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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 낮은 기업 가치로 나스닥 상장된 ARM,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만 아니었어도 손해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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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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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GettyImages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이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인 암(ARM)을 기업가치 520억 달러(약 69조원)로 상장키로 최종 결정했다. 이는 지난달 시장에 제시된 금액이자,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했던 금액인 640억 달러(약 85조원)를 훨씬 밑도는 수치다. 그럼에도 시장은 현재 열풍이 불고 있는 AI 반도체와 ARM의 산업 방향은 다르다며 "여전히 과대 평가된 가격"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일각에선 소프트뱅크가 산하 벤처캐피탈인 비전펀드만 아니었어도 ARM 나스닥 상장에서 손해를 보진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초 소프트뱅크는 ARM을 인수한 뒤 비전펀드에 320억 달러(약 43조원)의 기업가치로 ARM의 지분 일부를 매각했다. 그런데 최근 비전펀드가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 가능성이 가시화되자, 소프트뱅크가 640억 달러로 비싸게 되사들여 비전펀드에 출자한 투자자들에게 일정 이익을 안겼다는 설명이다.

ARM 기업가치 520억 달러, 시장 반응은 여전히 싸늘

5일(현지 시간) 외신 보도에 따르면 ARM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예탁주 9,550만 주의 공모가격 희망 범위를 주당 47~51달러로 제시했다. 이에 따른 기업가치는 500억~540억 달러(약 65조9,000억원~71조3,000억원)에 이른다. 업계에선 2021년 전기차 회사 리비아의 137억 달러(약18조3,000억원) 이후 간만에 뉴욕 증시에서 최대 규모 IPO(기업공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AMD, 구글, 애플, 케이던스, 미디어텍, 인텔, 시놉시스, TSMC, 엔비디아, 인텔 등 주요 기술 기업 10개 사가 앵커투자자로 뛰어든다. 앵커투자자는 비상장 기업의 IPO 과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일정 규모의 주식을 인수하는 전략적 투자자를 뜻한다. 이들 10개 기업이 최초 공모가격에 사들이 ARM 주식은 총 7억3,500만 달러(약 981억원) 규모다.

이번 상장을 통해 회사가 조달하게 될 자금은 48억7,000만 달러(약 6조4,540억원)가량이다. 당초 80억~100억 달러(약 10조원~13조원) 규모 자금 조달을 목표로 했으나, 당초 소프트뱅크가 비전펀드에 매각했던 ARM 지분 25%를 최근 다시 사들이는 등 관련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하기로 결정하면서 목표 조달 금액도 축소된 모양새다. 이번 공모할 주식 규모는 전체 ARM 발행주식의 약 9.4%다.

특히 소프트뱅크가 지난달 지분 25%를 매입할 때만 해도 ARM 가치는 640억 달러(약 85조원)로 추정됐다. 그런데 이후 불과 몇 주 만에 ARM의 몸값을 120억 달러(약 16조원) 가까이 낮춰 공모에 나선 꼴이다. 그럼에도 시장 반응은 아직 싸늘한 분위기다. ARM의 매출 상당 부분이 모바일 칩에서 창출되고 있기 때문에 최근 뜨거운 감자인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의 'AI 반도체 열풍'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에서다.

규제 당국의 제동으로 엔비디아, 삼성전자와 인수 합병 불발

당초 소프트뱅크는 2020년 당시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ARM을 당시 400억 달러(약 47조3,000억원)에 매각할 계획이었다. 당시 블룸버그 통신을 비롯한 외신에선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업체인 엔비디아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업체 ARM의 초대형 인수합병 관련 소식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로 경쟁사 인텔이 과거 누리던 반도체 시장의 확고한 파워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며 "미국 중심으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판도가 다시 짜일 전망"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선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삼성전자 등 여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도 적잖았다. 그간 ARM은 반도체 설계 외엔 제조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는데, 만약 ARM 인수에 성공한다면 엔비디아가 경쟁사 대상으로 반도체 관련 특허 이용을 제한하는 '갑질'을 할 유인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엔비디아의 반도체 시장 독점 가능성, 국가 안보 등의 이유로 규제 당국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고, 이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삼성전자와도 ARM 인수 합병을 타진했으나 엔비디아 건과 마찬가지로 규제당국의 제동 탓에 단독 인수가 아닌 포괄적 협력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같은 배경을 이유로 ARM이 과거 차질을 빚었던 지분 인수, 기업합병보다는 미 나스닥 상장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사진=GettyImages

어깨에서 사서 무릎에서 판 손정의 회장

2016년 손 회장이 ARM을 처음 인수할 당시 인수가격은 320억 달러(약 42조원)였다. 당시 손 회장은 "ARM 인수가 수십 년 동안의 기술 투자 끝에 나온 운명"이라고 해당 거래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내비친 바 있다. 실제 이번 나스닥 상장을 통해 평가받은 ARM의 기업 가치는 520억 달러로 당초 인수가격은 물론, 엔비디아 인수합병 기대 기업가치보다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업계에선 손 회장이 이번 나스닥 상장을 통해 ARM에 대한 투자 실패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2016년 ARM을 인수한 소프트뱅크는 2017년 ARM의 지분 25%를 산하 비전펀드에 80억 달러에 다시 매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수 가격 그대로 매각한 것이기 때문에 손해는 없었다. 그런데 ARM 상장을 목전에 둔 소프트뱅크는 지난달 비전펀드로부터 25% 지분을 다시 사들였는데, 이때 평가된 ARM 기업 가치가 640억 달러다. 당초 매입 가격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다. 이에 소프트뱅크는 640억 달러로 IPO 기업가치평가를 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시장에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여전히 과대한 평가"라며 520억 달러로 ARM의 몸값을 낮추게 된 것이다.

손 회장이 이같은 손해를 감수하고도 ARM의 미 나스닥 상장을 감행한 것은 비전펀드 투자자들과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비전펀드의 대표 투자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PIF, 아부다비 국부펀드 무바달라 등이 있는데, 최근 비전펀드가 거액을 투자한 미국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의 주가가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로 대거 폭락하면서 펀드 내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이에 소프트뱅크는 투자자들을 달래주기 위해 비전펀드로부터 비싼 가격으로 ARM을 재매입하고, 나스닥 IPO 시장에서 높은 가치 평가를 통해 해당 손실분을 메꿀 심산이었으나, 막상 시장이 ARM에 대해 비교적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소프트뱅크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대로 손실을 떠안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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