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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푸틴-젤렌스키 양자 회담 추진 중 미국·유럽·우크라, 안보 논의 위한 3자 위원회 결성 지상군 파병 거부한 美, 유럽 평화유지군이 안보 보장 주축 되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양자 회담을 가질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양국 간 중재를 주도하며 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양상이다. 이에 더해 미국은 유럽과 함께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관련 논의에도 힘을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우크라 정상, 부다페스트에서 회동?
19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은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양자 회담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수주 내 젤렌스키 대통령과 직접 만나겠다고 약속했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그렇다(He has)”고 답했다. 다만 러시아 크렘린궁은 아직 회담 개최 여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양자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중재에 나선 결과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먼저 만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양자 회담이) 잘 풀리면 내가 삼자 회담에 들어가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는 전날 유럽 정상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정상이 ‘한두 달 뒤에 만나자’고 제안하자, “한두 달이면 4만 명이 더 죽으니 오늘 밤 당장 해야 한다”며 즉각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것으로 전해졌다.
양자 회담 장소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부다페스트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다만 일부 매체에서는 오르반 총리가 유럽연합(EU) 내 대표적인 친러시아 성향 지도자인 만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불편한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레빗 대변인은 부다페스트 개최설에 대해 “장소를 확인하거나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서방국 움직임이 보여주는 휴전 시나리오
양자 회담 추진에 더해 미국은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위해 미국·유럽·우크라이나 3자 위원회도 구성했다. 해당 위원회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 대행이 이끌 예정이며,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의 국가안보보좌관이 참여한다. 위원회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안의 핵심인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 당국자는 미국 정치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다가오는 며칠간 (위원회 구성원) 모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안보 보장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며 “아마도 이번 주말쯤에는 명확한 (안전보장의) 구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국들이 안보 관련 논의에 힘을 쏟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일부 내주는 식으로 전쟁이 마무리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15일 트럼프 대통령과 알래스카에서 만나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러시아-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한스크 인민공화국, 로스토프주 일대)에서 철수하면 나머지 전선을 동결하고 추가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수미와 하르키우 일부의 러시아군 점령지(440㎢)를 반환하는 대신, 돈바스에서 아직 우크라이나군의 통제를 받는 면적(6,600㎢)을 넘겨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러시아는 2022년 개전 이후 도네츠크의 75%, 루한스크의 거의 전부를 장악한 상태다.
러시아가 이처럼 돈바스 일대 영토에 주목하는 이유는 해당 지역이 전략적 요충지기 때문이다. 현재 도네츠크 서부 지역에는 도시와 마을을 방어선으로 삼은 우크라이나의 ‘요새 벨트’가 구축돼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를 포기할 경우, 러시아는 요새 벨트 전역에 진지를 구축하고 도네츠크에 위치한 방위 산업 인프라를 활용하며 훨씬 유리한 고지에서 전쟁을 재개할 수 있다. 서방국의 개입을 통해 확실한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를 포기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반대로 서방국이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해 개입할 경우, 푸틴 대통령이 제시한 시나리오대로 휴전 협상이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美 "미군, 우크라이나 주둔 않는다"
다만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지상군을 파병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안보 문제에서 유럽은 지상에 병력을 투입할 의지가 있다”며 “우리는 공중에서 도울 준비가 돼 있으며, 우리만큼 그런 역량을 가진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레빗 대변인 역시 “대통령이 분명히 밝혔듯 미국 군대는 우크라이나에 주둔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위한 유럽 동맹국들의 조정을 돕거나 아마도 다른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짚었다.
유럽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중심으로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일각에서 평화유지군보다 소규모인 ‘인계철선 부대’를 우크라이나에 배치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는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도 있었다. 이에 더해 유럽은 자국 병력 안전을 위해 미국에 ‘백스톱(backstop)’ 역할을 요구 중이다. 백스톱이란 원래 야구 등 스포츠에서 공이 뒤로 빠졌을 때 잡아주는 안전망을 뜻하는 용어로,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최후의 안전장치나 보증 장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향후 관건은 러시아가 서방국 안보군의 우크라이나 주둔을 용인할지 여부다. 지난 18일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논평에서 “우크라이나에 나토군을 배치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시나리오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우리 입장을 반복한다"며 "이는 갈등을 격화하며, 예측 불가능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