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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때문에 두산밥캣 주식 휴지 조각 됐다" 주주들 불만
두산밥캣,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확보한 자사주 소각 검토
주주 저항 커지면 합병 논의 뒤집힌다? 최대 변수에 주목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을 두고 시장 곳곳에서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두산그룹의 합병 비율 산정에 대한 주주 불만이 가중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소액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인해 합병 논의 자체가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밥캣-로보틱스 합병에 대한 주주 불만
22일 두산밥캣의 외국인 기관 투자자인 션 브라운(Sean Brown) 테톤캐피탈 이사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주최한 제36차 세미나에 참석,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건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드러냈다. 브라운 이사는 “밥캣과 로보틱스 합병은 날강도 행위”라며 “현저하게 불공정한 합병 비율로 인해 보유하고 있던 밥캣 지분이 휴지 조각이 됐다”고 일갈했다.
앞서 두산그룹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을 1 대 0.63으로 제시한 바 있다. 현행법에 따라 양사 주가 수준을 토대로 합병 비율을 정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브라운 이사는 두산그룹의 부적절한 합병 비율 산정으로 인해 두산로보틱스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지고, 두산밥캣 기업가치는 평가절하됐다고 주장한다.
브라운 이사는 “미국에서 흔히 합병 비율 산정에 활용하는 기업가치(TEV·Total Enterprise Value)를 기준으로 자체 산정한 밥캣의 적정 기업가치는 순현금을 더해 약 15조원이고, 로보틱스는 7,000억원에 불과하다”며 “적정 합병비율이 96 대 4인데, 49 대 51로 합병비율이 결정되면서 밥캣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번 합병의 가장 큰 수혜자가 두산 그룹의 대주주라고도 지적했다. 브라운 이사는 “(이번 합병이) 누구를 위한 결정인지 물었을 때, 돈 한 푼 안 내고 밥캣 지분율을 14%에서 42%로 끌어올린 ㈜두산이 실질적 수혜자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사회가 이런 안건을 통과시킨 데 대해 실망스럽고, 배신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여론 진화 나선 두산밥캣
주주들의 불만이 가중되자 두산그룹 측은 부랴부랴 여론 진화에 나섰다. 재계에 따르면 두산밥캣은 오는 9월 25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확보하는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는 방안을 결의할 예정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 등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에 반대하는 주주가 소유한 주식을 회사에 매입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주당 행사 예정가는 두산밥캣 5만459원, 두산에너빌리티 2만890원, 두산로보틱스 8만472원이다.
실제 두산밥캣이 자사주 소각에 나선다면 두산로보틱스 신주 발행 물량이 줄어들며 향후 합병 법인의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기존 두산로보틱스 주주는 물론 주식을 교환받은 두산밥캣 주주까지 혜택을 볼 수 있는 셈이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주주가 늘며 자사주가 대량으로 발생하면 일반 주주의 주주권이 희석된다”며 “두산밥캣이 자사주를 소각하면 지배 구조 리스크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합병 법인에 대한 두산밥캣 주주들의 지분율을 제고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주식매수청구권 청구 규모가 커질 경우 이 같은 자구책의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두산밥캣의 지분 46%를 소유한 대주주 두산에너빌리티를 최대 변수로 지목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에 비해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다. 만약 소액주주의 저항이 커지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급증할 경우 합병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1분기 기준 두산에너빌리티의 최대주주 ㈜두산의 지분은 30.39% 수준이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인한 합병 무산 사례
실제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는 합병 논의를 무산시킬 수 있는 주요 변수로 꼽힌다. 지난 2014년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 실패 사례를 살펴보면, 당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에는 각각 9,235억원(매수 한도 9,500억원), 7,063억원(매수 한도 4,100억원) 규모의 주식매수청구가 몰렸다. 이후 삼성중공업은 "과도한 주식매수청구 부담을 안고 합병을 진행할 경우 합병 회사의 재무 상황을 악화시켜 궁극적으로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주식매수청구 행사 과정에서 드러난 시장과 주주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이를 겸허히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엔지니어링의 한도 초과로 인해 합병이 무산된 셈이다.
2019년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인 제넥신과 툴젠의 합병 역시 주주들의 과도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인해 실패했다. 당시 양사가 설정한 매수청구권 매수 한도는 제넥신 1,300억원, 툴젠은 500억원 수준이었다. 이후 주식매수청구 마감 결과 제넥신에는 보통주 344만2,486주(2,338억원)·우선주 146만5,035주(9,86억원), 툴젠에는 보통주 151만3,134주(1,221억원)가 매수 청구됐다. 막대한 매수 부담에 부딪힌 양사는 결국 합병 무산을 선언했다.
이번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두산에너빌리티에서 6,000억원 이하,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에서 각각 1조5,000억원·5,000억원 이하의 주식매수청구가 발생해야 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합병 비율 산정으로 인해 주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만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를 비롯해 관련 상황을 충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6.78%, 두산밥캣 지분 6.97%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 국민연금의 판단 역시 변수"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