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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 사태 탓 ‘부패’ 이미지 쌀값·관세협상 부진 ‘무능’ 겹쳐 이시바 연임 의지 확인, 버티기 태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취임 9개월 만에 3개 선거를 내리 지면서 수십 년간 지켜온 집권 자민당 정권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상품권 사태로 빚어진 부패 이미지에 쌀값 급등, 미·일 관세 협상 부진 등 무능까지 겹쳐 민심이 이반한 결과로 책임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참의원(상원) 선거 참패에도 총리직 유지를 공언했지만 연립여당 확대 여부와 야당의 사퇴 압박 수위에 따라 정권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日 자민당, 참의원 선거까지 3전3패
21일 NHK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전날 치러진 선거에서 3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연립여당인 공명당(8석) 의석수와 합쳐도 당초 목표로 했던 50석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임기 6년의 참의원(248명)을 3년마다 한 번씩 절반을 교체한다. 이번에 선출한 의석은 125석으로 이시바 정권은 기존 의석 75석에 신규로 50석을 확보해 과반을 차지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이번 선거에서 122석에 그치면서 야당(126석)에 주도권을 내주게 됐다. 지난해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대패해 소수여당으로 전락한 데 이어 참의원에서도 소수여당이 된 수모를 당하게 된 것이다.
자민당의 자리를 채운 건 지난해부터 기세를 올리고 있는 국민민주당(17석)이다. 기존 의석수와 합치면 22석을 차지하게 됐는데 예산이 소요되는 법안을 단독 발의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했다. ‘일본인 퍼스트’를 내세워 젊은 표심을 얻은 우익 성향의 참정당 역시 14석을 확보하며 약진했다. 기존 의석(1석)을 더해 총 15석을 차지하게 됐는데,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법안 단독 제출이 가능한 정당이 됐다. 3년 전만 해도 1석에 그쳤던 존재감이 전무했던 참정당이 기세를 올린 데는 고용과 토지매입 분야 등에서의 외국인에 대한 규제, 아동 1인당 10만엔(약 93만원) 지급 등이 유효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계에서는 자민당의 도미노 참패에 따른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이시바 총리는 사임론에 선을 긋고 있다. 20일 NHK와 TV아사히 등과 인터뷰에서 이시바 총리는 “비교 제1당 의석을 받은 무게도 잘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정당 가운데서 가장 많은 의석을 보유한 1당의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참의원에서 자민당(101석)의 의석수는 압도적으로 많다. 1999년부터 연립으로 손을 잡아온 공명당(21석)과 합치면 과반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이시바 총리는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日 국채 금리 17년만 최고치, 정치·재정 우려에 시장 '촉각'
애초 이번 선거는 집권 여당에 유리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30% 안팎으로 저조했고, 표심을 공략할 카드도 마땅치 않은 편이었다. 자민당은 2023년 연말에 불거진 '비자금 스캔들'로 홍역을 치렀으나, 이후 정치자금 제도 개혁에 소극적이었다. 여기에 이시바 총리가 올해 3월 초선 의원 15명에게 상품권을 배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민당을 향한 국민의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내각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한 또 다른 요인은 고물가였다. 특히 지난해 여름께부터 오르기 시작한 쌀값이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정부 비축미를 시장에 풀며 쌀값 잡기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에 이시바 총리는 지난 5월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을 새 농림수산상에 기용했고, 고이즈미 농림상은 이른바 '반값 비축미' 방출을 통해 쌀값 상승세를 꺾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 초·중순 '반짝 반등'했으나, 이내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에 자민당은 고물가 대책으로 '소비세 감세' 카드를 꺼내든 야당들과 달리 재정 악화를 우려해 전 국민 지원금 지급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여론 반응은 싸늘했다. 그간 야당 측은 경기 부양에 집중하며 감면을 주장한 반면, 이시바 내각은 경기부양보다 재정 안정에 방점을 두며 세금 인하에 부정적인 기조를 보였다. 문제는 물가 상승 속도를 임금 인상이 따라가지 못해 가계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인플레이션 혜택을 재정으로만 흡수했다는 점이다. 민간에 돈이 돌지 않아 경기는 가라앉고, 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던 것이 바로 ‘이시바 디스카운트’다.
재정 적자 공포가 확산하면서 일본국채(JGB)는 장기물을 중심으로 폭등하기 시작했다. 이미 30년물 기준 JGB 금리는 선거 전이었던 7월 14일 장중 최고 3.15%까지 상승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월 대비 0.2% 이상 급등한 수치이자 17년 만의 최고치다. 이시바 내각이 재정 건전화 기조를 고수하던 와중에 시장은 그의 정치적 입지 약화를 민감하게 포착했고, 결과적으로 장기금리에 대한 상승 압력으로 직결된 것으로 분석된다.
"BOJ, 추가 금리 인상 이르면 내년 1월"
통상 국채 금리는 단순히 이자율의 변동을 넘어 시장의 기대 심리를 반영하기도 한다. 정부 재정 상황을 반영하는 일종의 '경제 지표'인 만큼 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장기금리 상승은 국채 이자 지급액 증가로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으며,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의 부담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시장에서 일본은행(BOJ)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는 시기가 내년 1월은 돼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증권업협회 히비노 다카시 회장은 블룸버그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BOJ의 추가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해 빠르면 내년 1월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히비노 회장은 "인플레이션의 지속성과 실물 경제의 흐름을 신중히 지켜보며, 2026년 1월에서 3월 사이에 금리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시경제 환경과 내년도 임금 인상 동향 등을 확인한 뒤, BOJ가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BOJ는 올해 1월 기준금리를 0.5%로 인상했으며, 시장의 관심은 현재 다음 금리 인상 시기와 그 속도로 옮겨간 상태다. 그러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4월 관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향후 불확실성이 커지고 금융시장이 혼란을 겪자, 그간 우세하던 '연내 추가 인상' 전망은 약화됐다. 블룸버그가 6월 실시한 이코노미스트 조사에서도 내년 1월 인상 전망이 가장 많은 응답을 차지하는 등 예상 시점이 늦춰지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