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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지난 30일 금융투자협회·자본시장연구원과 함께 한국거래소 콘퍼런스홀에서 ‘2023년 제4차 자본시장 릴레이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자산운용업계 수익률·신뢰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안됐다. 한편 일각에서는 한국 금융시장의 보수성을 지적하며, 펀드에서 대규모 인출이 발생하는 '펀드런'으로 인해 금융기관이 도산할 위험이 있으므로 무엇보다도 합리적인 규제 설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모펀드 시장 활성화 위해 운용 규제 완화해야
먼저, 이보미 연구위원은 국내 일반공모펀드의 순자산은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반면 ETF 순자산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투자자들의 직접투자 선호가 두드러지고 패시브 투자가 증가하며 일반 공모펀드의 성장세가 둔화하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위원은 직접투자 및 패시브 투자의 급성장은 투자의 안전성을 낮추고 시장의 비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어, 공신력 있는 다양한 종류의 액티브형 공모펀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개인의 직접투자는 분산 효과가 떨어지고 단기 수익에 집중하며, 패시브 투자의 증가는 시장의 동조화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적절한 수단을 통해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 이 위원의 설명이다.
위 논의를 바탕으로 이 위원은 공모펀드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첫 번째로, 공모펀드 상품의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액티브 펀드를 활성화하는 한편 다양한 투자상품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이 제고돼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공모펀드 판매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이 위원은 공모펀드의 판매 보수 및 수수료 체계를 유연화함과 동시에 선취 수수료나 판매보수 대신 고객으로부터의 자문보수 수취를 강화하고, 판매채널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위원은 공모펀드 운용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즉 공모펀드 간 과도한 출혈 경쟁을 지양하고, 성과연동형 운용보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경제성장 동력 확충 위해 창업·벤처 투자 및 기업 성장 선순환 구조 이끌어내야
한편 자본시장연구원(이하 자본연) 박용린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저성장·고령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만큼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모험자본의 역할이 중요하며, 이를 통한 창업·벤처기업의 성장과 그 과실이 시장으로 환류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박 위원은 이를 위해서는 혁신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시중 유동성의 생산적 분야 유입을 유도하는 ‘벤처투자 집합투자기구(BDC)’의 국내 도입 및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 위원이 제안한 벤처투자 집합투자기구는 민간자본, 스케일업, 일반투자자 접근성을 고려한 상장기구다. 일반투자자의 펀드 투자금 및 운용사의 자기자본 투자금으로 펀드가 결성되며, 인가를 얻은 자산운용사·벤처캐피탈(VC)·증권사가 운용을 맡는다. 그에 따르면 해당 기구는 공모펀드에 적용되는 자본시장법·금소법 보호장치 이상의 두터운 보호 장치 마련으로 투자자들의 투자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타 공모 펀드와는 차별점을 갖는다.
이미 다른 금융선진국의 경우 위의 BDC가 오래전 도입돼 자본 혈류 순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1980년 BDC를 도입해 금융위기 전후 운용자산 규모 및 VC 투자시장이 크게 성장해 현재는 미국 모험자본시장의 중요한 투자기구의 하나로 성장했다. 또한 영국은 1995년 벤처캐피탈신탁(Venture Capital Trust, VCT)를 도입해 2021년 6.7억 파운드, 도입 이후 누적 96.9억 파운드의 자금을 모집해 2021년 기준으로는 57여 개의 VCT가 상장 운용되며 금융 시장의 자본갭(equity gap)을 축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뱅크런’ 우려되므로 규제 완화는 시기상조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패시브 펀드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주식시장 가격탄력성 하락, 자산간 동조화 확대 등으로 인해 체계적 위험의 노출도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이 같은 시장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장쏠림 현상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위원은 온라인 비중이 높은 한국 금융시장의 특성상 금융 기관이 ‘디지털 펀드런’에 대한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투자자들로 하여금 막연한 불안감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고, 환매 요청 순서에 따라 투자자 손익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김 위원의 지적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분위기다. 예컨대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및 미국 은행들의 잇따른 파산이 앞서 언급된 ‘디지털 뱅크런’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 위원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권 불안을 촉발한 SVB의 파산 직전 투자자들의 인출 시도액은 1천억 달러(약 130조원) 규모로 집계됐다. SVB의 파산 당일, 그리고 직전의 인출 시도액은 총 1천420억 달러(약 185조원)로, 이는 지난해 말 기준 당행 예치금 1천750억 달러(약 228조억원)의 약 81%에 해당하는 규모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대규모 자금 인출 시도가 인출이 편리해진 모바일 뱅킹과 온라인을 통한 급속한 정보 전파로 편리한 은행 거래가 가능해진 결과로 분석한다. 즉 전례 없는 핀테크 산업 및 여타 IT기술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펀드런’이 등장한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일각에서는 공모 펀드 규제 합리화 및 접근성 제고에 앞서, ‘펀드런’ 관련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기관의 도산 위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자본과 유동성 측면에서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 자산운용자 관계자 A씨는 “현재 갖가지 형태의 증권상품에 대한 규제정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증권사가 순식간에 도산할 가능성이 생겼다”며 “금융 당국이 무엇보다도 안전성에 초점을 맞추고 운용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