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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수령액 손해 보더라도 연금 조기 수급하는 고령층 늘어
지원책 도입 타진 나선 정부, KDI "부분연금제도로 경제 여력 개선 가능"
소매판매 감소 등 경기 부진 심화, 고령층 소득 공백기 장기화 우려
수령액에 손해를 보더라도 연금을 앞당겨 받는 조기 수급자가 100만 명에 근접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에 정부는 부분연금제도 도입 등 지원책을 논의하고 나섰지만, 시장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진다. 경기 불황 및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등 연금 조기 수급이 급증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제도 개선에 의미가 없다는 시선에서다.
조기연금 수급자 100만 명 육박
13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국민연금 누적 조기연금 수급자는 9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84만9,744명에서 약 5만 명 이상 늘어난 것이다. 조기연금은 빠른 퇴직 등으로 소득이 감소해 노후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연금을 앞당겨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로, 1년을 앞당겨 받을 때마다 월평균 연금액은 6%씩 줄어든다. 최대 5년을 당겨 받으면 원래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의 약 30%가 깎인 액수를 받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조기연금 수급자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가파르단 점이다. 지난 2019년 7월 60만 명을 넘어선 조기연금 수급자는 불과 2년 3개월 뒤인 2021년 10월 70만 명에 다다랐다. 이후 지난해 4월 16개월 만에 또 80만 명을 돌파했고, 이번에 1년이 지나 다시 90만 명을 넘었다. 국민연금연구원은 내년께 조기연금 수급자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분연금제도 등 고령층 지원책 논의 시작
이에 정부는 고령층의 부동산 자산을 연금·유동화하는 정책 추진을 타진하고 있다. '부동산 연금화 촉진 세제'를 도입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해당 제도의 골자는 부부 합산 1주택 이하 기초연금수급자가 장기 보유한 부동산을 양도하고 연금 계좌에 납입할 시 세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연금 계좌 납입액에 1억원 한도로 양도소득세를 경감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고령층이 보유한 부동산을 유동화하기 위해 주택·농지연금이나 부동산 신탁 등 관련 연금 상품 개발 방안도 모색할 방침이다. 고령층 입장에서 중·장기적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겠단 취지다.
'국민연금 부분연금제도' 도입 논의도 본격화 수순에 접어들었다. 부분연금제도란 국민연금 급여 일부를 조기에 수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연금액의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조기에 수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기연금제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간단하게 보면 조기연금제도는 65세 이전 특정 시기부터 다소 감액된 연금액을 꾸준히 받게 되는 반면, 부분연금제도에선 수급자의 선택에 따라 시기별로 받는 연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 63~65세에 국민연금을 월 30만원씩 수령하다가 65세부터는 60만원씩 수령하는 식으로 연금액을 필요에 따라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부분연금제도 도입에 따라 중장년층의 경제적 여력이 상당 부분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KDI 연구위원은 "부분연금제도는 근로자가 경제활동 후반기에 개인의 신체적 능력과 선호도에 따라 다양한 근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며 "조기퇴직 유인을 억제하고 연금 수급 시점까지 노동시장에 잔류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분연금제도가 하나의 '선택지'가 되면 고령층의 자율적인 경제 활동이 촉진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시장선 회의적 반응, "소득 크레바스 등 근본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다만 시장에선 이 같은 정부 정책에 다소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조기연금 수급 급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제자리걸음에 불과하단 시선에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조기노령연금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조기연금 수급의 가장 큰 이유는 '생계비 마련'이었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사업 부진, 건강 악화 등과 같은 비자발적 사유로 소득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고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불가피하게 국민연금을 조기에 신청해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이는 50~60대가 겪는 '소득 크레바스(퇴직 후 소득 공백기)'가 그만큼 심화했단 방증이다. 실제 지난해 한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장년 구직자의 주된 직장 퇴직 연령은 평균 50.5세였다. 50세 이전 퇴직 비율도 45.9%로 절반에 육박했다. 문제는 이런 가운데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점차 뒤로 미뤄지고 있단 점이다. 당초 2022년 수급 개시 연령은 만 62세였으나 지난해부터 63세로 1년 늦춰졌고, 오는 2033년엔 65세까지 미뤄질 전망이다. 소득 크레바스가 줄기는커녕 커지고만 있단 의미다.
이런 가운데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단 점도 고령층의 부담을 키운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경기 부진에 건설업 한파가 겹치며 건설업 종사자의 실업급여 신규 신청(7만2,400명)이 전년 대비 1만3,000여 명 늘었다. 반면 건설업계 고용보험 가입자는 76만9,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만2,000명(1.5%) 감소했다. 한국 경제 주축 중 하나인 건설업계가 크게 휘청이고 있단 것이다.
소매판매도 크게 줄었다. 앞서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국내 소매판매는 전국 17개 시도 중 충남과 충북을 제외한 전역에서 일제히 감소했다. 전국 기존 소매판매 감소율은 2.9%에 달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4.5%)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반면 값싼 식재료나 중고 명품 쇼핑 등 이른바 '불황형 소비'는 커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농축산물 수출입 동향' 보고서를 보면 올해 들어 6월까지 돼지고기 수입량은 32만6,000t으로 전년 대비 13.7% 증가했다. 편의점 업계에선 이른바 '떨이 상품'으로 불리는 마감 할인 매출이 4.5배 이상 늘었고, 패션 업계에선 명품이 고전을 면치 못한 가운데 중고 거래 및 제조·유통 일괄(SPA) 시장이 활황세를 이뤘다. 가격이 저렴한 '저가 상품'에 범세대적인 소비 심리가 쏠린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의 어려움이 날로 커지는 배경이다.