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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운용사 보유 기업 상폐 사례 잇따라
남양유업이 다음 사례 될지 시장 이목 집중
주가 관리 부담 느끼는 PEF, 비상장사 전환 선호
최근 사모펀드 운용사(PEF)가 보유한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상장폐지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남양유업이 그다음 타깃이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는 남양유업의 적자 탈출이 최대 급선무인 만큼 당장은 아닐지라도 엑시트(투자금 회수)와 경영 편의성 등을 위해 향후 상장폐지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 전망이다.
MBK파트너스, 상장폐지 위해 공개매수 추진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커머스 플랫폼 커넥트웨이브는 2대 주주인 김기록 이사회 의장이 MBK파트너스가 진행 중인 공개매수에 응하기로 했다고 8일 공시했다. 앞서 MBK파트너스는 지난 4월 29일부터 오는 5월 24일까지 SPC 한국이커머스홀딩스를 통해 커넥트웨이브의 잔여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를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MBK파트너스가 매수에 나선 주식 총수는 커넥트웨이브 보통주 1,664만7,864주로 △한국이머커스홀딩스가 보유한 주식과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전환 주식 △김기록 창업자 보유 주식 △커넥트웨이브 자사주 등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 전부다.
MBK파트너스는 김 의장의 지분을 포함한 잔여 지분을 모두 공개매수한 뒤 상장폐지를 진행할 예정이다. MBK파트너스가 김 의장 지분에 이어 지분 70% 이상을 확보하면 상법 제360조의3에 따라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는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 가능하다. 시장에선 이번 커넥트웨이브 인수는 이커머스 사업에 대한 MBK파트너스의 볼트온(동종업체 추가 인수합병) 전략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MBK파트너스는 지난 2021년 말부터 준비 작업을 진행해 왔다.
올 초 한앤컴퍼니에 매각된 남양유업, 상폐되나
앞서 미용 의료기기기업 루트로닉을 비롯해 치과용 기기 제조사 오스템임플란트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증시를 떠났다. 2022년에는 수제 치킨버거 브랜드 맘스터치가 상폐되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PEF가 보유 중인 포트폴리오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한앤컴퍼니(쌍용C&E·루트로닉), MBK파트너스(오스템임플란트·커넥트웨이브), 어피니티(락앤락), 캐이엘앤파트너스(맘스터치) 등이다.
이 중 한앤컴퍼니는 올해 1월 우여곡절 끝에 남양유업 경영권을 인수했다. 지난 3월 말 이사회까지 장악하면서 본격 체질개선 작업에 나서고 있다. 최근 브랜드·홍보 부문의 소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고급 아이스크림카페 브랜드 백미당을 제외한 부진한 외식사업도 정리하고 있다.
당장은 남양유업의 적자 탈출이 최우선 과제다. 남양유업은 2020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흑자전환을 이루고 나면 본격 엑시트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배당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거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PEF업계 한 관계자는 "보통 흑자를 내고 현금흐름이 좋아져 최대치의 현금배당을 원할 때 상장폐지를 검토하게 된다"며 "상폐 관련 비용보다 배당으로 뽑아낼 수 있는 금액이 많으면 자진 상장폐지에 나선다"고 말했다.
지분 공개 매수 등 상장폐지 과정에서 드는 비용보다 지분 100%로 비상장사가 됐을 때 배당으로 가져갈 수 있는 현금규모가 더 크면 적극 상장폐지에 나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해 말 기준 남양유업의 이익잉여금은 6,883억원이다. 9일 기준(주당 50만원) 한앤코 지분 52.63%와 자사주 5.6%를 제외한 남양유업 지분 41.77%를 매수한다고 가정할 경우 드는 비용은 1,504억원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공개매수 후 상장폐지는 남양유업의 유력한 밸류업 방식이라는 평가다. 최근 정기주총에서 액면분할 안건이 상정됐지만 이 안건이 무산되면서 상장폐지 관점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하게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PEF들이 '공개매수 후 상장폐지'하는 이유
실제로 PEF가 상장사를 인수해 상장폐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경영 편의성이다. 각종 공시 의무와 경영 간섭에서 벗어나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배당을 통한 엑시트에 있다. 일례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오는 14일까지 락앤락 보통주 1,314만112주(지분율 30.33%)를 공개매수한다고 18일 공시했다. 락앤락 지분 69.64%를 보유 중인 어피너티는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100%를 확보한 뒤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할 계획이다. 락앤락 주가는 지난달 공시 당시 6.11% 올라 공개매수가(8,750원)에 근접한 8,680원에 거래를 마쳤다.
어피너티에 앞서 한앤컴퍼니는 지난 2월 국내 1위 시멘트업체 쌍용C&E의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쌍용C&E 자사주를 포함해 지분 79.9%를 가지고 있던 한앤컴퍼니는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율을 약 93%까지 끌어올렸다. 향후 교부금 주식교환 방식으로 잔여 지분을 확보한 뒤 쌍용C&E를 비상장사로 전환할 예정이다.
PEF발 상장폐지가 줄 잇는 또 다른 이유는 주가 관리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PEF는 출자자(LP)들에게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 투자 현황을 보고해야 하는데 이때 상장사는 주가로 투자 성과를 평가를 받는다. IB업계 관계자는 "비상장사는 실적과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공정 가치를 평가하지만 상장사는 시장 흐름의 영향을 많이는 받는 주가로 평가를 받다 보니 PEF들의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정부 차원에서 밸류업 압박이 강해지고 있는 것도 PEF 운용사들엔 부담이다. 상장사로서 각종 공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점과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도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배경이다. 엑시트 위해 매각을 준비할 때도 상장사일 경우 매각가가 주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비상장사로의 전환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상장폐지를 하면 소액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배당과 유상감자 등을 통해 투자금 일부를 중간 회수할 수도 있는 점도 PEF엔 장점이다. 한앤컴퍼니는 2023년 말 루트로닉을 상장폐지한 뒤 석 달 만에 두 차례 유상감자를 통해 3,800억원을 회수했다. 업계에선 어피너티 역시 락앤락 상장폐지 후 배당 등으로 대대적인 엑시트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