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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외환보유액이 약 6억1,000만 달러 늘었다. 유로화 등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이 증가한 영향이다. 반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26억2,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14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과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이 연이어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안이 증폭된 가운데,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 폭 확대에 대한 우려와 함께 외환보유액 적정 규모에 대한 논란도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4월 외환보유액 6.1억 달러 ↑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2023년 4월 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266억8,000만 달러로 전월 말(4,260억7,000만 달러)보다 6억1,000만 달러 증가했다. 국채, 회사채 등을 포함한 유가증권이 전월 대비 32억5,000만 달러 줄어든 것을 제외하면 그 외 자산 모두 전월 대비 같거나 늘었다.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미 국채, 정부기관채, 회사채 등의 유가증권이 3,743.4억 달러(87.7%)로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 외에는 예치금 278.5억 달러(6.5%), SDR 149.3억 달러(3.5%), 금 47.9억 달러(1.1%), IMF포지션 47.7억 달러(1.1%)로 집계됐다.
무역수지는 적자인데,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이유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4월 무역수지는 26억2,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수입액은 522억3,000만 달러로 지난해보다 13.3% 줄었지만, 수출액 역시 496억2,000만 달러로 14.2% 감소하면서 지난해 3월 이후 1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으로는 수출 부진이 주효했다. 전년 대비 자동차 수출이 40.3%로 크게 늘었지만, 반도체, 디스플레이, 석유제품, 철강 등 주요 수출 분야 대부분이 부진했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경기 불황에 따라 반도체 수출액이 41%가량 급감했다.
무역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도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한은이 보유한 국채, 회사채 등의 채권에서 이자 등의 외화자산 운용수익이 발생했다. 둘째, 최근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유로화와 같은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이 증가한 점도 주효했다.
지난 2월 중순 이후 하락 추세를 보였던 달러화 가치는 지난달에도 소폭 하락했다. 유로, 엔화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미국 달러 인덱스(DXY)는 지난달 말 101.50을 기록하며 전월보다 0.6% 하락했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 가운데 달러화가 아닌 기타통화 자산은 약 30% 수준이다. 이들 환율이 달러화 대비 상승하면서 달러 환산액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은행권 부실 사태 심화, ‘시스템 리스크’ 우려 증폭
최근 미국에선 지역은행 파산 사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월 SVB 그룹과 시그니처은행의 파산 사태를 시작으로 지난 1일에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또한 부실 문제로 JP모건에 매각됐다. 이어 지난 3일(현지 시간)엔 팩웨스트 뱅코프, 웨스턴 얼라이언스와 같은 지역은행들의 주가가 폭락하며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렇듯 현재 미국은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다시금 높아진 상황이다. 특히 미 연준이 이번 5월 통화정책회의에서 다시 한번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가운데, 경기침체가 가속화됨에 따라 무역수지 적자 폭이 지금보다 더 확대될 거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내 경제·금융 연구기관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급격한 통화 긴축에 따라 그간 누적된 금융 취약성이 특히 한국과 같은 신흥국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많은 신흥국이 리스크 프리미엄 증가, 자본 유출, 외환보유고 감소 등의 문제를 겪었다"며 특히 원자재 수입국의 경우 교역조건 악화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외환보유액 규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아직 주식 등 자산시장이 침체 위기를 반영하고 있지 않지만, 시장 참여자 대다수가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있다”며 “주요 선진국 대비 다소 낮은 수준인 외환보유액 규모를 감안할 때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외환보유고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야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은 발표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세계 9위 수준이다. 특히 지난달 외환보유액 증가 폭은 스위스를 제외한 주요 10개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가장 낮았다.
글로벌 시스템 리스크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만큼 외환보유고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바람직하다. 다만 외환보유액을 늘릴 경우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으로 발생하는 운용 부담 증가와 보유 자산 손실 등의 문제가 잇따를 수 있다. 기존 경제 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비용과 편익을 고려한 경제 당국의 적절한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