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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5월 국회 본회의서 전세사기 특별법 처리 추진
피해자 3만명에 5,000만원씩만 지급해도 1.5조원 소요
주택도시기금 고갈 우려, 추경 등 국가재정으로 메꿔야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무기로 '묻지 마'식의 '선(先)구제 후(後)구상'를 골자로 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이는 가운데,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주택도시기금이 최대 4조원 가까이 소요될 수 있는 데다 사인 간 사기 피해까지 정부가 나서 구제해 준다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세사기특별법 '민생법안'으로 규정 후 국회 직회부
18일 정계에 따르면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민생법안으로 규정하고 21대 국회 남은 임기 동안 서둘러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등 야권이 주도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전세사기 피해자의 임차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수해 보증금을 돌려주는 '선구제 후구상' 방안을 골자로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20일까지 총 1만4,001명이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현행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거주하는 주택에 대해 우선매수권이 생기고 이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양도한 뒤 공공임대로 계속 거주할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면 최장 20년까지 주거 안정을 보장받을 수도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채권 매입 신청을 받은 후 공정가치 평가를 거쳐 매입하는 방식으로 매입 비용은 주택도시기금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채권 매입 가격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우선변제 보증금 비율 이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선변제금은 서울 5,500만원, 과밀억제권역 등은 4,800만원, 안산·파주·평택 등은 2,800만원, 그 밖의 지역은 2,500만원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오는 2025년 전세사기피해자는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들에게 최소 5,000만원의 선구제가 이뤄질 경우, 최소 1조5,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만약 피해자 평균 보증금인 1억4,000만원을 전부 돌려준다면 4조2,0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 국토부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주택도시기금에서 피해자에게 지급될 비용이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집값 변동 심했던 2021~22년 계약 만기 도래, 피해 늘어날 듯
문제는 재원이 되는 주택도시기금의 재정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 운용 평균 잔액은 20조2,280억원으로 전년 대비 53% 감소했다. 주택도시기금은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 시 매입하는 국민주택채권·청약저축 등으로 조성되는데 청약예금이 줄고 부동산 거래가 감소함에 따라 기금이 보유한 여유자금도 소진되고 있다.
지난해 세입자 1만9,350명이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HUG에 대신 돌려달라고 요청한 사고액은 4조3,347억원 수준이다. 이 중 82%에 해당하는 3조5,540억원을 HUG가 세입자에게 대위변제액으로 내어줬다. 올해 1분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사고액은 1조4,35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0% 증가했다. 월별 사고액은 1월 2,927억원, 2월 6,489억원, 3월 4,93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HUG의 대위변제액은 8,8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8% 증가했다.
집값 활황기의 정점이던 2021년 하반기부터 하락세가 본격화한 2022년 4분기 전까지 체결된 임대차계약 만기가 연이어 돌아오면서 전세사기와 역전세로 인한 전세보증 사고는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전세보증 사고액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피해자 대위변제액이 확대되면서 HUG의 적자가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HUG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3조8,598억원으로 2022년 4,087억원 순손실을 기록한 이후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1993년 HUG 설립 이후 최대 적자다. 통상 HUG는 대위변제 후 보증사고가 발생한 주택을 매각하거나 경매를 통해 금액을 회수한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침체 탓에 보증사고 주택을 적정가격에 매각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매로 넘어가도 평균 70∼80% 정도만 회수할 수 있어 보증사고가 대거 발생할 경우 조 단위 손실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혈세로 사기 피해 보상, HUG 적자, 기금 운용 취지 등도 논란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당장은 주택도시기금을 사용할 수 없다 보니 무리하게 국가 재정을 편성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정안은 공포한 날부터 1개월 뒤 시행되는데 올해 주택도시기금 운용계획이 이미 나와 있는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기금을 선구제를 위한 예산으로 사용할 수 없다"며 "당장 시행하려면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소요예산이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경예산을 편성할 경우,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기금이 분양주택 융자·신생아 특례대출 확대 등 무주택자들의 주택 구입이나 전세자금 지원을 위해 조성된 자금이기 때문에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지급하기 위해서는 기금 운용의 취지에 맞는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근본적으로는 '사기' 사건에 대해 정부가 직접 구제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개정안이 규정하는 채권 매입을 위한 '공정가치'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세사기 피해자를 다른 사기 피해자보다 우선해서 구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의 실효성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정부가 과도한 요건을 적용하면서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한계가 전세사기 사건의 특성상 임대인의 ‘사기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피해 구제 대상자의 기준도 지나치게 좁다. 지난 6월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제공하는 저리 대환대출의 요건을 부부 합산 소득 연 7,000만원에서 연 1억3,000만원으로 완화했다. 하지만 이 역시 모든 피해자를 구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대안이라는 지적이다.
피해자로 인정받으면 우선매수권 부여, 경·공매 유예, 기존 임차주택 구입자금 대출 등의 혜택을 제공하지만, 피해자가 당장 바라는 피해금 구제와는 거리가 멀어 정작 체감에도 한계가 있다. 실제 경·공매를 활용해 집을 매입한 경우는 133건에 불과하다. 주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용도 변경된 건물, 가등기가 걸려 권리관계가 복잡한 집이 많아 공공매입 실적이 저조한 것이다. 결국 경매를 통한 전세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전세대출을 저리로 갈아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18일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민주당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이 21대 국회 임기 내 민생법안을 서둘러 처리한다는 입장인 만큼 여야 간 의정 갈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다면 국회는 다시 대통령 거부권 정국에 빠질 수 있다. 개정안이 다시 국회로 넘어오면 재표결을 거쳐야 하는데 200인 이상 찬성이 요건인 만큼 재의결이 쉽지 않아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으로 폐기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