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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두산로보틱스에 증권신고서 정정 제출 요구
"합병 비율 말도 안 돼" 투자자 비판 속 미끄러지는 그룹주 주가
합병 최대 변수는 소액주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시장 곳곳에서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 비율 산정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직접 증권신고서 정정 제출을 요구하며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다. 업계에서는 그룹주 주가 하락, 소액주주 저항 등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급증할 경우 합병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로보틱스-밥캣 합병 주시하는 금융당국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5일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합병' 및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 정정 제출을 요구했다고 공시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증권신고서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중요 사항에 관해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는 경우 △중요 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않은 경우 △중요 사항의 기재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한 경우 등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
두산그룹은 "금융당국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청은 통상적인 절차"라며 "요구 사항에 맞춰 잘 준비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증권신고서를 다시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다만 업계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 정정 제출을 요구하며 시장 잡음을 낳고 있는 두산 측의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두산은 현재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한 뒤 향후 흡수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주당 가치는 각각 5만612원, 8만114원으로 평가됐으며, 합병 비율은 1대 0.63으로 산정됐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 양 사의 합병 비율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두산그룹의 부적절한 합병 비율 산정으로 인해 두산로보틱스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지고, 두산밥캣 기업가치는 평가절하됐다는 주장이다. 실제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 530억원, 영업적자 158억원을 기록한 적자 회사다. 반면 두산밥캣은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만 각각 9조7,000억원과 1조3,000억원에 이르는 '알짜 자회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악화하는 여론, 주가 줄줄이 하락세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두산밥캣·두산에너빌리티 투자자 등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하는 양상이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22일 '두산그룹 케이스로 본 상장회사 분할 합병 제도의 문제점'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주주에게는 분할합병·주식교환으로 받게 될 두산로보틱스 주식의 초고평가 상태, 주가 하락 가능성이 가장 큰 핵심 위험 요소"라며 "이 내용이 대단히 추상적으로만 기재되고 제대로 고지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두산밥캣의 외국인 기관 투자자인 션 브라운(Sean Brown) 테톤캐피탈 이사 역시 해당 세미나에 참석,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건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미국에서 흔히 합병 비율 산정에 활용하는 기업가치(TEV·Total Enterprise Value)를 기준으로 자체 산정한 밥캣의 적정 기업가치는 순현금을 더해 약 15조원이고, 로보틱스는 7,000억원에 불과하다”며 “적정 합병비율이 96 대 4인데, 49 대 51로 합병비율이 결정되면서 밥캣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됐다”고 일갈했다.
투자자들의 맹공 속 그룹주 주가는 줄줄이 추락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5일 두산은 전날보다 11.79% 하락한 채로 장을 마쳤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는 각각 8.02%, 4.49%의 하락률을 기록했으며, 두산밥캣의 주가 역시 6.16% 미끄러졌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에 대한 주주 반발이 거센 상황에 주가가 미끄러지는 건 (두산그룹 입장에서) 큰 악재"라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와 주가의 괴리가 커질수록 합병 여부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주식매수청구권이 상황 뒤집을까
실제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는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 논의를 뒤집을 수 있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 등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에 반대하는 주주가 소유한 주식을 회사에 매입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이번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두산밥캣의 지분 46%를 소유한 대주주 두산에너빌리티에서 6,000억원 이하,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에서 각각 1조5,000억원·5,000억원 이하의 주식매수청구가 발생해야 한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해당 한도를 넘어설 경우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통상적으로 주주들은 회사의 주가 추이를 고려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현재 회사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의 매수예정가격보다 낮거나 차후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손실 회피를 위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매수예정가격에 보유 주식을 매도하는 식이다. 문제는 두산 그룹주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를 크게 밑돌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5일 종가 기준 두산밥캣의 주가는 4만4,150원으로 두산밥캣의 주식매수청구권 매수예정가(5만459원) 대비 낮은 수준에 형성돼 있다. 두산로보틱스(7만3,400원)의 주가 또한 매수예정가인 8만472원보다 한참 낮다.
두산에너빌리티 주가(1만8,930원) 역시 주식매수청구권 매수예정가(2만850원)를 하회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시장에서 '최대 변수'로 꼽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악재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에 비해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편이다. 올해 1분기 기준 두산에너빌리티의 최대주주 ㈜두산의 지분은 30.39% 수준이며, 소액주주 지분율은 20%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액주주들이 합병 반대 의사 표출·손실 회피 등을 위해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나설 경우, 순식간에 지배 구조 개편 움직임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