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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 발표, 요금제 다변화·단말기 부담 경감이 골자 이통3사 독과점 견제 위해 시장 경쟁 유도해 온 정부, 고금리 시기 효과 미적지근 결국 움직이는 건 이통3사, 전례 없는 정부 압박에 요금제 줄줄이 개선
내년부터 첫 3만원대 5G 요금제, 80만원대 이하의 중저가 스마트폰 등이 출시된다. 이에 더해 단말기에 따른 5G·LTE 요금제 가입 제한이 사라지며 이용자의 통신비 절감 선택지가 한층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같은 내용의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알뜰폰, 제4통신사 등을 앞세운 '통신 3사 과점 때리기' 정책의 효과가 미진하자, 규제 화살을 직접 통신 3사로 돌리는 양상이다.
"소비자 선택지 넓혀라" 尹 정부의 통신비 경감 압박
국내 통신업계는 이번 정부 들어 중간 요금제 다양화, 청년·어르신 요금제 출시 등 두 차례의 요금제 개편을 거쳤다. 올 초 윤석열 대통령이 통신 시장 과점 해소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직접 주문한 직후,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통신 3사 때리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5G 요금제의 최저가가 높고, 30GB 이하의 저가 요금제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5G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LTE 요금제에, LTE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5G 요금제에 가입할 수 있도록 이용약관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용자의 월 데이터 사용량에 따른 요금제 선택 폭이 넓어지는 셈이다. 과기정통부는 통신 3사와의 협의를 거쳐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관련 절차를 밟아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내년 1분기 내로 온라인 전용으로 존재하던 3만원대 5G 요금제를 최초 출시하고, 30GB 이하 소량 데이터 구간 요금제도 한층 다양화한다.
정부는 통신 장비 비용 경감을 위해 삼성전자와 협의, 연내 2종·내년 상반기 3~4종의 30~80만원대 중저가 스마트폰을 출시하기로 했다. 단말기 지원금을 받지 않는 대신 25% 통신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선택약정 할인제도에는 ‘사전 예약 기능’을 도입할 예정이다. 사전 예약 기능은 사전 신청을 받아 1년 단위로 약정을 자동 갱신할 수 있는 것으로, 기존 2년 약정과 동일한 할인 혜택을 유지하면서 중도 해지 위약금을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통신 3사 과점이 문제? 알뜰폰·제4이통 독려 정책
윤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통신비 인하 정책을 펼쳐왔다. 이어지는 고물가·고금리로 국민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통신 서비스 지출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1만9,775원 수준이었던 월평균 가계 통신비 지출은 올해 1분기 13만285원까지 늘었다. 정부는 통신 3사의 과점 구조로 인해 통신비 부담이 가중됐다고 판단, 시장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주목한 것은 통신 3사로부터 망을 빌려 쓰는 '알뜰폰' 사업자들이었다. 이들의 경쟁력을 끌어 올려 통신 3사와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통신 3사에 망 도매 제공 의무 제도를 상설하고, 현재 50%인 통신 3사 자회사의 알뜰폰 점유율 상한선을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70개 이상의 알뜰폰 사업자들은 시장에 이렇다 할 변화를 안겨주지 못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통신 3사는 여전히 전체 시장 매출액의 약 97%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사업자 간 경쟁 활성화를 위해 제4이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생·중소 통신사업자를 육성해 통신 요금 인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정부는 신규 통신사업자 지원책을 확대하고 나섰다. 이번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에도 신규 사업자를 위한 각종 혜택이 담겼다. 과기정통부는 오는 20일부터 내달 19일까지 28GHz 주파수를 할당받을 신규 사업자를 모집하고 있다. 주파수 할당 최저가는 724억원으로 지난 2018년 대비 65% 감소했고, 망 구축 의무도 60% 줄인 6,000대로 책정됐다. 신규 사업자의 초기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정책금융 최대 4,000억원 및 세액공제도 지원할 예정이다.
공격적인 '통신 3사 규제' 어디까지
하지만 '통신 3사 과점 체계'를 무너뜨리는 데 중점을 둔 정부 대책은 아직까지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 및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신규 사업의 투자 유치 및 육성 난이도가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번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은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의 '유턴'으로 풀이된다. 경쟁사 양성으로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완만한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가 통신 3사에 직접 요금 인하 및 다양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지금껏 이처럼 공격적으로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정부는 없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제4이통 논의는 사실상 성과 없이 종료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됐고,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선택약정 할인율을 20%에서 25%로 올렸다. 지금처럼 정부가 직접 통신사들의 요금제 설계, 약관 구성, 단말기 유통 구조 등 업계 전반에 '규제 드라이브'를 건 경우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압박에 짓눌린 통신 3사는 잇따라 개선안을 토해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통신비 부담 완화 효과가 가시화할 때까지는 정부의 '통신 3사 때리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방안을 통해 소비자가 개별 수요에 따라 통신비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가운데, 시장은 추후 정부가 내놓을 '추가 주문'에 촉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