칙도 발의하자는 현 정부, 국가 부채 심각한데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긴급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재정준칙이 덫이 되어 시의적절한 지원을 못 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이에 나 교수는 “2015년도 이후 추경 편성이 이뤄지지 않은 해가 없다. 향후 경제 상황이 변할 때 준칙 때문에 (못)하지 않겠나”라며 "경제 불확실성 등을 고려한 탄력적인 재정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재정준칙을 찬성하는 김 교수는 "예외 조항을 통해 유연한 재정 운용이 가능하다"고 맞섰다. 그는 “(재정준칙을 도입한 국가들이) 성장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는 상당히 많은 예외 조항을 둬서 굉장히 유연하게 운용하고 있고 이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현재 국가채무가 심각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재정건전성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으로 재정준칙안 도입이 적절한지, 지난 1990년 EU에서 도입한 수치로 재정준칙안을 발의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쟁은 충분히 유의미하다. 경제 안정화 정책을 실시할 때 시장 내 불확실성과 정책 간 시차가 존재해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며, 아무리 많은 유연성과 예외 조항을 두더라도 준칙안이 정해진 이상 이전처럼 자유로운 추경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도 “어떤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이번 법안에서 국가채무 60%, 재정준칙 3%가 우리 현실에서 최선이냐고 묻는다면 논란의 여지는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민주당 인사 역시 “재정준칙안을 정 통과시키고 싶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합작해서 수치계산을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홍성국 의원은 “코로나 관련 예산을 빼면 GDP 3% 미만 증액을 못 지킨 것은 한 해뿐”이라며 "물가가 많이 오르면 경상GDP가 크게 늘어나고 영국의 경우는 GDP 대비 누적 재정적자 비율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패권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부채에 연연하지 않고 투자를 해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도 정부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기획재정소위원장인 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확장 재정을 쓰는 정부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정부도 있다며 현 정부에서 세원을 줄이는 동시에 재정 사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쓰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재량 정책을 남발하면 국내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에서 발행한 국채를 구매할 때 이자율을 더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부채가 많은 나라에서 재량 정책으로 예측이 어려워지면 신뢰도와 안정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높은 국가채무 비율을 줄이고, 대외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여야 간 조속한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