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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PoC(Proof of Concept, 기술 검증)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는 액셀러레이터(AC)와 벤처캐피탈(VC)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고금리와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투자자들이 선뜻 지갑을 열지 않자, 원활한 투자 유치 및 차후 해외 진출 등에 도움이 되는 PoC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으로 풀이된다.
PoC는 아직 제품(서비스)의 형태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개발 초기 단계에 아이디어가 실제 구현 가능한지 확인하고, 추후에 나타날 위험이나 실패를 미리 경험하는 과정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발전 및 상품화가 중점을 이루는 스타트업 시장에서는 PoC 과정이 특히 더 중요하다.
이 같은 PoC의 중요성을 확인한 AC, VC들은 스타트업에 실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창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벤처 시장 발전 및 혁신 기술 확보를 위해 PoC 관련 사업에 뛰어드는 정부 산하 기관 및 경제단체들도 다수 등장했다. 업계에서는 PoC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국내 벤처 투자 시장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는 평이 나온다.
스타트업의 가능성 여부 확인하는 '인증마크' PoC
PoC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나 실패 등 개선 과제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 같은 과정은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기술, 제품 등이 주를 이루는 스타트업 시장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구상이 '실제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차후 투자 유치 및 해외 진출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제품·서비스를 완성한 후 검증에 들어가는 테스트베드와는 달리, PoC는 실제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초기 단계다. 주요 요소가 담긴 초기 시제품을 단기간에 제작해 검증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 PoC의 핵심인 셈이다. 이후 스타트업은 검증 단계에서 관계자나 피험자로부터 피드백을 수집하고, 이를 통해 차후 시제품의 발전 가능성 및 그 방향을 한층 구체적으로 설정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과정은 해당 기술이 현실에 구현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는 미래 성장성 및 투자 유치 가능성, 해외 진출 가능성 등을 점치는 무척 중요한 단계다. PoC 과정에서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그 자리에서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경우마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처럼 극단적인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기획 등 초기 단계로 돌아가 피드백을 반영한 시제품을 제작한 후 다시 PoC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국내 스타트업의 PoC 수요는 확실하다. 한국무역협회가 국내 311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증 PoC 테스트베드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기술·제품 등 개발을 위해 실증 PoC가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응답 기업의 87.5%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과거 실증 PoC를 경험한 스타트업(90.9%)과 매출액 10억 미만의 초기 스타트업(92.8%) 일수록 실증 PoC 수요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PoC가 필요한 이유로는 ‘타 기업과의 비즈니스 레퍼런스 등 트랙 레코드 확보’(48%)를 꼽은 기업이 가장 많았다. 이어 ‘활용성 실증으로 향후 제품 출시 여부 판단’(27.5%)과 ‘기술 보완’(19.4%) 순이었다. 최근 AC, VC 등이 스타트업에 실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 역시 이 같은 장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PoC를 성공적으로 마친 기업은 시장에서 미래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이 같은 인식 자체가 '홍보' 효과를 낸다.
PoC 지원 위해 팔 걷어붙인 정부 기관·경제 단체
PoC는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 및 기술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다수의 정부 산하 기관 및 경제 단체가 스타트업의 PoC 지원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먼저 한국무역협회(KITA)는 국내외 대기업의 테스트베드 수요에 따라 수시로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 및 솔루션의 실증 테스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협력 기관, 모집 분야 등은 수요에 따라 수시로 변경된다.
서울시의 대표 창업지원 기관인 서울창업허브(SBA 운영)은 스타트업의 투자부터 글로벌 진출, 기술 상용화 검증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서울창업허브의 PoC 사업은 자체 인프라와 글로벌·공공·민간 분야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며,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진행된다. 최종적인 목표는 스타트업의 제품 및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상용화되고, 기술 실증을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중소기업벤처부와 창업진흥원은 '해외 실증 PoC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글로벌 대기업과의 PoC 기회를 제공해 스타트업의 창업 아이템 현지화 및 글로벌 스케일업을 지원하는 것이 사업의 골자다. 올해에는 총 30개 사에 △PoC 프로그램 사전 준비 △글로벌 대기업 매칭 및 실증 △네트워킹 등 PoC 전 과정을 지원하며, 실증자금 약 9,000만원을 제공한다. 지원 분야는 SSaS, 핀테크, ESG, 헬스케어, ICT 등이며, 주관 기관 자격은 민간(빅뱅엔젤스, 엔피프틴파트너스)에 돌아갔다.
혁신 기술 확보 돕는 민간 PoC 지원
혁신 기술의 확보, 투자 유치 촉진 등을 위해 PoC 시장에 뛰어드는 민간 기업도 증가하는 추세다. SK C&C는 지난 4월 미국 벤처캐피탈 스톰벤처스와 글로벌 유망 기술 보유 스타트업 발굴 및 사업 협력을 위한 협약(MOU)을 체결했다. 스톰벤처스가 포트폴리오 및 유망 스타트업을 초기에 발굴 및 소개하면, SK C&C가 PoC 기회를 제공하고 고객사 적용 방안을 마련하는 형태다. SK C&C는 차후 PoC 과정을 거친 기술을 제조·금융·통신·서비스 등 분야에 디지털 혁신 도구로써 지원할 계획이다.
중기부의 스케일업 팁스 사업을 통한 PoC 사업 민간 참여도 증가하고 있다. 스케일업 팁스는 민간 투자사와 연구·개발 전문회사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운영사가 유망 중소벤처를 발굴 및 투자하고, 이후 정부가 연계 지원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팁스 프로그램에는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PoC 테스트베드를 제공하는 트랙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스타트업은 제품 및 기술을 현지에서 직접 테스트 및 적용해볼 수 있으며, 해외 진출을 위한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다.
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KESIA, Korea Early Stage Investors Association)도 업무 협약을 통해 PoC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2020년 설립된 KESIA에는 초기 벤처 투자에 특화된 AC와 벤처캐피탈,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신기술 사업금융회사(신기사) 등 총 50여 개의 기관이 소속돼 있다. 이들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더인벤션랩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통한 스타트업 지원을 이어갈 예정할 예정이다.
더인벤션랩의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은 대·중견기업의 수요에 따라 △투자 트랙(Investment Track)과 △기술 검증 트랙(PoC Track) 2가지로 나뉘며, 이들 트랙을 혼합하는 경우도 있다. PoC 테스트는 물론 공동 투자, 미래 엑싯(Exit, 투자금 회수) 가치 극대화 등에 초점을 맞춰 체계적인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PoC는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을 위한 도전을 촉진하고, 투자 유치 및 해외 진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정부 기관은 물론 대기업, 투자 기관 등 민간까지 PoC 지원에 공을 들이는 것은 국내 벤처 투자 시장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차후 많은 국내 스타트업이 PoC 지원을 통해 기꺼이 새로운 아이템에 도전하고, 지금껏 없었던 '혁신'을 이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