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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가 투자한 기본소득 실험, 미국서 3년째 진행 중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욕구 채워지자 다른 파급 효과 생겨나
실험 대상자들 근로 의욕 향상은 '글쎄'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대량 해고가 잇따르고 생활고를 호소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나던 당시, 미국 텍사스주와 일리노이주에서 이색 실험이 진행된 바 있다. 비영리 연구단체 오픈리서치(OpenResearch)가 주도한 이 실험은 저소득층 1,000명에게 3년간 매달 조건 없이 1,000달러(약 138만원)를 주는 일종의 '기본소득 프로젝트'로, 오픈AI(Open AI)와 오픈 AI 창립자 샘 올트먼(Sam Altman)이 자금 일부를 댔다.
오랫동안 필요성 논의된 기본소득, 최근 관련 실험 급증
실리콘밸리의 자선가들을 중심으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들은 기본소득 제공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관련 실험도 많은데, 지난 몇 년에 걸쳐 스탠퍼드기본소득연구소(Stanford Basic Income Lab)와 보장소득연구센터(Center for Guaranteed Income Research)는 미국 곳곳에서 진행 중인 기본소득 관련 파일럿 프로그램 30여 개를 모니터링 중이다.
사라 킴벌린(Sara Kimberlin) 스탠퍼드기본소득연구소 이사는 “미국에서 기본소득은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18세기 철학자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저서 ‘인간의 권리(The Rights of Man)’에서 기본소득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미국의 흑인 해방을 이끈 마틴 목사이자 인권운동가인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도 기본소득을 빈곤 해결을 위한 열쇠로 봤고,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했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역시 이른바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형태의 기본소득을 도입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마이너스 소득세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에겐 세금을 부과하고 그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엔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다.
기존의 실험에서 기본소득은 대개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모습이다. 킴벌린 이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주로 재정 및 주거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본소득을 썼다. 이는 참가자들이 인간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고 가족이나 친구를 돕는 데 돈을 사용한다는 오픈리서치의 최근 연구 결과와도 맥이 닿아 있다. 최근 미국의학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 저널에 실린 관련 연구 결과도 기본소득 지원이 사람들의 응급실 방문을 줄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연구들은 기본 욕구가 충족될 경우 사람들이 자신과 주변인들을 위해 한층 탄탄한 재정적 기반을 구축하려 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기본 욕구 충족되면 긍정적 파급효과 생겨”
킴벌린 이사는 미국 과학 매체 사이언티픽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과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과 보장소득이 필요한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 “기본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답했다. 그는 또 “기본 욕구를 채우려고 애쓰는 과정에선 여러 어려움이 발생한다”며 “안전한 집이 없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와 충분한 식량 등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고, 가족을 돌볼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런 기본 욕구가 충족됐을 때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에 주목한 연구도 많다. 무료급식 도입이 개별 가정의 안정성을 끌어올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킴벌린 이사는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소득세 공제 혜택을 받은 가정의 아이들은 장기적으로 더 나은 교육적 결과를 만들어냈다”며 “이는 곧 해당 가정에 더 강력한 재정 안정성을 가져다주는 일”이라고 짚었다.
식재료나 임대료가 아닌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꼭 필요하냐는 지적에 대해선 “현금의 유동성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현금은 사람들이 욕구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고 사람들에게 돈의 사용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존엄과 자율성을 준다”고 설명했다. 식량은 충분하지만 긴급보육이 필요한 경우, 돈이 없어 회사까지 출근하지 못해 집세를 밀리는 지경에 다다른 경우 등 다양한 상황에서 현금은 유연한 해결책이 된다는 얘기다. 킴벌리 이사는 “현금은 식량 바우처 등과 달리 행정처리비용도 적은 만큼 잠재적으로 더 활용 가치가 높은 복지 접근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오픈리서치 실험의 특징은 ‘어린아이를 둔 부모’ 등으로 대상자를 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광범위한 집단을 연구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연구 결과가 한층 더 대표성을 띨 수 있게 됐다. 그런가 하면 실험 참가자에게 지급된 기본소득이 주로 집세와 식료품, 교통비 등에 쓰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결과도 아니었다. 스탠퍼드기본소득연구소 등 다른 실험에서 이미 꾸준히 보이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킴벌리 이사는 “오히려 눈에 띄었던 건 가족과 친구를 돕는 데 돈을 쓰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 참가자는 남편이 실직해 집세를 못 내게 된 사촌을 돕기도 했다. 이를 두고 킴벌리 이사는 “기본소득의 효과가 수혜자를 넘어서 다른 이들에게까지 퍼져 나갈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근로 의욕 개선 여부는 ‘미지수’
다만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근로 의욕을 끌어올리는지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이번 실험에선 매달 1,000달러를 받은 참가자들과 별도로 50달러씩 받은 대조군이 설정됐다. 참가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주당 평균 1시간 덜 일했고, 고용 가능성은 2% 낮았다. 이에 대해 킴벌리 이사는 “기본소득 수혜자들의 고용률이 증가한 연구도 있었다”며 “당장 기본소득을 받으면 고장 난 자동차도 고치고 보육료도 낼 수 있게 되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더 용이해진다”고 맞섰다. 킴벌리 이사에 따르면 기본소득이 고용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실험도 있었다.
사실 이번 오픈리서치 실험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진행됐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엔 미국 전체가 실업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3년이 지난 뒤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이 재취업에 성공했고, 실험 참가자들과 대조군 양쪽에서도 취업률과 근무 시간이 증가했다. 그러나 1,000달러를 받은 참가자들은 여전히 대조군에 비해 취업률 증가 폭이 작았다.
킴벌리 이사도 “현재까지 나온 연구 결과만으로는 기본소득이 빈곤의 만병통치약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의료와 교육, 보육, 적절한 가격대의 주택에 대한 접근성 등은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기본소득은 사회안전망을 보강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며 “사용처를 제한하지 않는 현금은 사회안전망의 구멍을 메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같은 기본소득 실험은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호소에서 갓 나온 이들을 비롯해 가정폭력을 경험했거나 수감시설에서 출소해 사회에 재진입한 이들 등이다. 개별 그룹에서 기본소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건 정책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킴벌리 이사는 “특히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며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원문의 저자인 앨리슨 파셜(Allison Parshall)은 사이언티픽아메리칸 부편집장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Basic Income Gives Money without Strings. Here’s How People Spend It | Scientific American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