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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내 외환보유액 규모가 한 달 새 57억 달러(약 7조4,600억원)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다만 외환보유고 감소세는 세계적인 추세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우 타국 대비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외환보유고가 감소하고 있다고 해서 덮어놓고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는 의미다.
국내 외환보유액 규모 감소, 美 달러화 강세 등 영향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중 국내 외환보유액 규모는 4,209억8,000만 달러로 전월 말 대비 57억 달러 감소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들어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며 3월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 7월 반등했으나 8월부터 10월까지 연속으로 다시 줄어들었다. 이후 외화자산 운용수익 및 미 달러화 약세 기조에 힘입어 올 3월 이후 두 달 연속 증가하는 듯했으나, 이번에 다시 급감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은 미 달러화 강세에 따른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달러 환산액 감소, 금융기관 외화예수금 감소,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 조치 등의 영향에 따라 외환보유액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5월 중 미 달러화지수는 전월 대비 2.6% 상승하는 모양새였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을 자산별로 살펴보면, 유가증권은 3,789억6,000만 달러로 전체 비중의 90%를 차지했다. 외환 예치금 규모는 178억2,000만 달러로 4.2%의 비중을 나타냈으며,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은 147억 달러(3.5%), 금은 전월과 변함없는 47억9,000만 달러(1.1%)였다. 또 우리나라가 IMF 회원국으로서 낸 출자금 중 되찾을 수 있는 금액인 IMF 포지션은 46억9,000만 달러(1.1%)를 기록했다.
주요국의 외환보유액을 살펴보면 중국이 3조2,048억 달러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일본 1조2,654억 달러, 스위스 9,008억 달러, 러시아 5,958억 달러, 인도 5,901억 달러, 대만 5,611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 4,298억 달러, 홍콩 4,274억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4월 말 기준 세계 9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韓, 타국 대비 외환보유액 감소폭 가장 적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감소세에 접어든 건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달러화 강세에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대거 투입한 영향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외환보유액 상위 10개국 중에서 가장 적은 외환보유액 감소폭을 보였다. 애초 외환보유액 감소 자체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었단 뜻이다.
지난 2021년 말 기준 외환보유액 상위 10대 국가 중 지난해 11월 말까지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국가는 오직 사우디아라비아와 대만 두 국가뿐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국제원유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대만은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외환시장 규모로 인해 정부의 개입이 덜했기에 외환보유액 감소를 피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8개국의 외환보유액은 모두 감소했는데, 이 중 우리나라의 감소폭(-470억 달러)이 가장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이 기간 3조2,502억 달러에서 3조1,175억 달러로 1,327억 달러, 일본은 1억4,058억 달러에서 1억2,263억 달러로 1,795억 달러, 스위스는 1억1,100억 달러에서 9,059달러로 2,041억 달러 감소했다. 이외 인도(-804억 달러), 러시아(-633억 달러), 홍콩(-737억 달러) 등도 우리나라보다 감소폭이 컸다. 특히 싱가포르의 경우 지난해 11월 말 3,000억 달러 이하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어 10위권에서 탈락했다.
외환보유고 감소는 '세계적 추세'
이처럼 외환보유고의 감소세는 세계적인 추세다. 즉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감소하고 있다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IMF 역시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충분하다"는 사인을 보내오기도 했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Krishna Srinivasan)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지난 5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한국의 경제체제는 매우 탄탄하다"며 "외환보유고가 국내총생산(GDP) 25%를 차지하고 단기부채 2.5배수를 커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매우 충분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IMF 기준에 미달한 것 아니냐는 우려에도 선을 그었다. 크리슈나 국장은 "IMF 외환보유액 적정성 평가지수(Assessing Reserve Adequacy·ARA)의 권고 수준(100~150%)은 신흥국을 대상으로 한 발표 기준"이라며 "한국 경제에 크게 적용될 가능성은 없다"고 전했다. 앞서 IMF는 우리나라의 ARA를 97%로 집계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여전히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주요 기관의 방법론을 활용해 적정 외환보유고를 추정한 후 현재 국내 외환보유고 수준과 비교했을 때 현 외환보유 상황은 추정된 적정 외환보유고 수준 대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거 금융 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기준이 엄격한 BIS 방식으로 추정한 적정 수준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긴 했으나 대내외 리스크를 고려해 적정 수준에서 지속적인 관리를 이어 나간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